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 Mar 12. 2019

퇴사날로부터 3개월 후

이런 생각하고 삽니다.

노량진역


 퇴사한지 오늘부로 3개월하고도 12일이 지나갑니다. 11월 30일까지 꽉 채워 근무했더니 날짜 세기가 참 쉽네요. 퇴사한 날짜를 이렇게 열심히 세는 건 역시, 조급해서입니다. 여백이 필요한 건 캔버스지 내 이력서가 아니니까요. 


 3개월이라는, 회사에서는 한 분기에 해당하는 기간이 지났는데 저는 여전히 아무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력서만 공백인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특정 분야의 지식 축적에 있어서도 無일까봐 겁나 죽겠습니다. 나 스스로에게도 이 순간이 떳떳하고 싶은데 말이죠. 


뭘 했더라... 


 이 대사를 나 자신에게 하는 일만큼 두려운 일이 없습니다. 내가 그때 뭐했더라? 나는 그때 어디에 있었지? 이걸 해서 결과가 뭐가 나왔지?


 뭐라도 한 흔적을 남기려고 요새 나름 열심히 움직이며 사는 중입니다. 다만, 이게 과연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몰라서 답답할 뿐이죠. '난 뭘 했어!'라고 결과를 내고 싶고 결론을 내리고 싶은데 지금은 제가 하는 모든 일들에 물음표만 가득합니다. 요새 내 삶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어요. 어렵네요.


 지금 하는 일이 즐거워야 한다고 누가 그러더군요. 그 일을 잘하고 싶으면 좋아하거나 즐겨야 한다고. 그러면 어느 순간 그 분야에서 경험치든 지식이든 네가 원하는 게 쌓여있을거라고.


 그런데 어쩌나. 결과 지향주의 사고에 빠진 저는 즐거움의 포인트가 과정보다 성취에 맞춰져 있습니다. 이걸 해서 무언갈 달성해야만 즐겁고 기쁜 그런 사고 방식 말이죠. 내가 시험을 잘 봐서 1등을 했든, 이걸로 자격증을 땄든, 생산적이어 보이는 OO을 해내야만 즐거워요. 일례로, 꽂꽂이 수업은 재미가 없습니다. 꽃을 만지는 과정에서 대체 뭘 얻는지 잘 모르겠어서요. 하지만 목공은 재밌었어요. 수업이 끝날때 마다 내가 배운 기술로 뭘 만들 수 있는지 분명했으니까요.


 스티브잡스가 Connecting Dots라는 개념을 이야기했을 때 온몸이 짜릿짜릿했습니다. 목적이 불분명한 일은 싫어하는 저라도 말이죠. 내가 배우는 모든 것이 언젠가는 연결 되는 거구나. 그 점들이 결국엔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구나. 그의 말이 맞다면 내가 겪는 모든 일들과 경험과 배움이 의미있다는 이야기니까요 효율성이 낮든, 유용성이 모자라든, 목적이 없든 관계 없이 말이죠.


 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지금의 저는 그 조차도 결과론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지나고 보니 그 배움을 썼네!라는 거잖아요. 결과적으로 그게 의미가 있으려면 -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 유용해야 한다는 뜻 아닌가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고요?"


답답하다고요. 

빨리 결과를 내고 싶다고요. 

결과론적으로 볼 때, 지금 '뭐 했다'가 빨리 남았으면 좋겠다는 말이에요.

어서 지금 이 공백이 의미 없는 순간이 아니라고 증명하고 싶고요. 

그래야, 저도 이런 말 해보잖아요.


버텨라. 기다려라. 스프링이 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건 튀어오른 사람들 이야기고요.

영위하는 현재 이 순간들이 계속 공백이고 계속 無인 저는 끊임없이 가치를 증명해야해요. 특히 회사에 적을 두지 않아서 더욱.


 부지런하게 살아보겠습니다. 부지런히, 더 부지런히. 그러면 뭐라도 결과는 내겠죠. 그 결과가 작든 크든, 좋든 나쁘든.


 

매거진의 이전글 Bucket List 삭제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