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이 20년을 넘기자, J는 일터안에서 숨 쉴 틈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동호회였다. 여러 모임 중에서 가장 마음이 끌린 건 볼링이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대학 시절, 친구들과 즐기던 그 시간의 기억이 남아 있었을 뿐이다.
정기전은 한 달에 한 번. 그것도 자주 빠졌기에 일 년 열 번이면 많이 나간 편이었다. 한 달에 한 번 겨우 나가는 실력으로 뭔가를 기대한다는 건 무리였다. 그저 참여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걸로 스스로를 다독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J는 볼링장에 갈 때마다 볼링핀이 쓰러지는 경쾌한 소리에 마음까지 시원하게 열리는 걸 느꼈다. 아마 그래서 10년 넘게 꾸준히 이어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운동은 역시 ‘도구발’! 실력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지만, 어느새 J도 볼이며 아대며 신발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정기전. 평소처럼 큰 기대 없이 첫 투구를 던진 순간, 또다시 자세가 어정쩡했다. 동호회 회원들이 팔을 더 올려보라거나, 발을 더 미끄러지듯 내밀어 보라는 조언이 이어졌다.
그때, 한 회원이 J의 발을 가리키며 말했다.
“○○○씨, 볼링화 미끄럼방지패드 방향이 이상한데요? 왼손잡이 아니세요?”
순간, J는 멈칫했다. 뭐가 잘못됐다는 걸까?
“왼손잡이면 미끄럼방지패드는 오른쪽 신발에 있어야 하는데, 지금 반대로 되어 있어요.”
“……엥??”
머릿속이 하얘졌다. 5년 전 볼링화를 맞출 때 분명 왼손잡이라고 얘기했는데, 전문가가 그대로 부착해준 걸 자신은 그저 믿고 신어왔을 뿐이었다.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숨고 싶었다.
‘이래서 매번 이상했구나… 발이 늘 어색했지.’
스스로를 탓하기도, 누구를 탓하기도 애매한 그 순간. 짜증보다 허탈함이 더 크게 밀려왔다.
‘왜 나는 늘 뭔가 하나씩 어긋날까.’
이런 상황은 처음이 아니었다. 남들은 수월히 지나가는 일들이, J에게는 꼭 한 번씩 탈이 났다. 새로운 걸 시작할 때마다 기대보다 먼저 불안이 앞섰다. 이번엔 또 어떤 문제가 나를 지치게 할까—그런 걱정이 마음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조금은 편하게 살고 싶은데, 왜 아직도 이런 사소한 일들이 나를 붙잡는 걸까. 마음 한 켠이 지쳐 내려앉았다.
하지만 또 다른 생각도 따라왔다.
‘그래도 아직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니까 생기는 거겠지.’
‘아직 배울 게 남았다는 뜻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오늘의 이 어긋남도 다르게 보였다. 실수가 부끄러운 게 아니라, 여전히 배우고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어김없이 어긋난 하루. 하지만 어쩌면, 그 어긋남 덕분에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괜히 초라해지지 말자. 이런 날들까지도, 결국은 삶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