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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의 일상-그건 배려가 아니라 간섭입니다

by 조카사랑

J는 퇴근 후 동호회 회식에 참석했다. 출장 일정까지 소화하느라 몸은 이미 무거웠고, 하루 종일 에어컨 바람을 쐬었던 탓에 머리도 맑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마주하는 얼굴들이 반가워 기꺼이 자리에 앉았다. 회식하면 역시 고기. 배고픔에 못 이겨 J는 숯불 위에 고기를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나였다. 고기를 굽던 집게와 가위는 순식간에 동료에게 빼앗겼다. “왼손잡이가 굽는 건 어색해 보여서”라는 이유였다. 50년 넘게 들은 말인데도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어색해 보여도 그냥 두면 안 되는 걸까. 그렇게까지 완벽하게 ‘잘하는 모습’을 회식 자리에서도 보여줘야 하는지, J는 문득 피로감을 느꼈다.


그보다 더 불편한 건 따로 있었다. ‘괜찮다’고 말했는데도 계속 접시에 고기를 올리는 사람들이었다. J는 그날만 해도 열 번이 넘게 “괜찮습니다”라고 말한 것 같다. 점심 때 뷔페를 먹었던 터라 저녁까지 고기를 먹는 게 부담스러워 속도 조절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에게는 그 모습이 ‘아껴 먹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고기를 한 점 먹자마자, 누군가가 접시에 고기를 한 점 더 올렸다.


처음엔 예의상 먹었지만, 그 뒤로 계속해서 고기가 쌓였다. “괜찮아요”라고 말했는데도 또, “천천히 먹고 있어요”라고 해도 또. 고기 한 점이라도 집어 들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세 사람이 돌아가며 번갈아 접시에 고기를 놓기 시작했다. J는 점점 회식자리가 피곤해졌다.


비슷한 일이 예전에도 있었다. J는 매운 음식을 못 먹는다. 단순히 ‘안 먹는’ 것이 아니라, ‘못 먹는’ 쪽에 가깝다. 예전에 땡초김밥을 한 줄 먹고 숨이 막혀 정신을 잃을 뻔한 경험이 있었다. 너무 매워서 1분 가까이 숨을 쉬지 못했고, 이후로는 매운 음식에 대한 두려움이 남았다.


그런데 점심 회식으로 아구탕을 먹으러 갔던 날, 맞은편에 앉은 동료가 아무 말도 없이 땡초를 한숟가락 떠서 J의 탕그릇에 넣었다. 당황한 J는 반사적으로 큰 소리로 외쳤다. “저 매운 거 전혀 못 먹어요!” 그 자리에 국장도, 과장도 함께 있었다. 순간 공간이 정지된 듯한 기분이 들었고, 땡초를 넣은 사람도 당황해 고개를 들지 못했다. 누군가가 보면 별 거 아닌 일에 유난 떤다고 할 수도 있는 장면! J는 그때의 경험을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왜 사람들은 ‘괜찮다’는 말을 믿지 못할까. 왜 누군가의 거절은 늘 형식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마음의 경계는 그렇게 무시되는 걸까. 어쩌면 그런 사람들은 ‘배려’라고 믿으며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해 만족하는 걸지도 모른다. 또는, ‘내가 널 챙기고 있어’라는 통제의 형태로 다가오는 감정일 수도 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뜻이다. 사회가 바뀌었다면, 배려의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짜 배려는 상대의 자율을 지켜주는 일이다. ‘좋은 의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배려’로 상대가 불편함을 느꼈다면, 그것은 배려가 아니라 간섭이다.


당신의 배려가 누군가에게는 간섭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이제는 꼭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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