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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명한 새벽빛 Jun 25. 2016

살고 싶은 나

죽고 싶다는 말은 거짓말

그림 - 김주희 작가님의 <초상집>, 2008


내가 쓴 글들이 무색할 만큼 여전히 나는 내 마음과 싸우고 있다. 마음을 돌아보고 버리는 일이, 이런 나에겐 특히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마음수련을 시작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었다. (건강한 사람들이 이 명상을 더 잘한다. 마음에 힘듦이 많을수록 버리는 과정에서도 직면할 게 많으니까 힘이 든다.) 그래도 버려진다는 것이 희망이었다. 처음부터 내 안에 담겨 있는 마음이 한꺼번에 올라왔다면 나는 아마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단계를 거쳐 조금씩 걷어낼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다. 양파 껍질처럼 드러나는 내 모습은 참 끔찍하고 구질구질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생각이 너무 많아 나의 내면에 집착했고, 밖은 보지 못하니까 인간관계도 어려웠다. 그러나 그것을 대신 해결해주는 사람도 없었지만, 스스로 그것이 문제라고 인정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따금씩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면 나는 내 존재를 부인하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기 때문에 그것을 외면하기로 했던 것 같다. 이런 나에게, 지금 있는 그대로도 괜찮다고 믿게끔 말을 해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버티고 살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렴풋이나마 알아차린 덕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몸도 약하고 예민하니 마음도 약해 빠져서 의도치 않게, 내 다름 때문에 남들에게 피해를 많이도 주었다. 필요에 따라 이용 당하기도 하고 비웃음을 사기도 했지만, 동정 받으며 보호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일방적으로 보호를 받으며 사는 것이 아니라 그런 나 자신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이었다. 도움을 받기만 하는 데서 벗어나서 남에게 도움이 되고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나의 바람과는 달리,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가 않았다.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하는 문장들은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내 생각과 맞으면 맞다고 하고 틀리면 아니라고 하며 나를 정당화 하는 데 이용하기만 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말대로 내가 문제니까, 내가 없어져야 하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러나 없어지는 방법을 몰랐다. 죽고 싶다고 죽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죽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줄 알았다. 너무나 자기중심적인 내 문제를 알면서도 그대로 살아가기에 나는 너무 약했고, 우울증 약을 먹고 약에 취해 산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럴 돈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잘 살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괴로운 거니까, 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해보자고 마음을 바꿔 먹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나를 돌아보니까,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나는 삶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죽음에 대한 불안이 컸던 이유도 그것이었다. 그동안 내가 없어지고 싶다, 죽고 싶다고 했던 것이 진짜 다 거짓말이었다.


내가 남들을 위하고 싶어 했던 마음도 다 나를 지키려는 마음에서 기인한 것일 뿐이었다. 그래서 살고 싶은 마음이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건, 그 어떤 긍정적인 바람이건 가짜기 때문에 다 버리는 것이다. 그 마음 때문에 불안에 떨기만 할 뿐 오히려 그렇게 살지는 못했으니까. 내 마음만 살얼음판이었을 뿐, 세상은 원래부터 따뜻한 곳이었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아간다. 그동안 부끄러운 글들을 써내려 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가 이런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도 아니까, 그리고 해결책이 있으니까,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은 다 자기만의 세상에서 산다. 그 속에서 나오지 않는 한 누군가가 특별히 더 잘날 것도, 못날 것도 없다. 중요한 것은 함께 사는 것이다. 진짜 나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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