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는 삶이 일깨워준 선물
한줄의 글을 쓰고 나면
나는 다른 땅을 밟고 있었다.
내가 낯설었다.
낯선 내 얼굴이 나는 좋았다.
그가 나를 보며
나직이 말했다.
살아보라.
- 한줄로 살아보라 / 김용택 -
쓰는 일이 나를 돌아보는 일인 줄, 써보기 전엔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매일 쓰다보니 한줄의 글이 가진 ‘나를 살게하는 힘’이 보다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글을 쓰니 내가 보이고, 내가 보이니 더 쓰고싶어졌습니다.
브런치에 쓴 첫 글은 중학교 시절의 기억 한 조각. 농구 대잔치에 열광하며, 아무 조건없이 독수리 오빠들을 응원하고, 동경하던 그때의 모습에서 지금도 여전히 나를 가슴 뛰고 살게하는 내 안의 순수한 열정을 만났습니다. 두번째 글에는 국민학교 시절 열심히 오리고 입혔지만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 모르게 사라져버린 종이 인형을 담았습니다. 몇 년동안 열심히 모았던 엽서들을 한 방에 잃어야했던 고등시절의 추억과 함께. 소중하게 모았던 것들을 떠나보냈던 오래전 기억들이 인간 관계의 유한함 앞에 느꼈던 무력감과 상실감을 위로해 주는 듯 했습니다. 고3 시절 하고싶은 일과 해야할 일 사이에서 줄다리기 하던 나의 모습을 쓸 때는 나의 딸들과 엄마를 생각했습니다. 지금 내 곁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을 하고 있는 고등학생 딸과 이제 한창 사춘기의 터널을 지나는 중학생 딸. 열심히 달려가다 이 길이 맞나, 문득 막막해져 외로울 때 멈추어 돌아보면 언제나 변함없이 나에게 응원을 보내주고 있었던 우리 엄마. 끈끈하게 이어진 모녀 삼대의 사랑의 연대 속에서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보았습니다.
오늘 쓰는 한 줄의 글이 나를 돌아보게 합니다. 이 한 줄의 글이 '나'로 살아가는 오늘의 기쁨과 감사함을 진심으로 우러나게 합니다. 과거를 기억하고 쓰는 일이 과거에 머무는 일이 아님을 이제는 압니다. 글을 쓰며 다시 만난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나를 돌아보게 하고, 지금의 나의 감정을 알아차리게 합니다. 바쁜 하루를 살던 중에 잠시 멈춰 한줄의 글을 쓸 때, 나는 다른 땅을 밟고 서있습니다. 다른 땅에 선 내가 낯설기도 하지만 그 낯선 모습이 마음에 듭니다. 글을 쓰다보면 마음 속에 가라앉아있던 ’나의 진짜 감정, 내가 진정 원하는 것, 내가 되고 싶은 나‘가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그것들은 때론 낯설지만 결국 그것이 나를 나답게 살아가게 하는 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 독서교실 아이들이 겨울방학에 읽고 싶은 책을 골랐습니다. 그 중에 눈에 띈 제목, <죽은 시인의 사회>. 저는 이 작품을 책보다 영화로 먼저 만났습니다. 한창 마음 속에 반항기가 차오르기 시작하던 중학생 시절 만난 인생 영화였지요. 단정한 교복을 입은 멋진 고등학생 오빠들이 왕창 등장하는 것도 설렘 포인트였지만, 무엇보다 제 심장을 뛰게 한건 ‘캡틴, 오 나의 캡틴’, 키튼 선생님이었습니다.
“할 수 있을 때 장미꽃 봉오리를 모으라.
웃고 있는 이 꽃도 내일은 다 죽을지니”
“이걸 라틴어로 표현하자면 ‘카르페 디엠’이지”
“믿거나 말거나 이 방에 있는 우리 모두
언젠가는 숨이 멎고 차갑게 식어 죽겠지.
오늘을 즐겨. 특별한 삶을 살아.”
존 키튼 (로빈 윌리엄스 Robin Williams)
”세상이 정해준 삶이 아닌 내가 옳다고 믿는 삶을 살아라.
오늘을 즐기며 특별한 하루를 살아라.“
키튼 선생님의 가르침은 제 마음에 장미꽃 씨앗을 심었습니다. 카르페 디엠. 현재를 즐겨라. 다시 오지 않을 지금을 누리며, 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
아이들과 책을 읽기 전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절반 가량을 함께 보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을 즐기는 특별한 삶이란 어떤 삶일까? 제가 생각하는 '키튼 선생님적 삶'이란, 흥청망청 쾌락에 취해 사는 삶도, 나의 기쁨만을 최고로 여기는 삶도, 거창하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삶도 아닙니다. 그것을 굳이 말로 정리하자면 당연하지 않은 오늘이라는 선물에 감사할 줄 아는 삶. 지금, 여기,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삶. 사소한 것일지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즐길 줄 아는 삶. 작고 시시한 일일지라도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삶. 저에게는 이런 삶이 바로 키튼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오늘을 즐기는 특별한 삶입니다. 우리 독서교실 청소년들이 책을 읽고 토론하며 어떤 답을 찾아갈지 매우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어차피 정해진 답은 없고, 꼭 답을 찾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각자가 나의 ‘카르페디엠’에 대해 생각해 보고, 정의 내려보는 시간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매일 쓰는 삶을 통해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나의 하루가 얼마나 많은 선택과, 이야기와, 가능성으로 채워져 있는지를 순간 순간 알아차립니다. 돌아보면 이것도 글감, 저것도 글감. 특별할 것 없던 나의 일상에 ‘글감 찾기’라는 렌즈가 껴지자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소중하게 반짝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소중히 여기는 일인가봅니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발견한 무언가를 누군가와 나누는 일이기도 합니다. 별것도 아닌 에피소드에 귀를 기울여주는 정스런 동기들의 모습이 언제나 든든한 응원이 됩니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통해, 내가 써내려간 작디 작은 생각을 함께 나눌 수 있어 행복합니다. 오늘도 브런치에는 끝도 없이 누군가의 삶이 올라오고 또 올라옵니다. 수많은 삶 중에도 여전히 나의 삶이 중요하고 유효한 이유는, 내가 글로 돌아본 나의 삶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삶 또한 이제 나에게는 그만큼 소중한 까닭입니다.
카르페 디엠, 카르페 디엠, 카르페 디엠.
당신도 평화로울 수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작은 욕심만 놓아준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