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존해주세요 (8) 보노보노입니다만

30대 편집자의 취향 확립 프로젝트

by 선선

어린 시절부터 내 별명은 보노보노였다.

동그란 얼굴, 작은 눈과 입, 그래서 얼굴에 여백이 많은 점이 보노보노를 닮아서였다.

오죽 닮았으면 학교에서 수업하고 있는데 날 보던 남학생들이 자기들끼리 키득거리며 보노보노를 그리고 그 위에 안경을 그려넣고 있었다.



어쨌거나 남들이 봐도, 내가 봐도 날 닮은 이 캐릭터는 '해달'이다.

많이들 헷갈려하는 수달과는 외형적으로도 서식지면에서도 구분이 된다.

수달은 강가에 살면서 미끈하고 샐쭉한 외형을 가졌고, 해달은 바다 위에 둥둥 떠있는 둥그렇고 어찌보면 조금 맹한 외형을 가졌다. 갸웃거리는 맹한 표정에 퍽 어울리게 바다 위에 평온하게 누워서 둥둥 떠다니는 모습으로 주로 목격된다.


그래서 실은 ‘보노보노‘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내 작은 눈과 동그란 얼굴을 더 부각시키는 것 같았으니까. 맥없이 포로리야, 라고 외치는 보노보노의 맹한 모습이 나에게 오버랩되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내가 보노보노라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었다. 물놀이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물놀이는 멋지게 영법을 구사해내는 수영과는 조금 다르다. 그냥 물 안에서 잠겼다가 부유하기도 하고, 물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물장구를 치거나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보는, 물놀이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수영을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제법 각 잡힌 팔놀림을 보이는 수영보다 제멋대로 마음대로 물에서 노는 그 모든 것이 나는 참 좋았다.


나는 물 속에서 보다 자유로운 내가 좋았다.



땅바닥을 딛을 때와 다르게 차갑게 일렁이는 감촉이 다리에 닿을 때면 걱정과 고민은 물에 씻겨지고 희석되었다. 일렁이는 물에 당장의 고민은 풀어지고 지금 이 순간, 물의 감촉과 물 속의 나에게만 온 신경이 집중된다.


발 끝에서, 종아리를 거쳐, 허리쯤까지 물로 채우면 살짝이 부유하는 듯한 느낌에 발이 저절로 떨어진다. 그리고 조금 더 용기를 내 물에 내 온 몸을 맡기면 발끝부터 머리까지 이내 물 위에 수평으로 떠오르며 비로소 온 생을 지탱하며 살던 땅 위에서 벗어나는듯한 자유가 느껴진다.


그래서, 그 부유하는 자유로움에 나는 물이 좋았다. 수영을 못하면서도 물 속에 있노라면 느껴지는 둥실한 느낌이 좋았다.





나는 물 속의 새로운 세상을 모험하는 내가 좋았다.



도수를 넣은 수경을 얼굴에 꽉 압착시키고 숨을 한껏 불어넣어 볼을 팽팽하게 부풀리고는 비장한 표정으로 물 속으로 잠수하면 수영장에서는 파아란 수영장 물이 빛과 만나 일렁이는 모습이 보이고, 바다에서는 여러 바닷 속 친구들이 보인다. 이 땅 위와는 사뭇 다른 이 세계로 진입한 느낌에 다른 세상에서의 나를 그리게 된다.








이제 그만 나와. 집에 가야지.

물 속에서 먹먹히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가 인어의 목소리 같다.


정신을 차리고 홀린듯 다시 땅 위에 발을 딛는다. 내가 살던 세계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찰랑이는 물을 뒤로 한 채, 땅에서 발을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며 작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래, 물 위에 둥 떠있는 보노보노도 제법 괜찮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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