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미유 Oct 16. 2023

우리들의 화투 시간

영훈과 성자의 이야기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대표하는 단어를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큰 고민 없이 말할 수 있다. 화투. 화투는 우리를 끈적하게 연결해주는 동아줄이었고 어린 시절 화투장에 손이 마를 날이 드물었다. 생각해보라, 그 옛날 어린 아이와 노인이 함께 즐길만한 놀이가 뭐가 있을까. 밖에서 공을 차겠는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 것인가, 보드게임을 하겠는가. 국민 오락 화투야말로 남녀노소 세대를 초월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유흥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성자와 영훈에게 화투를 배웠고 형을 포함한 네 사람은 짬이 날 때마다 줄기차게 패를 돌렸다. 화투하면 으레 고스톱을 떠올리지만 그때 우리는 민화투와 육백을 쳤다. 성자와 영훈은 고스톱을 칠 줄 알았지만 어린 아이들한테 고스톱까지 가르치는 건 양심에 다소 찔린다고 느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화투 치자는 말이 나오면 네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익숙한 패턴으로 판을 준비했다. 내가 먼저 구석에 있는 국방색 담요를 가져와 귀퉁이를 맞춰 접어 안방 한가운데에 깔아놓으면 형은 10원짜리가 들어찬 사탕 상자에서 동전을 꺼내어 인당 20개씩 배분했다. 그 사이 성자는 부엌으로 가서 간식거리를 가져오고 끝으로 영훈이 화투통을 뒤집은 다음 담요위에 화투를 골고루 섞었다. 시작은 민화투로 몇 판을 돌리고 판세가 어느 정도 정립되면 동전을 보충해 육백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넷 중 한 명이 동전을 모두 잃을 경우 끝이 나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고 종료시점은 그때그때마다 달랐다. 얼핏 보면 소액의 화투판 도박 분위기가 연상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일단 지불방식이 아무리 점수를 많이 내도 가져올 수 있는 동전이 인당 최대 3개로 제한되어 한꺼번에 많은 돈을 잃을 수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그 돈은 소유의 개념이 없었다. 아무리 많은 동전이 오가더라도 결국 마지막엔 전부 회수해 다시 사탕 상자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런 다음 마침내 성자와 영훈의 주머니에서 진짜 돈이 모습을 드러냈다. 적게는 300원, 많게는 천 원짜리 지폐였는데 나와 형은 그 돈으로 가게에서 과자를 사서 함께 먹었다. 결과적으로 이긴 쪽도 진 쪽도 없는 게임인데 무슨 재미인가 싶지만 상관없었다. 그렇게 넷이 화투를 치는 시간 자체가 행복했으니까. 가질 수 없다 해도 내 앞에 동전이 쌓이면 기쁘고 줄어들면 안타까웠다.

      

한 가지 흥미로운 건 성자와 영훈 두 사람이 화투에 임하는 태도가 전혀 다른 점이었다. 영훈은 화투 자체가 승부라고 여겨 진지하게 임한 반면 성자는 승패에 전혀 관심이 없고 화투 패 관리도 허술했다. 특히 영훈은 어떻게든 성자를 이겨먹으려는 모습이 눈에 띄게 드러났다. 설령 자신이 이기지 못하더라도 성자가 판을 가져가는 건 막겠다는 의지를 표출하곤 했다. 짐작컨대 이는 평소 성자의 온갖 잔소리와 타박에 억눌려있던 욕구의 대리분출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는 패가 이쁘게 들어왔을 때 주문처럼 외치는 말이 있었다.

- 왔다!

영훈에게 왔다 라는 말이 나오면 최소 광을 손에 쥐었다는 신호였다. 영훈은 종종 판세가 불리할 때 우리에게 성자의 약한 지점을 건드리도록 툭툭 눈치를 가했다.

- 할머니 이번에 뭐 먹을 거예요?

- 뭐 먹으면 좋겠노? 풍을 묵을까, 흑사리를 묵을까.

- 어디 봐요. 아....풍 먹어요 풍.

성자가 태연하게 패를 내비치면 나는 일부러 다른 패를 내도록 유도해서 영훈의 승리를 도왔다. 영훈의 기분이 좋아지면 그 짠돌이 주머니에서 나오는 금액이 높아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 돈 따는 게 그래 좋소?

- 니는 안 좋나? 당신은 또 꼴등이네 허허.

육십 넘은 노인네가 저러고 웃는 걸 보면 어린애인 내가 봐도 귀여운 구석이 존재했다. 처음엔 영훈의 돈을 좋아했지만 지나고 보니 검붉은 잇몸까지 드러낸 그의 웃음마저 좋았던 것 같다. 성자 역시 화투를 칠 때만큼은 영훈에게 무한정 관대해 모든 걸 아는 척 모르는 척 넘어갔다. 하긴, 누가 이기든 무슨 상관이랴. 과정이 어떻든 결국엔 다 같이 화목해지는 몇 안 되는 순간이 아닌가. 


형과 나는 머리가 커지고 본격적인 입시생이 되면서 자연스레 화투와 멀어졌다. 성인이 된 뒤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 우리는 왜 성자와 영훈에게 화투 치자는 말을 먼저 하지 못했을까.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닌데 죽은 다음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다고. 어쩌면 그들은 손자들이 그 한 마디를 꺼내주길 내심 기다렸을지 모른다 생각하니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당신들과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은 이렇게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죽어 만나게 되면 할머니 할아버지 고스톱 한 판 칩시다 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선생이라고 애들 때리는 거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