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는 다섯 날의 휴가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마지막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갑작스럽게 퍼붓기 시작한 비는 잠시 그를 멈춰 세웠다. 서울의 폭염에 대비해 준비해 두었던 장우산은 여행 내내 숙소에서 잠만 자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야 쓸모를 다하는 듯했다. 여행 중 괜히 우산을 샀다고 투덜댔던 자신이 무색해질 만큼, 비는 깊고도 후련하게 쏟아졌다.
'역시 나는 날씨 요정이야.‘
J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여행 내내 날씨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좋았고, 돌아오는 길에야 비가 내린 걸 보면, 어쩐지 그 말이 틀리지 않은 듯했다. 오히려 잠깐 쏟아진 비는 더위를 식혀주는 선물이었고, 거기에 무지개까지 등장하자 그는 웃고 말았다. 무지개가, 마치 자신이 돌아온 걸 반겨주는 듯 보였던 것이다. 마치, 부모님의 품처럼 따뜻하게.
처음에는 그저 ‘숙소에서 쉬기만 해도 좋다’는 심정으로 올라간 서울이었다. 하지만 J는 10여 년 전의 패키지 여행보다 훨씬 부지런히 서울 곳곳을 걸어 다녔다. 여행의 절반은 지하철에서 보냈고, 나머지 절반은 뜻밖의 우연과 기분 좋은 행운 속에서 보냈다.
사실 그는 ‘나홀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나도 같이 갈래’라며 나선 친한 동생 덕분에 수정되었다. 혼자서 떠날 뻔했던 여행은 그렇게 둘이 되었고, 결국엔 춘천에서 올라온 친구까지 셋이 되었다. 서울의 거리마다 함께 걸었던 순간들이 쌓여, 오롯이 J의 기억 속에 각인되었다.
쉰이 넘도록 회사 출장이나 교육을 제외하곤, J는 자신이 혼자 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으로 자각했다. 처음엔 조카와 함께할 계획이었지만, 조카는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고, 예약해둔 숙소를 취소하기 직전, 문득 ‘혼자라도 가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결정은 작은 반전이 아니라 인생의 한 챕터를 여는 전환점이었다.
같은 장소도, 함께하는 사람이 달라지면 새로운 추억이 된다는 말을 그는 이번 여행에서 실감했다. '그림이 느네'님과의 뜻밖의 만남은 그에게 왜 사람들이 여행을 반복해서 떠나는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늘 혼자 있는 걸 선호하고, 사람을 부담스러워했던 그였지만, 이번 여행에서의 만남들은 모두 선물처럼 다가왔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기쁨을 느낀 것이다.
그 여운은 뮤지컬 공연과 전시회에서도 이어졌다. 감정이 북받쳐 한동안 말조차 꺼낼 수 없었고, 글로 옮기려 해도 단어가 모자랐다. 그래서 J는 그날의 감정을 하루 또는 이틀 정도 묵혔다가 펜을 들었다. 조금만 더 글을 잘 썼더라면, 조금만 더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았지만, 그는 알았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면 그 감동은 금세 사라질 것이란 걸.
그래서 J는 오늘도 또박또박 글을 써내려간다. 이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그리고 다시 이 순간을 살아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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