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는 하고잽이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느끼면 참지 못한다. 욕심도 많고, 성취욕도 강하다.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이 재미있어 보이기만 해도 따라 했다.
J는 이기주 작가의 서체를 좋아했다. 동글동글한 자신의 글씨체와 달리, 단단하고 어른스러운 느낌이 들어서다. 한때는 그 작가의 글씨체로 바꾸고 싶어 유튜브 영상을 보고, 글을 캡처해 출력해 따라 써보기도 했다. 하지만 연습이 부족했는지, 혹은 50년 넘게 써온 손글씨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글씨체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어쩌면 그건 나름의 자존심이었는지도 모른다. 악필도 아닌데, 굳이 왜?
그런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자신의 그림에, 자신의 마음을 담은 문장을 , 자신의 글씨로 함께 표현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다시 이기주 작가의 서체를 연습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서체와 J의 그림은 어울리지 않았다. 잘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은 것처럼 글과 그림의 결이 어긋났다.
며칠 전, J는 철학관에 다녀왔다.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해왔지만 여전히 지금의 일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가오는 퇴직이 두려웠다. 무엇을 해야 할지 답답한 마음에 친구와 함께 조언을 들으러 간 것이다. 그 친구는 J가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었다. 25년을 넘게 알고 지냈고, 성격도 가치관도 J와 비슷했다. J는 그 친구의 많은 것들이 부러웠다. 열심히 사는 모습,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밝은 성격, 그리고, 글씨체까지. 친구의 글씨체는 J가 그렇게 배우고 싶었던 이기주 작가의 글씨체와 닮아 있었다.
한때는 친구라면, 친하다면 모든 것을 함께 해야 한다고 믿었다. 친구가 좋아하면 본인도 좋아해야 하고, 개인사까지도 공유해야 진짜 친구라고 여겼다. 바보 같지만, 그렇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J는 철학관에서 친구와 자신의 사주를 보고 놀랐다. ‘합이 좋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건 같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 친구가 잘하는 것과 자신이 추구하는 것은 서로 달랐다.
J는 며칠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가족도, 친구도 아닌 ‘온전히 자신’에 대해 고민했다. 그동안 재미있을 것 같아서, 밥벌이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폼나 보여서 어떤 일을 선택해 왔었다. 하지만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마주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했으면 좋겠다.”에서 “~하자.” “~해야겠다.”로. 남을 닮기보다는 이제는 자신에게 맞는 것을 하기로 했다.
지난 일주일, J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정리했고 해야 할 일도 적어두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해보기로 했다. 물론 걱정도 되었다. 잘 할 수 있을까? 끝까지 갈 수 있을까? 그런데 해야 할 일들이 선명해지자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고민의 끝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민한 시간만큼, 나는 조금 더 성장했다.”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을 직접 정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지 않을까? J의 매일 그렇게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