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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유 Sep 27. 2023

이름을 불러주세요

손 선생님을 이런 식으로 다시 보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몇 년 전 KBS 도전 골든벨 프로그램에서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가 나왔고 장기자랑을 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화면 속에 잡혔다. 평소 즐겨 보던 프로도 아니었고 리모컨을 돌려보는 와중에 우연히 포착된 거라 이 정도면 운명 같은 한순간이 아닐까.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기억 속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한눈에 알아보았다. 아니, 어쩌면 그 많은 변화의 시간을 무색하게 지워버릴 만큼 그녀의 존재가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

  

가만히 있기만 해도 호르몬 분비가 넘쳐나던 남자 고등학교에서 우리들은 어떤 형태로든 이성에 대한 분출구를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입시에 짓눌린 그 시절 많은 아이들에게 연애란 먼 이야기였기에 미혼의 젊은 여자 선생님을 타켓으로 삼는 건 익숙한 풍경이었다. 아이들의 의도는 순수할지 몰라도 표출되는 방식은 순수하지 않았다. 여자 선생님들의 외모를 제멋대로 평가하고 저속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음란한 상상을 했다. 물론 손 선생님도 예외일 순 없었다.


손 선생님은 제 2 외국어인 독일어를 가르쳤다. 150센티미터를 조금 넘는 작달만한 키에 통통한 몸매로 얼굴에는 주근깨가 점점이 퍼져있었다. 외모만 봤을 때는 이상적인 첫사랑의 이미지와 부합되지 않았지만 매력적인 하이톤의 음성과 깨알 같은 유머 감각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는 제법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를 이성으로 좋아하는 아이는 거의 없었고 그 좁은 선택지 중 한 명이 나였다. 내 취향이 특별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나는 정말로 손 선생님에게 반했고 마음을 뺏겨버렸다. 좋아할 요소는 몇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선생님이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거였다.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담임을 제외하면 내 이름을 아는 선생님은 한 명도 없었다. 50명이 넘는 학생 중 기억에 남으려면 눈에 띄는 뭔가가 있어야 했다. 학급 임원을 맡거나 공부를 특출나게 잘하거나 문제를 일으킬만한 행동을 하거나 특이한 외모를 가지고 있거나 등등. 나에게는 어느 것도 해당사항이 없었다. 있는 듯 없는 듯, 출석을 부르지 않으면 결석을 해도 티가 나지 않는 그런 아이였다. 손 선생님은 수업 첫날부터 출석부를 체크 하면서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매칭시켰다. 얼마 안 가 이름을 대부분 기억했는지 출석부를 보지 않고도 아이들을 호명했다. 그 속에 내 이름도 있었다. 나에게만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 순간엔 특별한 사람으로 존중받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부터 나는 손 선생님의 눈에 띄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시도했다. 일단 독일어 공부를 열심히 파고들었다. 평소 성적도 상위권인데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향하는 마음까지 더해지니 만점을 받는 일이 그닥 어렵지 않았다. 선생님은 만점을 받은 아이를 호명하며 일으켜 세웠다. 다들 박수. 그렇게 선생님의 입에서 내 이름이 다시 한번 불러줬다. 매사 소극적인 아이는 독일어 시간만 되면 번쩍번쩍 손을 들었고 가만히 앉아 입을 열지 않던 아이는 시끄럽게 장난을 쳐댔다. 사랑에 빠진 아이가 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2학년 2학기 마지막 독일어 수업. 손 선생님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카르페 디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 말하는 키팅 선생님, 좋아하던 연극을 하고 싶었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닐, 아름다운 크리스에게 빠져버린 오버스트릿, 책상 위로 올라가 오 캡틴 마이 캡틴을 외치는 앤더슨. 손 선생님은 마치 극장의 변사처럼 영화 속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우리는 몰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순간만큼은 교실에 있던 누구나 닐이 되었고 오버스트릿이 되었고 앤더슨이 되었고 죽은 시인의 사회 일원이 되었다. 교탁 앞에 서 있는 손 선생님이 키팅이었다. 

    

하지만 행복의 시간은 유한했다. 3학년이 되면서 독일어 선생님이 바뀌었고 손 선생님의 수업을 더는 들을 수 없었다. 독일어 성적은 가파르게 떨어졌고 나는 결국 입시에서 제2 외국어를 선택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선생님을 향한 마음을 다스릴 방법이 없었다.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단 말인가. 그때 나는 틈나는 대로 선생님에게 편지를 썼다. 1분 1초가 아쉬운 숨 막히는 고3 수험생이었지만 쓰지 않으면 되러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나 많았을까. 색색의 편지지에 반복되는 사랑과 그리움의 밀어가 쓰여질 때마다 마음은 요동쳤다. 더 진실되고 간절한 어휘를 찾을 수 없을까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어차피 가닿지 못할 마음인 줄 알면서도. 

     

대입 수험을 얼마 앞둔 초겨울 어느 날. 나는 마침내 써두었던 편지를 들고 교무실로 향했다. 책상에 앉아있는 손 선생님 앞에 다량의 편지 뭉치를 들이밀었다. 받으세요 선생님. 저 선생님 좋아했어요. 편지만 주고 바로 나오려 했지만 막상 얼굴을 보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손 선생님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살짝 미소만 짓더니 앉으라고 말했다. 이미 알고 있다는 눈치였고 대학에 꼭 합격하라는 메시지와 함께 내 이름을 다정한 음성으로 몇 번씩이나 불러주었다.

     

그해 겨울 나는 합격 소식을 들었고 대학생이 되었다. 고향 부산을 떠나 멀리 수도권 대학으로 진학했고 가족들도 모두 서울로 이사했다. 선생님을 보고 싶다는 마음은 대학 생활과 바뀐 환경에 적응하느라 차츰 옅어져 갔다. 넓고 자유로운 대학의 세계는 좁고 폐쇄적인 고교 시절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렇게 나는 손 선생님을 잊었다. 사람을 잊는다는 게 이렇게 쉬운 것이었나 라는 속 빈 가벼움과 함께 그 시절 절박했던 마음이 어이없을 정도로 하찮게 여겨졌다. 첫사랑이라는 게 그렇지 뭐. 미성숙한 상태에서 불시에 찾아드는 그것은 사랑도 아니고 그냥 사고일 뿐이야.

      

수십 년의 시간을 거친 뒤에야 나는 티비에서 손 선생님을 만났다. 그 순간 억제할 수 없는 과거의 감정들이 해일처럼 장벽을 넘어왔다. 처음 선생님을 만났던 순간, 독일어 시험 만점을 받던 날, 일부러 떠들어서 손바닥을 맞으며 배시시 웃던 기억, 죽은 시인의 사회를 들려주던 그 목소리, 편지뭉치를 한 손에 쥔 채 여러 번 반복하던 내 이름까지. 그래 기억이 나, 다 기억난다고. 그동안 여럿 사람들이 마음속 사랑의 지층 위에 포개졌어도 바닥에 남아있는 단단한 지층 하나가 여전히 살아 있었다는 것을. 흔한 잡풀 같은 내 이름을 불러준 그녀, 손 선생님.

     

지금도 학교 홈페이지에는 손 선생님의 이름이 교직원 명단에 올라가 있다. 사립이라 전근이 드물어서인데 당시의 선생님들은 대부분 정년퇴임을 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지금 손 선생님의 나이는 대략 50대 중반이 되었을 테고 독일어 대신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고 마음만 먹으면 지금이라도 찾아가 볼 수 있다. 하지만 첫사랑의 추억이란 추억 그 자체일 때가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이제야 찾아가 본들 선생님은 기억하지 못할 확률이 높고 기억한다 한들 그것은 필연적으로 변색의 과정을 거칠 테니까.

      

어쩌면 나는 그동안 사랑의 정의를 지나치게 정형화시킨 건 아닐까. 사랑에 가이드 라인부터 들이대고 평가를 했다. 불시에 왔다 사그라들지언정 그 순간을 믿고 느끼며 뛰어들었다면 그 자체가 사랑일 텐데. 손 선생님은 그렇게 무작정 들이닥친 사람이고 내 소중한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준 첫사랑이었다. 그때처럼 편지로 전할 수는 없지만.... 당신이 내 첫사랑이 되어줘서 고맙습니다. 이히 리베 디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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