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의 일상 - 나를 멈추지 않게 하는 말

by 조카사랑

물이 올랐다는 말은, 요즘 J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화실만 가면 그림이 제법 그럴 듯하게 나왔다. 펜을 들기 전까지만 해도 “과연 이번에도 완성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면 종이 위에는 언제나 자신도 놀랄 만큼의 그림이 자리 잡았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파도치는 풍경 그림 샘플 몇 장을 받았을 때, J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걸 어떻게 그려… 아직 내 실력으론 무리인데...”


그러자 화실 원장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회장님은 뭐든 다 그릴 수 있으니까 아무거나 선택하세요.”


그 말은 격려였지만, J에게는 묘하게 부담이 되었다. ‘혹시 수업 시간에 다 못 그리면? 마음에 안 들면?’ 평소처럼, 시작도 전에 걱정부터 앞섰다.


연필로 대각선을 긋고 대략적인 밑그림을 잡은 뒤, 펜을 들었다. 위에서 내려올지, 아래에서 올라갈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중앙선을 가로질렀다.


“에라 모르겠다, 확실한 선부터 그리자.”


선이 흔들리지 않게 천천히 긋고, 밀도를 표현할 땐 펜 굵기를 달리했다. 가장 어두운 부분은 아예 펜 종류를 바꿨다. 그렇게 두 시간이 흘렀다. J는 개운한 마음으로 펜을 내려놓았다. 또 하나의 그림이 완성됐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던 하루가, 단순한 선 긋기로 회복되는 순간이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며 그림 때문에 늦게 들어온다는 J의 말에, 배웅하던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너, 그림은 참 오래한다.”


십 년 넘게 했던 배드민턴 이후 처음 듣는 칭찬이었다. 그때도, 인간관계에 지쳐 배드민턴을 그만두려 하던 J를 붙잡아준 건 아버지였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그렇게 좋아하는데 그만두면 아쉽잖아.”


그 한마디에 J는 다시 힘을 냈고, 다음 생활체육 대회에서 우승까지 했다. 그리고 지금은 운동 대신 그림 앞에서 그 말을 다시 듣고 있었다.


아버지의 말은, J가 ‘그림을 잘 그린다, 못 그린다’의 문제를 넘어 꾸준히 하는 사람,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해주는 듯했다.


“아, 누군가 나를 이렇게 믿어주는구나.”


그래서일까. 이날 그림이 유독 잘 나온 건, 아침에 들은 그 한마디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J는 다시금 깨달았다. 종이에 남은 선보다 오래가는 것은, 누군가의 믿음이었다. 그 믿음이야말로 자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가장 단단한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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