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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명한이야기 Oct 28. 2024

선명한 이야기

에너지 민감자로서 동물 같은 감각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

어릴 적부터 저에게는 다소 특이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한 번 본 사람은 웬만해선 절대 잊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제가 어떻게 스쳐 지나간 사람들까지 모두 기억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굴을 기억한다기보다는 그 사람만의 고유의 에너지장을 기억하는 것 같습니다. 뒷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고, 문자나 전화를 자주 나눈 사이라면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더라도 알아볼 때가 있습니다.


몇 달 전 마트에서 신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장을 보다가 통조림 수프를 고르는데, 누군가 지나가는 순간 'xx이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저도 모르게 뒤돌아서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 사람도 돌아봤는데, 정말 예전 직장동료가 맞았습니다. 남편은 사람 많은 곳에서 얼굴도 보지 않고 어떻게 아냐고 하지만, 보통 이런 경우 그 사람의 얼굴이 마음속에서 수욱 올라와서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한번은 남편과 TV를 보다가 어떤 단역 배우가 스쳐 지나가듯 화면에 나왔습니다. 그 순간 예전에 본 적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결혼 초 신혼 시절에 봤던 미드의 한 에피소드에서 심장병 환자 역할로 잠깐 나왔던 그 앳된 얼굴이었죠. 10년이나 지났는데도 한 번 본 사람의 얼굴이 이렇게 선명하게 남아있다니, 그때 문득 깨달았습니다. 제가 단순히 얼굴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만의 특별한 에너지나 패턴을 기억하고 있다가 다시 만났을 때 그것을 알아보는 것 같다고요.


몇 달 전 한국에 들어갔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숙모와 병원에 갔는데, 주말이라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겨우 찾은 의자에 기대어 쉬고 있을 때,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지나가는 한 분의 에너지가 탁 튀듯 느껴졌습니다. '뭐지?' 라고 생각했는데 순간 대리 방생을 해주시는 사모님과 비슷한 느낌의 에너지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저는 몇 년째 한 달에 한두 번씩 방생을 하는데, 캐나다에 살면서도 이분 덕분에 한국에서 대리 방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늘 카톡으로만 연락하던 사이라 얼굴을 본 적은 없었지만, 접수하시는 모습을 보니 카톡명과 동일한 이름으로 그분이 맞았습니다. 더 신기한 건 제가 그날 오후에 그분의 사업장에 직접 가서 물고기를 사서 배 방생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인연이 있어서인지 직접 만난 적 없는 분도 느낌만으로 알아볼 수 있나 봅니다.


이 능력은 때때로 유용하게 쓰입니다. 예를 들어, 강아지 산책을 나가려 할 때 전에 다툼이 있었던 이웃을 피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그 사람은 지금 어디쯤에 있을까, 지나가면 나가야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곧이어 어렴풋이 위치가 느껴집니다. 그리곤 잠시 기다렸다가 나가면 어김없이 그 타이밍이 맞아떨어집니다.


반대로 좋은 방향으로도 활용됩니다. 동네에서 좋아하는 이웃분이 있는데,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다그분과 강아지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문득 창밖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어김없이 그분이 강아지와 산책하는 모습과 마주치게 되죠.


이런 감각은 이제 제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도움이 되지만, 이제는 이 감각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영적인 것에 민감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이런 감각들을 무시하고 억누르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있는 그대로의 저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려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제 자신을 정직하게 마주하기 시작하니,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동안 제가 필요로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제 영혼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로 풀어내기 시작했어요. 너무 오래 안에만 담아두니 결국 마음이 아파왔거든요. 이제는 글로 쓰고, 그림으로 그리고, 이야기로 나누면서 제 모습 그대로를 표현하며 살아가려 합니다.


이런 글을 쓰는 또 다른 이유는 비슷한 경험을 하는 분들에게 '당신 혼자가 아니에요'라고 말해주고 싶어서입니다. 실제로 제가 겪은 과정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는 누군가가 제 곁에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도, 그리고 저 자신에게도 늘 말합니다. 우리 모두 괜찮을 거라고요.


모든 사람의 여정은 다릅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 이유 없이 일어나지 않죠.
우리가 선택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대응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시각과 사고를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풀어내는 방법으로요.

앞으로도 이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르는 특별한 감각과 어떻게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지 탐구해 나갈 것 같습니다. 이것이 단순한 직감을 넘어선 무언가일 수도 있고, 어쩌면 우리 모두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었지만 잊어버린 능력일 수도 있겠죠. 때로는 이 감각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이제는 이를 통해 세상과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연결되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 여정이 저를 어디로 이끌지, 그리고 제가 이를 통해 어떤 그림들을 그리게 될지 기대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힘들고 외로운 순간도 있겠지만, 그 순간조차도 우리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끄는 과정의 일부일 것입니다. 지금 이러한 예민함과 이해받기 곤란한 감정의 에너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너무 식상하게 들리거나 막연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되어 있고, 각자의 방식으로 이 여정을 함께 걷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기억합시다, 우리 전부 다 괜찮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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