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에서 30년지기 친구가 서울로 올라왔다. 직장 때문에 10년 전에 춘천에 간 친구를 1년에 한두 번은 꼭 얼굴을 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얼굴을 못본지 1년이 훌쩍 넘었다. 이번엔 J가 서울에 간다는 소식에, 친구는 망설임 없이 버스를 타고 올라왔다.
‘친구라면 그 정도는 하지 않나?’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남이——아무리 친구라도——자신 때문에 번거로워하는 걸 싫어하는 J의 성격에, 친구의 이 거침없는 결정이 더욱 고마웠다.
공연 <팬텀>을 꼭 보고 싶어 하던 친구를 위해, 인간 매크로처럼 재빠른 J의 조카가 좋은 좌석으로 예매를 해주었다. 공연의 내용은 서로의 취향과 달랐지만, 무대장치며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는 가히 최고의 공연이라고 할 만했다. 공연이 끝나고 예약해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춘천까지 올라가야 하는 친구를 생각해, 냄새가 덜 나고 속이 불편하지 않은 메뉴를 고른 것이었다.
파스타와 스테이크. 맛은 훌륭했고 분위기도 깔끔했다. 하지만 J와 친구의 취향과는 어딘가 어긋났다. 둘이서 분위기 잡을 것도 아니고, 격식을 차린 공간이 오히려 불편했다. 평소 소주만 마시던 친구의 식성도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친구는 말했다.
“빨리 먹고 곱창 먹으러 가자.”
J가 잡은 숙소가 서울교대 근처라, 미리 찾아둔 맛집 중 곱창집이 있었다. 처음부터 가고 싶었지만 ‘냄새’와 ‘배부름’을 이유로 제외했었는데, 결국 1차 레스토랑을 마치고 그곳으로 향했다. 곱창과 대창을 시키고 폭탄주 잔을 부딪히는 순간, 둘 다 웃음을 터뜨렸다.
“캬~ 이 맛이야. 처음부터 올걸.”
사실 J는 친구가 서울로 온다고 했을 때 조금 걱정했었다. 둘 다 자기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는 성격이라, 1년만에 얼굴을 보면 어색할까 두려웠다. 그건 ‘친구’라는 말의 무게를 제대로 생각하지 못한 탓이었다. 요즘 살아가는 이야기, 건강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친구의 버스 시간이 다가왔다. 신나게 떠들고 웃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렇게 얼굴만 보면 되는 걸, 왜 꼭 친구가 나를 보러 와야만 한다고 생각했을까? 왜 친구가 바쁠 거라고 지레짐작했을까? 왜 나를 만나러 오는 걸 귀찮아할지도 모른다고 판단했을까?’
J는 친구를 지하철역까지 데려다 주며 다짐했다. 혼자만 배려한다고 생각하며, 혼자 판단하고, 지레짐작해 결정하는 성격을 조금은 고쳐야겠다고. 어쩌면 거절이 두려워, 상대방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돌아가는 친구의 말이 귀에 남았다.
“야, 너무 좋다. 또 서울 오면 꼭 연락해라. 춘천에서 서울까지 1시간 10분이면 오잖아. 이렇게라도 얼굴 보면 되지.”
J는 깨달았다. 이렇게 얼굴만 봐도 좋다. 그게 친구다. 세월이 쌓아 올린 우정이란, 시간을 맞추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맞추는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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