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을 10년 넘게 했다. 30대 중반에 시작한 이 운동은 내 30대와 40대를 통째로 덮을 만큼 뜨겁게, 그리고 길게 나를 사로잡았다. 주변에선 “태릉 선수촌 들어가는 거 아니냐”며 웃었고, 나는 그 말이 싫지 않았다. 비록 지금은 발목 수술로 라켓을 내려놓았지만, 미련은 없다.
내가 사는 동네엔 초·중·고등학생 배드민턴 선수 육성 학교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방과 후 배드민턴을 치는 아이들이 많았고, 선수가 아니더라도 방과후 운동으로 배드민턴을 잘 치는 아이들도 많았다.
내가 속했던 배드민턴 클럽은 신생 클럽으로 회원 수는 30명 남짓이지만 20대와 40대가 절반씩 있었다. 그래서일까. 10대 후반의 그 친구도 우리 클럽에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게임 대신 운동을 선택한 것도 기특했지만, 무엇보다 공부 대신 클럽에 나가는 걸 허락한 부모님이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7년, 동네에서 <어르신 및 가족 배드민턴 대회>가 열렸다. 클럽 재무였던 나는 참가 신청을 받으며 그 친구에게 물었다.
“나가보고 싶어?”
“가고 싶긴 한데, 가족 중에 배드민턴 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럼 이모랑 나갈래?”
“예??”
“어차피 너 나한테 이모라고 부르잖아. 우리가 상 받을 것도 아닌데 한 팀이라도 더 참가하면 경기도 많이 하고 좋지.”
그렇게 우리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가족 배드민턴 대회’에 당당히 출전했다. 3전 2승 1패! 비록 상은 못 탔지만 우린 환상의 콤비였다. 함께 이뤄낸 성취, 몸으로 기억하는 팀워크는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이야기 소재가 되었다. 그러고 몇 년 뒤 그 친구는 군대에 갔고, 곧 코로나가 찾아와서 나는 운동을 완전히 접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출근길, 아파트 관리사무소 앞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이모!!”
"엉? 누가?"
고개를 돌리니 그 친구가 차를 몰고 내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맞다. 우리 아파트 옆동에 살았던 그 친구. 그런데 어떻게 8년 가까이 한 번도 마주지치 않았지? 그 친구 차 뒤로 줄지어 따라오는 차량들 때문에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헤어졌다.
‘이제 20대 중반쯤 됐겠지?’‘코로나 전에 군대를 갔으니까 대학교도 졸업했겠다!’
급하게 핸드폰을 열었지만, 연락처는 없었다. 운동을 그만두면서 클럽 사람들 연락처를 정리한 게 지금 이렇게 아쉬울 줄은 몰랐다.
“이럴 때만 부지런하다니까...”
비록 운동은 그만뒀지만, 함께 코트를 누볐던 사람들에게 너무 무심했구나, 싶었다. 5월, 가정의 달. 이참에 나의 제2의 가족이었던클럽 사람들에게 연락 한 번 해봐야겠다. 내 인생의 5분의 1을 함께해 준 사람들. 정말 고마운 사람들. 운동은 끝났어도 내 마음속 코트 위에는 여전히 그들과 함께 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