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미유 Sep 13. 2023

롯데 자이언츠의 팬으로 산다는 것은

올해도 시즌을 접었다. 그래도 8월까지 희망을 품었는데 역시나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니들 참 야구 못하는구나. 잠깐 못하는 게 아니라 꾸준하게 못하는구나. 못하는 건 둘째 치고 운영도 엉망이라 선수만 탓할 문제는 아니지. 혹 4년 동안 꼴찌는 안했으니 다행이라는 말은 하지 마라. 양심이라고는 찌끄러기도 없는 놈들. 부산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이렇게 된 운명을 탓해서 무엇 하리. 사실 롯데 팬을 피할 수 있는 기회가 없진 않았다. 나는 초등학교 때 삼미 슈퍼스타즈의 어린이 회원으로 출발해 청보, 태평양으로 이어지는 인천 야구팀을 쭉 응원했다. 같은 항구 도시라는 친밀감 때문은 아니었고 뭔가 만화 캐릭터 같은 팀 구성과 약팀에 대환 로망이 작용한 결과였다. 하지만 태평양이 현대로 바뀌면서 인천 연고지를 떠나 강팀으로 변모한 다음부터 관심이 급속도로 식어버렸다. 이후 출생 연고지를 따라 자연스레 롯데로 갈아탔고 그 결과 우승은커녕 한국시리즈 문턱도 못 가본 형편없는 팀의 팬이 되었다. 약팀의 로망도 수십 년이 넘어가면 로망이 아닌 화병의 근원이 된다. 

   

롯데는 반박불가 최악의 팀이 맞다. 성적으로만 보면 몇 년째 꼴찌를 도맡아하고 있는 한화가 최악으로 보이지만 KBO 역사를 통틀어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한화의 최근 성적이 시궁창이라 그렇지 과거에는 잘 나가던 때가 있었고 빙그레 시절에는 정규리그 1위도 두 번 찍었다. 하지만 롯데는 창단 이후 40년이 넘도록 정규시즌 1위를 단 한 번도 기록하지 못했다. 비록 두 번의 우승을 이뤘지만 이 점은 지금도 롯데 팬들에게 근원적인 콤플렉스로 남아있다. 1등을 못하는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1등은 동경과 질투의 대상이지 1등을 못했다고 창피함을 느낄 이유는 없다. 하지만 모두 1등을 해봤는데 혼자 1등을 못해봤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1등이 특별한 게 아니라 1등을 하지 못하는 게 특별한 일이 돼버린다.

      

두 번의 우승 당시에도 롯데는 정규시즌 1위가 아니었다. 1위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밑에서부터 도장 깨기로 우승을 한 것이다. 약팀이 강팀을 이기는 서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극적이며 재미날지 몰라도 현실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정상적으로 이길 수 없으니 무리수를 두게 되고 그 과정에서 부러지고 다쳤다. 언론에서는 투혼으로 포장했지만 두 번의 우승은 최동원, 염종석의 어깨와 맞바꾼 결과물이었다. 우승의 기쁨은 당해로 종치고 미래는 연속된 좌절과 상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롯데라는 팀의 통산 스탯을 뒤져보면 안 좋은 지표는 거의 다 가졌다고 보면 된다. 단일 시험만 볼 때는 꼴찌가 아니지만 전부 합산하면 국어 꼴찌, 수학 꼴찌, 영어 꼴찌, 과학 꼴찌인 셈이다.

     

몇 해 전 LG 팬 동기, 한화 팬 후배와 같이 술을 마신 적이 있다. 어쩌다 야구 얘기가 나오자 둘은 약속이나 한 듯 침을 튀겨가며 각자의 응원팀을 씹기 시작했다. 나는 둘이 그러는 모습이 가소롭고 어이없어 롯데의 지난 역사를 조목조목 짚은 다음 이렇게 말했다. 

" LG,한화가 우승할 때 대통령이 누군지 기억하냐? 롯데는 노태우야 노태우. 무려 1992년! 니들은 그래도 김영삼 김대중이잖아! 군사정권 이후 우승 못해본 팀은 롯데밖에 없어! "  

말을 마치고 난 다음 우리는 건배를 했다. 두 사람은 말은 안했어도 속으로‘씨발, 그래 롯데 니가 짱 먹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깟 공놀이가 뭐 길래 우리 팀이 제일 막장이라며 외쳐대는 꼴이 안쓰럽고 추레했다.

     

박민규 작가의‘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후속 작으로‘롯데 자이언츠의 마지막 팬클럽’이 나와야 한다. 아, 마지막이라는 말은 빼야겠다. 삼미는 사라진 과거의 팀이지만 롯데는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니까. 올해 팔순이 된 원조 롯데 팬 우리 아버지는 끝내 세 번째 우승을 못 보고 돌아가실 확률이 높다. 나도 환갑 이전에 우승 구경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뭐 108 년 만에 우승한 시카고 컵스 팬에 비하면 순한 맛이랄 수도 있지만 그래도 환갑까지 가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어쨌거나 시즌을 접었으니 생업에 더 충실해야지. 한때 동지였다 지금은 멀리 가 버린 LG 여, 올해는 니들이 우승 먹어라!


매거진의 이전글 M에게 보내는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