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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스피커 Nov 11. 2021

엄마 아빠 보니까 결혼 빨리하고 싶어요.

근데 애는 안 낳겠어요.

2화 엄마 아빠 보니까 결혼 빨리하고 싶어요.


"아 인생은 참, 첫맛은 쌉싸름 끝맛은 달콤해 이 커피처럼"


마흔이 조금 넘어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자 남편은 그렇게도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축구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7년째 그 열정은 식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무엇을 배워도 대충하는 법이 없는 남편은 조기축구회를 찾지 않았다.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전 국가대표가 운영하는 축구클럽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는 매주 토요일 새벽 그곳에서 신나게 경기를 뛰며 한 주간의 스트레스를 날리고 온다. 그런데 한가지, 주말에 모처럼 늦잠을 자는 내가 눈을 뜨면 남편이 옆에 없다고 불평을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단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정성스럽게 드립커피를 내려놓고 집을 나서는 일이다. 끝나는 대로 바로 달려 올 테니 따뜻한 커피 마시며 기다리고 있으라면서. 그렇게 시작된 남편의 모닝커피 내리기 의식은 이제 주말만이 아니라 매일 아침 계속되고 있다. 출근 준비로 바쁜 아침 시간

기꺼이 15분 정도의 시간을 커피를 내리기 위해 일찍 일어난다.


남편이 만드는 원두커피 향이 천천히 거실을 채우고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아침햇살과 어우러지면서 우리의 매일을 편안한 기운으로 시작하게 한다. 그리고 참 쉽게, 이만하면 행복하다고 느끼게 한다.

15분이라는 시간은 하루의 1프로의 시간이란다. 이 1프로가 나머지 99프로를 감사와 긍정의 힘으로 이끄는 거라고 말하면 너무 호들갑을 떠는걸까.      


"아 인생은 참, 첫맛은 쌉싸름 끝맛은 달콤해 이 커피처럼"

두 손 가득 따뜻하게 감싸 쥔 커피잔을 통해 몸안으로 스며드는 온기가 최선을 다해 잘 살고 있다는 칭찬으로 느껴진다.     


 새해 첫 월요일 서둘러 나가야 했던 남편이 출근 전 내려주고 간 따끈한 드립 커피를 기분 좋게 홀짝이며, 종이신문을 집어 들고 펼쳤다.

알겠지만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게 되면 수시로 엑스표를 눌러야 하는 광고와 아래에 있는 댓글에 더 눈이 가서 이내 피로감이 쌓이고 정작 뉴스의 핵심은 놓치기 일쑤이다. 종이신문은 뉴스를 접하는 주체가 바로 나인 것처럼 생각하게 해준다. 물론 신문 역시도 기자들의 견해가 섞인 설득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인터넷으로 신문을 보다가 생각이 갈 길을 잃고 멀미 증상을 겪는 것에 비하면 종이신문은 내 뇌와 정서가 훨씬 더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종이신문의 사설과 논평은 내가 스피치강의 시간에 가르치는 논리적 말하기에도 도움이 되는 자료가 많아서 좋다. 탄탄한 논평을 발견하면 수강생들에게 공유하기위해 사진으로 찍어서 앨범에 따로 모아 관리를 하기도 한다.


오늘도 신문을 넘기다가 문득 앞면 하단에 있는 기사 제목 하나가 내 눈에 와 꽂힌다.     

한국 ' 인구 감소' 시작됐다.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앞지른 '인구 데드크로스'현상이 최초로 발생한 날

기사가 주는 씁쓸함과 함께 마지막 한 모금 남은 커피가 차갑게 목구멍에 넘어가는 순간, 막 대학 입시를 끝낸 아들이 잠이 덜 깬 얼굴로 걸어 나왔다. 함께 아침을 먹는데 대뜸 입을 연다.      


"엄마 뉴스 봤어요? 정인이라는 불쌍한 아기는 왜 죽은 거야? 입양한 양부모가 그랬다면서요?? 엄마 나는요 결혼은 할 건데 애는 안 낳을 거예요! 아 놔 이런 세상 보여주기 진짜 미안하다고요"  

   

이참에 엄마에게 다짐을 해 두어야겠다는 아들의 의지가 보인다. 나는 흡사 죄인 얼굴같이 되어 갑자기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새벽 배송으로 배달된 라코타 치즈 샐러드 4500원짜리를 입에 넣다 말고 내 접시만 응시했다. 할 말이 없었다.

16개월밖에 안된 어린 정인이가 고통받다가 하늘나라로 떠났는데, 내 입엔 그래도 음식이 들어가고 아들의 세상 한탄은 이어지고, 머릿속으로는 다음 스케줄을 걱정하는 나의 일상도 계속되는 것이 허망하다 못해 무력하게 느껴지는 기분에 잠시 젖어있다가 나도 입을 열었다.     


"아들아 나는 뭐 너에게 이런 세상을 보여줄 줄 알고 너를 이 세상에 초대했겠느냐? 그래도 너 어젯밤에 신년 가족회의 때 그랬잖아. 현재 내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가? 라는 엄마의 오프닝 질문에 너는 행복하다고 말했잖아. 지금의 삶이 좋고 만족스럽다고. 그니까 말야 아들아. 결국 인생의 행복은 본인 자신에게 달려 있는 거 아닐까나? 아들, 하룻밤도 안 지나서 너무 그러지 말고 애 낳고 안 낳고는 지금 결정해야 하는 거 아니니까 일단 알겠어. 너무 흥분 말고. 엄마 마음속에 접수는 해둘게."     


이제는 다 식어버린 남은 커피 식사의 끝을 알리들이키면서 아들의 "나 결혼은 할 건데..!"라는 말이 떠올라 혼자 피식 웃었다.

    



"엄마 아빠가 재미나게 사는 거 보니까 나도 결혼 빨리 하고 싶네. 나는 대신 딸만 낳아야지!"      

두 아들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우리 부부에게 참 사이좋게 잘 지낸다며 종종 칭찬을 해주었다. 토닥거리면서도 꽤 로맨틱하게 잘 사는 것 같다고 그래서 빨리 결혼하고 싶어진다 라는 말도 덧붙인다. 다른 누구에게서가 아닌 아들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 얼굴엔 미소가 마구 피어나고 행복했다. 종종 주변 사람들은 내게 말하곤 했다. 요즘 다 늦게 결혼하는 추세인데 아들들이 결혼을 빨리 한다는게 좋냐고. 맞다. 나쁘지 않다. 우리 부부는 그저 자녀들이 결혼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은 것이 감사했고 엄마 아빠의 관계를 보면서 자신들의 인생에도 영원한 솔메이트를 만났으면 하는 소망이 몽글몽글 생겼다는 것이 기뻤다. 아니 안심이 되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뭐 결혼을 빨리하고 늦게 하고는 전적으로 본인들의 인연에 달린 것이지 목표를 세운다고 되는 것은 아니니까.   

   

 항상 여동생을 갖고 싶어했던 아들이 결혼하면 예쁜 딸을 낳고 싶다더니, 이제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달라진 그날의 말은 속상했다. 그때 식탁에서는 입 밖으로 소리 내서 할 수 없었던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아들아 네가 이 세상에 나와주어서 바람같이 정처 없는 인생길을 가던 여자가 엄마라는 이름의 강한 자가 되어 드디어 삶의 뿌리를 내렸단다. 그리고 네가 살게 될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은 세상으로 만들고 싶은 소망으로  다시 심장이 힘차게 뛰게 되었던 것처럼, 너도 꼭 엄마처럼 아빠처럼 말이다,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 기쁨과 환희를 꼭 맛보았으면 한다”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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