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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무쇠소녀 호소인입니다

에필로그: 시즌1 '어쩌다 달리기'를 마치며

by 햇살 드는 방

두 달 전, 무쇠도 아니고, 소녀는 더더욱 아닌 반백 살을 바라보는 평범한 아줌마가 뜬금없이 본인을 ‘무쇠소녀단’이라 호소하며, '철인 3종경기' 출전을 목표로 연재를 시작했다. 그것도 하루에 딱 10분씩만 운동하고 글 쓰며 준비해 보겠단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때의 내가 딱 그렇게 무식했고, 용감했다. 무모한 도전은 이렇게 막무가내로 시작되었다.


연재를 시작하고 친정 엄마의 근심 어린 전화를 여러 번 받아야 했다.

"무슨 철인 3종이야. 하지 마. 그만해."

"이 더위에 뛰고 있다고? 그러다 큰일 나."

"넘어졌다고? 많이 다쳤어? 아휴........."

염색 안 하면 엄마보다 내 머리가 더 하얄 것 같은데, 엄마는 아직도 자나 깨나 내 걱정이신가 보다. 하지만 염려는 염려고 응원은 응원, 내가 쓴 모든 글에는 엄마의 응원의 하트가 눌러져 있다.


그러고보면 연재를 하는 동안 감사하게도 참 많은 응원을 받았다. 나 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 도전이었음에도 많은 독자님들과 작가님들이 공감과 응원의 댓글을 남겨주셨고 그 마음들 덕분에 매일은 아니어도 계속 멈추지 않고 달리고, 쓸 수 있었다. 따뜻한 진심들 하나하나에 뜨거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이 연재는 9월 중순에 완결되었어야 했다. 주 5일 연재하겠다는 야심 찬 약속을 성실히 지켰다면. 그러나 무쇠가 되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도 나는 연재를 하는 동안 자주 멈춰 섰고, 고꾸라졌고, 주저앉았다. 달리기가 한창 재미있어지던 어느 날, 폭염경보 속 내리쬐는 태양을 피해 달려보겠다고 가로수에 바짝 붙어 뛰는 꼼수를 부리다 나무뿌리에 걸려 대차게 넘어졌다. 피가 줄줄 흐르는 왼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병원 문을 연 날로부터 열흘 동안은 운동도 글도 완전히 멈춰 있었다. 상처가 아물자 몸이 근질근질해져, 아직 이르다는 가족들의 만류에도 몰래 다시 뛰어 보았다. 걱정이 무색하게 아무렇지도 않았다. 또 다치면 큰일이니 슬슬 무리하지 말고 뛰자는 다짐은 조금씩 선선해지는 바람에 실려 또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고 나는 또 스멀스멀 신이 났다.


다시 뛴 지 닷새째 되던 날, 둘째 딸 생일을 기념해 무언가 특별한 선물을 해주고 싶어 딸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강까지 멈추지 않고 뛰어가 보기로 했다. 그날 처음으로 쉬지 않고 5km를 뛰었다. 하루에 10분씩만 운동하겠다고 스쿼트와 실내 자전거를 타다가 무엇에 홀렸는지 무작정 달리기를 시작한 지 딱 한 달 만이었다. 그날부터 거의 매일 꼬박꼬박 뛰기 시작했다. 아침에 뛰지 못한 날은 깜깜한 밤 일을 마치기가 무섭게 운동화를 꺼내신고 달려 나갔다. 어떤 날은 하루에 두 번 뛰기도 했다. 매미 소리 요란하던 여름 낮에 뛰다가 풀벌레 소리 선선한 초가을 밤바람을 가르며 달리자니 이대로 멈추지 않고 언제까지나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착각을 믿고 마냥 뛰어보고 싶던 어느 날, 거리를 정해놓지 않고 뛰고 싶은 만큼 뛰어보기로 했다. 30분을 멈추지 않고 달려 한강이 바라보이는 곳까지 갔다가 다시 30분을 뛰어 집 앞까지 돌아왔다. 워치도 없고, 물도 없고, 러닝복도 아니었다. 집에서 입던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등을 타고 흘러내린 땀에 엉덩이가 다 축축이 젖도록 뛰고 또 뛰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정말 뛰기만 했던 것 같다. 머릿속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고, 그저 사방으로 흘러가는 풍경만을 바라봤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트랙길을 쫓아 쉬지 않고 다리를 움직였다. 생각도 시간도 세상도 멈춘 듯한 순간이었다. 달릴수록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머리도 그 어느 때보다 맑았다. 다만 입술이 자꾸만 말라 혀로 연신 입술을 핥아내야 했다. 혀 끝에 퍼지던 찝찔하고 짭조름한 땀의 맛. 달리기의 맛이었다.


끝도 없이 달리고 싶던 마음에 브레이크를 걸고 마침내 멈춘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 왼쪽 햄스트링이 아픈 것을 넘어 뻣뻣하게 경직되는 것이 느껴졌다. 둘, 러닝 어플이 내가 달린 거리가 10km가 넘었음을 알려주었다. 얼떨결에 최장거리를 달렸음을 알아차리고 무념무상의 달리기를 기분 좋게 마무리했다.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달리는 일이 몸과 마음을 얼마나 상쾌하게 만들어 주는지 그날 처음으로 경험했다. 잊지 못할 짜릿함이고, 뿌듯함이었다.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내가 이렇게 달리기에 빠지게 될 줄은 몰랐다. 유튜브에 의존해 거실에서 반복하던 운동이 지루해 무작정 밖으로 나가 걷고 뛰기 시작한 그날의 선택이 상상도 못 한 큰 변화를 만들어냈다. 걷는 사람에서 뛰는 사람으로, 가끔 슬슬 걷고 운동하던 사람에서 매일 움직이고 가능한 자주 달리는 사람으로. 누가 시키지 않아도, 등 떠밀고 잔소리하지 않아도 내가 좋아서, 기꺼이 땀을 흘리고 트랙길을 달린다. 운동장을 달리고, 강변을 달리고, 동네를 달린다. 더 잘 달리고 싶어 안 하던 근력운동까지 시작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다리를 조금만 움직여도 하체 운동의 여파로 허리 아래 모든 근육들이 비명을 내지른다. 이제 근육통은 일상이 되었고, 땀에 젖어 축축한 운동복은 나의 자랑스러운 유니폼이 되었다. 느리고 둔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내가 어쩌다 이렇게 변했을까.


운동을 즐기게 된 후로 삶이 점점 단순해진다. 운동, 수업, 글쓰기 그리고 가족을 챙기는 일 외에 다른 일들에는 자연스럽게 에너지를 덜 쓰게 된다. 수업을 마치고 나면 습관처럼 한, 두 캔 씩 마시곤 했던 맥주와도 많이 멀어졌다. 주말이면 반복되던 과음과 과식의 빈도도 줄고 있다. 맥주와 음식이 주는 도파민에는 숙취와 소화불량이라는 대가가 따르지만 적당한 운동 후 찾아오는 만족감이란 도파민에는 후유증도 부작용도 없다.


연재 에필로그를 쓰려고 시작했는데 어느새 운동예찬이 되어버렸다. 이런 내 모습 나도 많이 낯설다. "달리기 신나! 운동 퐈이야!!"를 연신 외쳐대고 있지만 사실 진짜 내 모습은 쫄보 겁쟁이기도 하다. 얼마나 겁쟁이냐면 철인 3종 경기의 실체를 확인하기 두려워 여태 <무쇠소녀단> 방송도 제대로 못 보고 있다. 달리기랑 수영까지는 어찌어찌해볼 엄두가 나는데 사이클은 갈수록 더 시도해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달리기를 하면서 자전거 사고를 몇 번 목격하기도 했고, 내 몸 하나 통제하기도 버거운 운동신경으로 자전거까지 컨트롤할 수 있을지 점점 더 자신이 없어진다. 하지만 지레 겁먹고 포기하기엔 나는 여전히 너무도 초보 운동인일뿐이다. 초보 시절에만 할 수 있는 삽질과 시행착오와 무모한 도전을 아직은 계속 이어가고 싶다.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결국 지금의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믿기에.


<10분이면, 언젠가는 무쇠소녀단> 시즌 1은 '어쩌다 달리기'로 마무리되었다. 추운 겨울 동안 예전처럼 동면하지 않고 꾸준히 헉헉대고 땀 흘리며 달리고 운동할 생각이다. 제발. 그렇게 겨울을 잘 보내고 꽃 피는 봄이 오면 벚꽃길 달리는 러너가 되어 무쇠소녀 호소인 두 번째 이야기로 다시 찾아오고 싶다. 아마도 시즌 2는 '어쨌든 수영' 정도가 되지 않을까 슬며시 스포 해보며.........

“아무도 안물안궁이었을 아줌마의 테토녀 도전기를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덕분에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저의 두 번째 이야기도 꼭 함께해 주세요. 이제 당분간은 조용히 운동하고, 자유롭게 쓰고 싶은 글 쓰며 지내볼게요. 내일, 10월 25일은 제가 브런치에 첫 글을 올린 지 딱 1년째 되는 날이에요. 1주년 기념으로 제 인생 두 번째 브런치북 연재를 마감할 수 있어 기쁩니다:)”




<오늘의 운동 기록>
- 야외 달리기 5.5km
#20251024 #달리기기록 #뛰면서영상찍기어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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