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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유 Feb 02. 2024

스필버그, 당신이란 사람은

영화 파벨만스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이름은 나에게 처음 극장과 영화의 세계에 발을 딛게 만들었던 사람이었다. 물론 이전에 TV속 주말의 명화, 동네 만화방에서 틀어주는 조잡한 쿵푸영화, 시민회관 같은데서 단체관람한 반공영화 등등이 있지만 극장에서 제대로 본 극영화는 스필버그의 E.T 가 처음이었다. 부산시내의 한 극장에서 형과 나는 부모님의 손을 잡고 입장해 어둠 속에 빛나는 거대한 스크린의 마법 같은 세계를 체험했다. 마치 영화 속 어린 스필버그가 부모님과 함께 찾은 극장에서 경이로운 눈으로 영화를 바라본 것처럼. 

         

외계인 E.T 와 엘리엇이 자전거를 타고 달 속으로 날아오르는 장면에서 입이 벌어졌고 극장을 나오면서 형과 교감하듯 손가락 끝을 마주치며 웃었다. 적어도 내 나이대의 관객이라면 스필버그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영화란 재미있어야 하고 보지 못한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는 영화 그 자체였다. E.T, 죠스, 인디아나 존스, 쥬라기 공원에 이르기까지 스필버그는 흥행 블록버스터 감독이라는 칭호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할리우드 키드들에게 스필버그는 우상이자 롤 모델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에 안주하지 않고 더 다채롭고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쉰들러 리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 마이너리티 리포트. 초기처럼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진 못해도 여전히 그의 마스터피스는 굳건했다. 

    

커리어의 황혼기에 접어들 즈음,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파벨만스를 조용히 들고 우리를 찾아왔다. 스필버그 정도의 거장이라면 이런 영화 하나쯤은 나올 때가 됐다는 마음에 적당한 기대감을 안고 봤다. 뜻밖에도 영화는 그의 화려했던 순간들을 쫓는 게 아니라 꿈이 피어나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와 가족사를 다루었다. 영화처럼 실제로 스필버그의 부모는 이혼했고 자신은 유대인 차별을 경험했는데 그의 명성을 생각한다면 지나치다 싶을 만큼 작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런 단순함만으로도 영화는 전작들만큼 흥미롭고 2시간 반이 훌쩍 지나간다.  

    

그는 자신의 무게와 어울리지 않는 소박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이야말로 거장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과 여유일 것이다. 어쩌면 그에게 영화를 향한 불꽃이 발화되던 지점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영화인이 되던 순간만큼 강렬하고 격정적이지 않았을까. 영화 끝에서 서부 영화의 대부 존 포드와 나눈 대사는 그런 점에서 빛이 난다. 현 시대의 거장과 앞으로 거장이 될 젊은이가 주고받는 대사는 짧지만 묵직한 발걸음으로 다가오며 스필버그의 파벨만스가 선사하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마틴 스콜세지가 아이리쉬맨으로 자신의 영화 인생을 정리했다면 스필버그는 파벨만스로 보여주었다. 앞으로 그를 얼마나 더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이건 마치 날 떠나보낼 준비를 하라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이 영감님이 어느 날 갑자기 은퇴한다 해도 크게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뭔가를 이뤄낸 자가 던지는 조금은 오만하기까지 한 겸손의 태도를 통해 이미 많은 수혜를 받았다는 걸 깨달았으니 말이다.  

  

" 영화는 꿈이란다. 절대 잊히지 않는 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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