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수련 명상일기 - 있음의 없음
사진 - 달이 밝았던 날, 한강공원
어제는 침을 맞으러 다녀왔다. 그동안 맞으면서도 침몸살이 너무 심했다고 하니 살살(?) 놔주셨는데 그래도 역시나 몸이 힘들다. 낫느라 아픈 명현반응이라고 여기며 견딘다. 분명히 좋아진 것도 많기 때문에 침도 계속 맞긴 할 것 같다. 게다가 오늘은 또 어제 소개받은 곳에도 치료를 받으러 갈 예정이기 때문에 몸이 안 좋은 상태면 더 효과가 있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는 버티기가 힘들다. 그렇잖아도 어제 문득 내가 지니고 있던 긍정의 실체와 오류를 발견했었다.
나의 그림자를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했던 나는 그동안 나더러 긍정적이라고 하는 말을 삐딱하게 받아들이고 부정했었다. 나의 어둠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서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요즘 마음수련 명상으로 나를 돌아보니 긍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것도 인정이 되었다. 그림자가 있는데도 밝은 모습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모양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나는 정말 긍정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실제로 내가 마음수련 명상을 잘 할 수 있었던 것도 긍정적인 마음 덕분이다.
좌절했던 순간이 많았지만 나는 기어코 다시 일어서서 고개 고개를 넘어 왔다. 희망을 믿는 것이 긍정을 가장한 나의 합리화였을지라도 희망밖에 붙잡을 게 없었다. 삶이라는 길 위에서 나는 태양이 낮게 깔려 어둑해지는 와중에도 주저 없이 빛을 바라보고 걸었다. 솔직히 말하면 길어진 그림자를 바라보는 일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랬다. 어쩔 수 없이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림자의 존재를 철저하게 외면한 채 애써 빛을 향하는 일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긍정의 힘도 그림자가 자라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어둠 따위는 없는 척 자신마저 속이다가 이따금씩 짙은 나의 그림자를 마주하게 될 때마다 나는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향할 줄 아는 사람? 그런 긍정적인 사람이 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긍정이라는 말에 속는 것이 영 불쾌했다. 어둠이 나를 완전히 집어삼키면 긍정 따위도 아무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빛을 향하고 싶어도 보이지도 않는 빛을 향할 수는 없다. 다시 절망의 나락으로 빠질 때면 긍정조차 나를 구하지 못했다.
물론, 내가 빛을 보지 못하는 순간에도 여전히 빛은 있었다. 밤도 지구의 그림자일 뿐이듯, 나의 그림자가 빛을 증명하기에 이왕이면 빛을 향해 걷는 긍정적인 삶의 자세는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마음을 버리는 방법인 마음수련 명상은 내가 더이상 '빛'을 향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나'에게 관심을 갖게 해주었다. 근본적으로 '나'의 존재가 그림자를 만든다. '나'가 크면 클수록 그림자도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나'를 버린 만큼 나는 긍정적이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된 것 같다.
'나'를 구성하는 것은
살아온 삶에 기억된 생각,
자기의 상과 인연의 상,
돈, 사랑, 가족, 명예, 자존심, 병, 습, 열등감, 등등.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있는데, '나'가 크면 그림자도 큰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본다. 열등감이 크면 상처도 크다. 자존심이 크면 좌절감도 크다.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고, 빛을 향해 서 보려고 해도 커져만 가던 나의 짙은 그림자가 없어지게 된 원리는 '나'를 버리는 데 있었다. 마음수련 명상은 마음으로 '나'에게 관심을 갖고, '나'를 돌아보고, '나'를 버리는 마음빼기 방법이다. 거울을 통해 눈으로 '나'를 돌아보기만 해도 많은 것을 알고 바꿀 수 있듯, 마음도 똑같다.
나를 비추는 세상이라는 거울을 통해 진지하게 '나'를 돌아보고 버렸더니 이제야 정말로 긍정적인 사람이 된 듯하다. 하는 일에 마음 없이 집중할 수 있고 최선을 다할 수가 있다. 한 때 긍정일기도 써 보고 별짓을 다 해도 나의 그림자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그림자를 안아준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면 되고 눈물이 나면 눈물을 닦으면 되는 것인데 괜히 주위의 시선을 신경 쓰고 나의 그림자를 마주하는 일을 두려워 했었네. 이제는 그림자가 조금 남아 있어도, 정말 한 없이 밝다. 아무리 짙은 어둠 속에 있어도 괴로움을 가진 '나'가 없으니 괜찮다.
간단한 이치다. 너무나 간단하다. 마음수련 명상은 원리도 방법도 결과도 심플하다. '나'가 없으면 그림자도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가 없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가짜인 '나'를 버리는 것이다. 결코 아무것도 없지 않다. 내가 마음수련 명상을 하면서 자주 떠올랐던 표현, 있음의 없음. '나'를 버렸는데 드러나는 게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각자의 빛깔, 진짜 나. 나에게 없어서 없는 줄 알았지만 빛은 누구에게나 있다. 내가 오히려 있다고 착각했던 허상의 '나'를 모조리 버리니 그냥 진짜만 남았다. 그래서 있음의 없음이다.
있는 것을 없는 줄 알고
없는 것을 있다고 하니,
없는 것이 없어져야
비로소 있음이 있음이 되는구나.
사람은 자신에게 있어야 있는 줄 알고 보이지 않으면 없는 줄 알지만, 사실 있음과 없음이 하나다. 또한 내가 가졌던 긍정도 부정도 없음이었다. 나 자신이 긍정적인 것을 기뻐할 필요도, 부정적인 것을 탓할 필요도 없었다. 애써 빛을 향할 필요가 없는 지금, 어둠과 빛이 하나였음을 새삼 깨닫는다. 원래 있는 진짜 마음은, 세상 전체의 마음이라서 빛과 어둠을 나누는 마음도 없다. 빛을 가리는 '나'만 없으면 오직 빛 뿐이다. 있음과 없음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없음에 있음이 있다.
새 벽
날이 새면 모든 것이 밝혀지지만
사람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일체의 모든 것이 허사가 되지
세상의 모든 것은 삶에 의해 있고
모든 것은 무정에 유정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자기에 묶이면
날이 새도 샌 줄 모르지
- 우 명, 시집 <마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