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 위해 나를 내려놓다

《상처조차 아름다운 당신에게》를 읽고

by 조카사랑


‘말하기와 글쓰기’는 모두가 잘하고 싶어 하지만, ‘읽기와 듣기를 잘하고 싶다’는 소망을 지니기는 쉽지 않다. - 《상처조차 아름다운 당신에게(정여울저, 은행나무, 2020)》 p23 –


나도 그랬다. 유튜브 강의와 특강에서 강사들의 현란한 말솜씨에 매번 압도당했다. ‘나도 저렇게 강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열망이 오래 나를 붙잡았다. 성격이 급해 느릿한 말투를 들으면 답답했고,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는 견디기 힘들었다.


간혹 청중을 사로잡지 못하는 강사를 만나면 속으로 단정했다. ‘아, 글을 잘 쓴다고 해서 말까지 잘하는 건 아니구나.’ 그건 섣부른 결론이었지만,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관심 있는 이야기만 귀에 담았고, 누군가 말하는 중에도 끼어들 타이밍을 찾았다. 고민을 털어놓는 이가 있으면, 내 좁은 식견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려 했다. 한동안 ‘듣기’를 소극적이거나 무능한 태도로 오해했다. 아는 게 부족해 대화에 끼지 못해 듣기만 하는 거라고.


그러다 어느 날, 이런 태도가 아집과 독선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마주했다. 그제야 조금씩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이 깨달음은 ‘읽기’에도 같았다. 내 삶 챙기기도 바빠 남의 이야기는 필요 없다고 여겨 소설을 멀리했다. 그 안에 세상 모든 ‘인간 군상’이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공감 능력을 키우고 싶어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 그 안에 내가 있었고, 내 가족이 있었고, 내 친구들이 있었다. 《도리안 그레이》(오스카 와일드, 열린책들, 2010)에서는 외모와 젊음에 집착할 때 인간이 얼마나 추악하게 변할 수 있는지를 보았고, 《사하맨션》(조남주, 민음사, 2019)에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냉혹한 시선을 마주했다. 그러면서도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며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책장을 덮을 때면, 마음 한켠이 오래 울렸다. 귀를 열면 마음이 넓어지 듯, 책장을 넘기면 세계가 넓어졌다.


자고 나면 세상이 달라져 있는 요즘, 변화에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럼에도 AI를 배우고, SNS를 하고, 유튜브 영상을 만든다. 처음엔 부업 가능성에 설렜지만, 지금은 그보다 새로운 세상을 알아가는 즐거움이 더 크다.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자신을 본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내려놓아야 한다. '내가 옳다'는 아집을 고수하면, 작은 깨달음조차 스며들지 않는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내 안의 빈 곳을 채우려는 노력이 있어야 비로소 배울 수 있다. 그 빈자리가 새로운 것으로 채워질 때, 그때 나는 조금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사람을 만나면 되도록 말을 덜 하려고 한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변화를 눈치채고, 성장을 응원한다. 굳이 해결책을 내놓지도 는다. 그저 함께하는 순간에 온전히 머문다. 때로는 말보다 진심 어린 침묵이 더 큰 위로가 되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조용히 귀를 연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듣고 차분히 읽는 삶을 지켜내는 사람. 듣기와 읽기는 우연히 주어지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의 여백을 의식적으로 비워낼 때 가능해진다. 그 여백 안에서, 나는 조금씩 더 넓어지고 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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