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명한 새벽빛 Jun 28. 2016

나는 어떤 사람이지?

마음수련 명상일기 - 정체성

그림 - 김주희 작가님


나는 어떤 사람이지?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닌 질문이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나 자신이,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백지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다른 누군가는 다 저마다의 색과 모양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 보니 언제나 상대에게 비추어지는 나를 나인 줄 알았다. 어쩌면 백지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백지는 무엇이든 될 수 있으니까, 상대에 맞춰 무엇이든 되고 싶기도 했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 희미한 나를 잊고, 그들만의 어떤 존재로 살게 되었다.


그렇게 살아왔던 것을 인정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내 생각의 패턴이 알아차려진다. 요즘처럼 호르몬의 변화로 우울이 엄습할 때면 생각이 더욱 많아짐을 느낀다. 항상 이렇게 순간의 모든 것들에 큰 의미 부여를 하며 곱씹느라 정작 지금, 현재에 집중하지 못했었다. 나만의 의미부여를 하며 순간을 살았고, 나의 틀에 모든 것을 끼워 맞추었다. 주위 사람들이 얼마나 갑갑했을까? 나는 단 한 번도 자유로운 '나'로서 존재하지 못했다.


내 상태를 알아차리면 외면하고, 알아차리면 외면하고.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면서 살아왔다. 내가 인정하기에는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나는 모른 척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나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면서, 그 모든 것을 꾹꾹 눌러담아 감추었다. 감춘다고 모를 리 없는데. 상대에게는 내 모습이 다 보였을 텐데. 나는 기어코 내가 바라는 어떤 존재로 나를 인식해주길 바랐다.


와.........


이렇게 적나라하게 보일 줄이야. 사실 이 모습이.. 바로 우리 엄마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미 오래 전부터 엄마와 내가 닮은 점이 많다는 것은 알았지만 요 며칠 엄마의 모습이 딱 겹쳐진다. 정말, 사람은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나보다. 내 모습을 외면할 때가 더 힘들었는데 막상 알고 나니 별 것 아닌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놓아야겠다. 엄마도 몸이 더 아프기 전에 꼭 마음수련을 했으면 좋겠다.


우울증을 해결하기 위해 우울증 약을 먹고 싶지 않았던 까닭은, 약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증상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게 만들었을 이러저러한 마음의 뿌리들을 뽑아서 근본적인 해결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알게 된 마음수련 명상이 바로 내가 찾던 방법이었고, 내 삶을 돌아보니 내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모두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버릴 수 있었다.


명상으로 마음을 버렸을 뿐인데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 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솔직히 말해서 마음수련 방법이 없었다면 내가 지금 살아 있을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제야 호르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울에 빠지는 기간과 내 패턴을 인식했다. 그럴 때는 명상에 집중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약의 도움을 좀 받을 필요가 있는 것 같아서 어제는 신경과에 가서 약을 지어왔다. 그 덕분에 쏟아지는 생각에 속지 않고 차분하게 나를 돌아보고 원인을 찾아 버릴 수 있었다.


우울증에 걸린 나 자신조차 인정해주지 않은 못된 사람이 바로 나였다.


아, 후련하다.


어떤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자.


나는 그냥 나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완벽주의자의 고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