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미유 Oct 06. 2023

선생이라고 애들 때리는 거 아니다

성자의 이야기

초등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한다. 1교시 수업이 끝나고 한 친구와 함께 복도 끝에서 끝까지 누가 빨리 달리나 시합을 했다. 대충 50 미터 정도 됐었나? 먼 거리는 아니지만 9살 아이의 눈에는 그렇게 짧지만도 않은 거리라 적당한 긴장의 태세를 갖추고 화장실이 있는 동쪽 복도 벽에 나란히 섰다. 땅 하는 구호 소리와 함께 복도를 내달리던 중 지나가던 선생님의 눈에 걸렸다. 도착 지점인 서쪽 복도 끝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데 그 선생님이 앞으로 다가왔다. 둘 다 똑바로 서라고 말하더니 나에게는 안경을 벗으라며 머리를 좌우로 까딱거렸다. 안경을 벗자마자 우리들 뺨을 툭툭 두 대씩 때린 뒤 복도에서 뛰지 말라고 한 뒤 가버렸다. 특별히 화난 얼굴은 아니었고 그냥 제 할 일을 했다는 표정이었다. 갑작스레 뺨을 얻어맞은 우리는 얼얼한 볼을 매만지며 교실로 들어왔다. 고통의 강도로만 따지자면 회초리로 손바닥을 맞을 때보다 덜 아프긴 했다. 하지만 느닷없는 손찌검을 당하고 나니 뭐라 표현하기 힘든 수치심이 들었다. 태어나서 뺨을 맞아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날 나는 부모님께 있는 그대로 일러바쳤다.

- 아침에 복도에서 뛴다고 선생님이 뺨따구 때리더라.

- 몇 대 맞았노?

- 두 대. 선생님이 손을 이래 갖고 요렇게 요렇게....

나는 그때 상황을 흉내 내듯 재연했다.

- 아프더나?  

- 많이는 아니고 쪼매 아프더라.

- 그러게 뭐한다꼬 복도서 뛰어 댕기노. 담에는 그러지 마라. 알겠나? 

두 분 다 그깟 일이 뭐 대수라는 듯 그냥 넘겼다. 그 순간 갑자기 눈가가 뜨거워졌다. 학교에서도 나지 않던 눈물이 방울 맺혀 흘러내렸다. 수업시간도 아닌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뛴 게 뺨을 맞을 만큼 그렇게 잘못한 일인가. 뺨을 맞을 때 아픔보다 엄마와 아빠가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서러웠다.

     

나는 곧바로 성자와 영훈의 방으로 쪼로록 달려가 울먹거리며 똑같이 말했다. 

- 아이고 선생님이 우리 XX 이한테 와 그랬을까. 많이 아팠재?

영훈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내 뺨을 몇 번씩 쓰다듬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성자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 누가 우리 새끼 뺨 때렸노! 누구고!

- 선생님이 안 그랬다 카나. 야가 복도에서 뛰었다고. 

- 선생님? 하~ 기가 찬다. 지가 선생이면 선생이지 어따 대고 애들 빰대기를 때리노! 당장 앞장서거라. 학교 가자. 선생 놈 얼굴 함 보자.

성자의 입에서 선생님이 선생으로 선생이 선생놈으로 변하는 데는 몇 초가 걸리지 않았다. 흥분한 성자는 옷을 대충 주워 입고 부모님 방으로 들어가더니 같이 학교로 가자며 호통을 쳤다. 놀란 부모님이 성자를 뜯어말리자 그럼 혼자라도 가겠다며 내 손을 잡고 현관을 나서자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성자의 성격상 교무실로 쳐들어가 한바탕 난리를 칠게 뻔했다. 아무리 어려도 그 정도 상황파악은 가능했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할머니 저 하나도 안 아파요. 나중에 선생님이 잘못했다고 했어요 라는 거짓말까지 보탠 끝에 겨우 성자를 붙들어 맬 수 있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방으로 들어간 성자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말했다. 

- 내는 우리 애들 키우면서 한 번도 뺨대기 때린 적 없다. 그래도 저래 다 잘 컸다. 선생이라고 애들 때리는 거 아니다. 애들은 때린다고 말 듣는 거 아니다.

솔직히 이 점은 의외였다. 영훈이야 원래 성품이 비폭력적이라 납득이 가지만 다혈질인 성자가 자식들에게 손찌검을 하지 않았다고? 성자가 살던 시절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폭력이 일상화된 사회였고 내가 초등학생이던 80년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부모님의 행동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냥 시대가 그런 시대였다. 교사의 권위가 강하고 체벌 감수성이 부족했다. 학교에서 교사한테 맞으면 맞을 만한 짓을 했으니 맞는 거라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애들은 원래 맞고 싸우면서 크는 거라 배웠다. 하지만 그때 성자는 교사라도 아이를 때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물론 성자의 이런 언행이 무슨 거룩한 비판의식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단지 애지중지 물고 빨던 손자가 학교에서 뺨을 맞았다는 사실 자체에 화가 난 것이겠지. 그래도 나는 성자가 화를 내줘서 기뻤다. 가족 중 9살 아이의 뺨을 때리면 안 된다는 걸 말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는 성자가 한글도 제대로 못 읽고 우리 집에서 제일 무식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만큼은 누구보다 현명한 어른이었다. 많은 인간적인 결점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비폭력적으로 강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벅차도록 든든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노랭이 영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