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를 읽고
심리학자 Elaine Aron의 연구에 기반한 과민한 사람(HSP) 테스트가 있다. 항상 나만 힘들 것 같아 아무 것도 하기 싫을 때 이 테스트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적당히 과민한 사람으로 나온다.(www.idrlabs.com/highly-sensitive-person 참고)
“그래! 까칠하긴 해도 사회생활에는 지장 없겠지? 25년 넘게 직장 생활을 버틴 걸 보면 말이야."
그래 이 정도면 괜찮다고, 다행이라 여기며 넘기려 했다. 하지만 이런 나의 기대는 책 한 권으로 인해 산산히 부서졌다.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최재훈저, 서스테인, 2024)》 에 나오는 예민한 기질 테스트 항목에서 '그렇다'가 13개 이상이면 매우 예민한 기질을 가진 사람일 확률이 높다고 하는데 나는 자그마치 18개 항목에서 '그렇다' 였다. 이쯤 되면 ‘당신은 매우 예민한 사람입니다’라고 공식 선고 받은 기분이었다. '4차원 또라이'라고 나의 성격이 약간 특이할 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과민성 성격이라서 그렇다니? 책에서 예민하지 않은 이유를 찾고 싶었지만, 읽을수록 온통 나의 이야기였다.
부정적인 생각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정신 건강의 측면에서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입니다. 가령 부정적인 쪽으로 계속해서 파고들다 보면 때로 실제 상황보다 훨씬 안 좋은 쪽으로 확대 해석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 모든 게 실제가 아니라, 단지 내향적인 HSP들의 머릿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라는 겁니다. 자신만의 동굴 속에 틀어박힌 채 머리를 감싸 쥐고 스스로 만든 어둠 속에서 사투하는 모습이랄까요? 넓고 깊은 마음에 굉장히 많은 것을 담고 있지만, 태생적으로 고여 있는 물이기에 조금만 오염이 되어도 수질이 안 좋아져 급속도로 상황이 악화되고 말죠. - p46 중에서 –
좀 더 일찍 내가 예민한 사람임을 알았다면 나를 좀 더 사랑하고, 나를 좀 더 이해했을까? 전에는 사람들과 의견이 맞지 않는 일이 있으면 '내가 너무 고집부렸나? 내가 양보했어야 했나?' 등 모든 것이 나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
과민한 내 성격을 알고 있었다면 남의 의견에 그렇게 신경 쓸 필요 없다고, 다른 사람은 나만큼 고민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위로라도 했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이제라도 알게되어서 다행이다. 지금은 '의견이 안 맞을 수도 있지'라고 넘길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하자 조금씩 내 삶에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다행인 것은, 주변에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상사와의 관계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 옆자리 직원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본인의 뭔가 잘못해서 그런걸까 걱정하는 것을 보며 '그렇지 않다. 너 잘못이 아니다. 그저 네가 조금 더 예민한 성향일 뿐이야. 그러니 고민하지 마. 그 사람들은 너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라고 조언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나의 조언 한마디에 고칠 성격이었으면 힘들어하지도 않았겠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다른 사람들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만 깨닫게 되어도 조금 더 편하게 생활할 수 있으니 다행이지 않을까.
또한 굳이 사람들과의 관계를 좋게 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예전에는 그래도 인간관계가 최고라는 생각에 나름 양보하고, 다른 사람의 편의를 생각했다면,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다. 나를 희생 하면서까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아무렇지 않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예전만큼 다른 사람과의 분쟁에서 죄의식을 덜 느게 된 것만 해도 드디어 내 감정에 숨통이 트인 듯했다.
그래서일까? 항상 다른 사람에 피해를 주지 않고 배려하는 삶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나도 조금씩 '내 것'이라는 것을 챙기기 시작했다. 내가 편해야, 다른 사람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가득 찬 컵에서 흘러 내린 물로 베풀어라'는 드라마 속 한 줄 대사가 가슴을 울렸다.
자신의 깊은 생각이 독이 되지 않으려면, 혼자 생각하고 혼자 마침표를 찍는 습관과 이별해야 합니다. - p48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