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쌔신”
“스나이퍼”
도대체 어떻게 J의 성격에 한 직장을 20년 넘게 다녔을까 신기하다면서 J의 조카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맞다. 그럴지도!”
J도 몇 번이다 직장을 그만두려고 했었다. 점집도 가보고, 철학관도 가보고, 타로도 봤다.
“도대체 이 직장에 어떻게 다니세요? 답답할텐데!”
“글쎄 말이에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런지 다니게 되네요!”
“그런데, 지금 직장인 천직이네요! 어짜피 거기 그만둬도 관공서에서 일할겁니다. 그냥 지금 직장 다니세요!”
‘이런 아이러니가? 이 직장에 다닐 성격이 아닌데 천직이라고?’
J는 한참을 생각했다. 이게 무슨 말일까? 지금 직장을 다니면서 특이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긴, 특이하다는 말은 어릴 때부터 계속 듣던 말이었으니 상관없었다. 하지만 ‘4차원 또라이’ 소리를 듣는데 천직이라니?
생각해보면, 천직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을 수도 있었다. 복잡한거 싫어하고, 인관관계에 힘든 J에게 남눈치 안보고, 맡은 업무만 할 수 있는 지금 직장은 천직일 수도 있었다. 창의력을 짜내야 하는 업무는 아니니, 오히려 심리적 부담은 덜했다. 크게 비리가 없다면 짤릴 위험도 없었다. 무엇보다 아직도 일이 재밌다면 그게 천직이지 않을까?
J는 처음 직장에 출근한 때를 떠올렸다. J는 입사자들 중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고, 지원 가능한 마지막 해에 합격했다. 예전 직장은 사무실에 혼자 일했지만, 새로운 직장은 한 사무실에 60명이 넘게 있었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근무를 했고, ‘○○과 ○○담당 ○○○입니다.‘ 라는 인사말이 뿌듯했다.
하지만 20년 넘는 직장생활 동안 요지부동의 고지식한 근무 환경이 J의 숨통을 조여왔고, 몇 번이나 탈출을 시도했었다. 하지만 결국 천직이라는 한마디에 탈출대신 버틸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했다. 그 시작이 취미생활이었다. 운동을 하고, 악기를 배우고, 그림을 배웠다. 다음은 공부였다. 대학에 편입해 공부를 시작했다. 몇 번의 휴⋅복학을 되풀이했지만 입학 10년 만에 결국 대학교를 졸업했다. 하지만 공부도 딱히 탈출구가 되지 못했고, ’천직이라고 퇴직때까지 직장을 다녀야만 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언제가 방송에서 사주풀이에선 자신이 사기꾼으로 나온다고 웃으며 말하던 마술사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마술사는 사람을 속이는 직업이니까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J도 굳이 이 직장이 아니어도 다른 곳에서 비슷한 업무를 하면서 꿈을 펼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조카 친구들의 말이 맞을 지도 모른다. J는 자신과 맞지 않은 것은 철저히 배제했고, 다른 사람의 눈치도 보지 않았다. 이제껏 큰 탈이 없었던 것을 보면 정말 복이 많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래! 20년이면 오래 있기도 했다. 이제 다른 곳을 찾아봐야지! 어쩌면 나의 저격(!)이 필요한 또다른 곳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새로운 인생을 기대하며 J는 남은 생은 무엇을 하면 좋을지 다시 또 찾기 시작했다. 인생의 저격수로 살아온 J, 이제 조준점을 다시 맞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