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편인 것만 확인되면 계속 살 수 있었다

by 따뜻한 스피커


내 편인 것만 확인됐었으면
계속 살 수 있었다.


남편이 끝까지 자신의 편이 아니고

남의 편이라고 느꼈다는 선우은숙은

과거의 내 나이 즈음인 14년 전 결국 이혼을 결심하게 된다.


네플 릭스를 통해 한 박자 늦게 챙겨보는 '우리 이혼했어요'의 내용이다.

더욱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은 이영하 씨가 이혼 14년 만에 이혼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그럴수도 있구나 어이가 없었고 마음이 아팠다.

서로에게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고 원하는 것이 있었지만

결국 까맣게 타버린 속사람을 끌어안고

끝내는 것을 선택했다.

"결국 모든 노력을 멈췄지.

하지만 난 당신이 내 편인 것만 확인됐었으면 계속 살 수 있었어...."


선우은숙의 철 지난 과일처럼 맹탕 같은 말에 나의 목이 말라왔다. 보통 한 주의 일을 다 마치고 휴식 차원에서 보는 '우리 이혼했어요'는 오늘따라

와인을 두 잔이나 비우게 한다.


"대화가 이렇게 중요해요.."


두 사람의 현 며느리가 말한다.


"맞아 대화를 안 하면 절대 알 수 없어"


선우은숙이 대답한다.




'우리 이혼했어요' 이 프로그램이 불안하면서도 괜찮은 이유는 세 가지다.


이혼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여전히 금기시하는 편견을 깨고 이혼 뒤 부부 사이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탐구해보겠다는 의도가 나름 납득이

간다는 것.

그리고 출연하기 전 얼마나 치열하고 깊은 고민을 했을까 그 용기에 우선 순수한 시청자로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는 것. (물론 우리가 알 수 없는 여러 계산을 갖고 참여한 것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쇼윈도 부부 연예인에 대한 보도는 많이 접해봤지만 이토록 개인적인 깊은 상처를 대중 앞에 하나하나 드러내 보이는 것이 어디 쉬운가. 성숙한 사람들이다. 아니 적어도 성숙해지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이혼한 커플들이 자신들의 엄청난 상처를 하나하나 떠올리며

나름의 회복을 경험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보는 이들에게도 그대로 거울이 되고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많이들 들어본 조사 결과겠지만 워싱턴 의과 대학의 토마스 홈즈 박사팀은 개인의 스트레스 지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 ‘스트레스 측정 정도(Holmes and Rahe stress scale)’를 개발했다. 살면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사건들을 정신적 충격에 따라 점수를 매겼다. 총 43개 문항으로, 충격이 강력할수록 점수가 높았다. 이 중 인생에서 커다란 충격을 주는 20가지의 사건중 1위가 배우자 사망(100점) 그리고 2위가 이혼(73점) 3위가 배우자와 별거(65점)였다. 배우자 사망 외에 이혼과 별거라는 2위 3위의 스트레스를 다 겪어본 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느라 애썼고 수고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인간으로서 응원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눈물을 휴지로 찍어내며 TV 앞에 앉아있다.


이혼할 이유를 백 한 가지 넘게 가지고 있었지만 기적같이 비껴가서 우리 모두 살고 있는 것 아닌가.


겸손해지는 저녁이다.





혹자는 이 프로그램을 평가하기를 뒤로 갈수록 재결합으로 몰고 가는 분위기라며 원래의 기획의도와는 달리 뻔하게 흘러간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몇 번 출연한 것 가지고 깊었던 상처의 골짜기가 메워지고 파편들을 주어담는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최고기'의 전 부인을 향한 재결합 프로포즈를 받아주지 않았던 '깻잎'(고기와 깻잎은 이들의 유튜버 닉네임이다)의 거절이 충분히 이해가 되고 인정이 되었다.

너무 욕심을 내면 안 되지. 길게 싸운 만큼 충분히 길게 원하는 만큼 시간을 가지고 치유해야지.


물론 답도 미리 정해놓고 끌고 가려고 해서도 안된다. 비록 소중한 자녀가 있지만 그 아이가 선택하지 않은 상황 때문에 분명 아픔이 있다고는해도 이혼한 가정의 아이가

다 불행하다는 이분법적인 이야기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아이 때문에 재결합? 그것이 얼마나 갈 것인가? 바로 그것이 다시 이혼사유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도 있다.




그래도. 그래도 말이다.

나는 응원한다. 아줌마 감성이라고 욕을 얻어 먹는다고 할지라도.

이 프로그램이 가능성을 열어주기를.

소박하게 두 사람의 대화의 물꼬를 터주기를. 조금더 오지랍을 펼쳐서 세상 별 남자, 별 여자 없는데 성장의 벽을 뛰어넘어 다시 사랑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기를.

아마 분명히 이런 아줌마틱한 감성이

이 프로그램의 시청율을 계속 순항시키고 있는 중일것이다.


"시간이 (그냥 흐르는 것이) 아깝지 않니?"

"대화를 안 하면 절대 알 수 없다"

"바라기만 하다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저 알아주기를 바라는 수동적인 모습이 아니고 갈등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과거에 많이 머무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

이 순간에 충실하자"


여기 뼈추가요. 오늘도 '우리 이혼했어요'는 뼈해장국 교훈 대사맛집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