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없이 떠난 서울 여행은, J에게 5일 내내 작은 시행착오를 안겼다. 20년 넘게 공직에서 계획을 세우고 따라가는 삶을 살아온 그녀는 요즘 일부러 계획을 세우지 않으려 한다. 무계획 속에서 예상치 못한 순간을 만날 때, 삶이 조금 더 다채롭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날도 그랬다. SNS 친구들이 추천한 ‘작가의 서재’라는 곳이 있었다. 인터넷 검색창에는 ‘3시간 무료 예약 가능’이라는 문구가 있었지만, J는 단순히 예쁜 카페쯤으로 생각했다. “그냥 커피 한 잔만 마시고 오면 되겠지.” 그렇게 아무런 준비 없이 40분 넘게 지하철을 타고 충무로로 향했다.
상가 건물 앞에 섰을 때, J는 잠시 멈칫했다. 오래된 상가 건물 외관이 어딘지 목적지와 맞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5층으로 향했다. 계단을 오르는 중년 여성 한 분이 보였다. ‘아, 저분도 가시나 보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따라갔다.
입구에서 그 여성은 번호키를 눌렀다. 그 순간, J는 뭔가 잘못됐다는 예감을 느꼈다. 어정쩡하게 서있는 J를 보며 ‘그녀는 어떻게 왔냐?’고 물어봤다. 서울여행 왔는데 친구들이 추천해서 왔다고, 예약해야 되는지 몰랐다고 J는 설명했다. 그녀는 자신 역시 처음 온 곳이라며, 블로그를 운영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잠깐 내부를 구경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지만, J의 관심은 ‘서재’보다도 이 낯선 블로거에게 더 향했다. 어떤 글을 쓰는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방해가 될까 말을 길게 잇지는 못했다.
충무로역 쪽으로 걸어가던 중, J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 여성분이었다. 멀리서 온 J가 그냥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 운영자에게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예약 없이 오셨는데, 같이 머물러도 될까요?”
그렇게 J는, 뜻밖의 초대장을 받았다.
‘작가의 서재’는 J가 오래 꿈꿔온 개인 작업실의 모습 그대로였다. 군더더기 없는 인테리어, 부드러운 조명, 차 소음조차 닿지 않는 조용함. 의자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J는 그곳에 두 시간 넘게 머물렀다. 각자의 블로그 주제부터 앞으로의 계획까지, 처음 만난 사람과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놀라웠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는 묘한 연대감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J는 평소 잘 쓰지 않던 방명록을 한 페이지 가득 채웠다.
아마 이런 우연과 행운은 다시 오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J는 오늘 하루가 자신이 왜 글을 쓰고, 왜 책을 읽고, 왜 블로그를 하는지를 다시 확인시켜 준 시간이었다고 느꼈다. “그래, 나는 지금 잘 살고 있어.” 그 확신이 그녀를 앞으로도 오래, 이 길 위에 머물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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