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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명한 새벽빛 Oct 06. 2017

웅크림의 시간

열 보 전진을 위한 한 보 후퇴

사는 것이 두려움이었다. 모든 순간은 누구에게나 처음 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공평함이 나에게는 곤란했다. '나'는 누구보다 더 잘나고 더 잘하고 더 잘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실패한 삶을 살까 봐 전전긍긍하며 주어진 삶마저 즐기지 못하는 꼴이라니. 넘어진 순간에도 자존심을 놓지 못했다.


그 때의 나도, 지가 뭐라고 다른 사람에게는 청산유수처럼 조언을 해대곤 했다. 누군가를 응원하는 좋은 말 제조기가 되는 일은 쉽다. 그것이 나를 조금은 쓸모가 있다고 여기게 해주었다. 물론 오래가지는 않았다. 정작 나 자신에게는 그런 말들을 해주지도 못했다.


나아가고 싶은데 한 발짝도 떼지 못했다. 거울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눈에 낀 눈곱 하나를 떼려고 해도 거울을 들여다 보는 것이 도움이 될 텐데. 나약하고 초라한 내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추는 세상이라는 거울을 마주하는 것은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감추고 싶고 외면하고 싶었던 거울 속의 나는, 웅크린 채로 내가 자신을 바라봐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롯이 마주하는 데 참 오래도 걸렸다. 그 나와 함께 웅크렸던 시간들이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하다. 나의 눈물을 닦아주고, 나를 알아주고, 나를 안아줄 수 있었기에.


아무리 일어나라고, 일어나려고 해도 다시 무너지던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신나게 새로운 걸음을 내딛는다. 자신들이 내민 손을 잡아주길 기다리던 많은 이들도 함께다. 이제는 거울 속의 나도 환하게 웃고 있다. 세상과 마주하는 일이 힘들었던 건, 내가 나를 외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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