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편집자의 취향 확립 프로젝트
재능이 없는 사람이 전공에 대해 가지는
일방향적 애정은 아이돌 덕질과 퍽 닮아있다.
언제나 애닳고 고달프기 때문이다.
나를 알아줄 리 없는데 공허하게 내가 너를 얼마나 애정하는지 외치고, 혼자 상처받고, 그런데도 놓지를 못한다.
때문에 삶이 망가지는데도 그것도 모르고
망가지는 와중에도 덕분에 웃는다.
내 전공인 역사를 향한 나의 마음도 그러했다.
지리하고 고루하기 그지 없어보이는,
먼지 뽀얗게 쌓인 퀘퀘 묵은 그 녀석을 내가 참 좋아했다.
자꾸 들여다보면 나를 좋아해줄까 싶어 오랜 시간 놓지 못하고 들여다봤는데 여전히 그 녀석은 나에게 어떠한 대답도 해주지 않는다.
'네가 가는 길에 내가 있어.'라는 믿음을 주었다면 내가 더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질 수 있었을까?
그럼 그 끝엔 구원이 있었을까?
내 학창시절은, 그리고 20대는, 내내 그 믿음을 갈구하는 시간이었다.
언제부터 좋아했더라? 덕질의 시작이 그러하듯이 처음 좋아하게 된 계기나 기억도 어렴풋하다.
그냥 정신 차리고 보니 이미 푹 빠진 뒤였고, 그래서 생의 내내 좋아한 기억 뿐이다.
아빠와 사극을 같이 보던 날의 즐거웠던 기억, 초등학교 역사 시간에 마침 그 사극 내용이 나와서 흥분했던 기억, 중학교 장래희망란에 역사 학자를 적어내며 비장한 마음이 들던 기억, 하필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한테 첫 눈에 반한 기억, 고등학교 3년 내내 야자실에서 역사만 들여다보던 기억, 결국 수시 원서에 온통 사학과를 채워넣었던 기억, 그렇게 사학과 합격증을 두 개 쥐어들고 기대에 찼던 기억.
그 작은 기억 하나 하나가 모여 아직도 역사책을 들여다보고 역사로 밥을 벌어 먹는 오늘의 내가 되었다.
그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역사는 한국사, 그 중에서도 근현대사이다.
대학 동기는 한국 근현대사를 좋아한다는 내게 자기는 가장 싫어하는 시대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너무 마음이 힘들잖아. 너무 차갑고 어두워.“
하지만 나에게 그 시대는 차갑기보단 뜨거움에 가까웠다. 행간에서 느껴지는 그 때의 그 사람들의 희망, 의지, 염원, 꿈은 차갑고 어두운 시대마저 지워내기에 충분했으니까.
그리고 생각했다.
역사가 인간을 이야기하는 학문이라면,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한 학문이라면, 그 시대의 온도는 응당 그 온도여야 한다고.
그렇게 마음 한 켠에서 함께 따끈하게 끓어오르는 무언가가 느껴질 때면 내가 우주 속 먼지나 티끌이 아니라 이 땅에 발 붙이고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이 깨달아졌다.
내가 우주 속 먼지나 티끌이 아니구나.
나 같은 인간들이 모여 역사가 되는구나.
역사는 우리의 이야기구나, 아니 나의 이야기구나.
그러니 내가 수학보다, 과학보다, 영어보다, 역사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 사랑의 결말은 실패라고 말할 수 있다.
원하던대로 역사학자도, 역사 교사도 못되었으니 우선 내 짝사랑은 실패한 셈이다.
그런데 아직도 나는 서점에 가면 자연스레 역사 코너부터 찾는다. 결국 집어드는 책도 역사책이다.
채널을 돌리다가 눈이 오래 머무는 것은 사극이고, 오랜만에 극장으로 내 발걸음을 이끄는 것은 시대극이다.
이렇게나 온 세상이 역사인데,
이제 나는 인정해야만 한다.
나는 역사를 사랑하지 않는 법을 모른다.
온 생을 바쳐 애정하였으나 원망해 마지 않는,
이,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