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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sallim Mar 21. 2022

집안을 그리며 살림하는 여자

머무는 공간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일상

그림이 좋다.

글씨를 쓰듯 그림을 그리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글자를 배우면서부터 자꾸 써보며 고유한 글씨체가 생기는 것처럼

그림도 계속 그리며 나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내가 국민학교 저학년일 때는 주산학원, 웅변학원 다음으로 많이 다니는 곳이 미술학원이었다.

그곳에 나도 있었다.

그러나 그림에 그다지 흥미가 있지 않았고 전공을 할 재능은 더더군다나 없는 내게 미술은 더 이상 배움의 의미가 없었다.

한동안 그냥저냥 좋아하는 만화책을 따라 그리는 얄팍한 재미 정도로 그림을 마주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고서도 나는 여전히 작은 드로잉북과 4B연필, 지우개를 끊임없이 사모았다.

우습게도 몇 장 그리고 어느새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친한 대학 선배 언니는 잊어버릴만하면 불쑥 “난 네 그림 좋더라. 계속 그려봐”라고 옆구리를 찔렀다.

이 또한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기곤 했다. 내가 무슨 그림을… 뭐하려고?


워킹맘에서 주부맘으로 돌아선 그 해 여름부터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배운 적이 없으니 비율, 구도, 명도, 채도 이런 걸 알리 만무했다.

그냥 그리고 싶은 포즈를 아이들에게 부탁하고 사진으로 찍었다.

그 사진을 옆에 두고 대충 따라 그렸다.

어떨 때는 머리가 너무 크고 어느 날은 팔다리가 이상적으로 길었다.

스윽스윽 사각사각 종이 위를 나부끼듯 술렁이는 연필의 움직임과 소리가 좋아 계속 그리는 것이다.


종이에 연필로 그리는 그림은 터치감이 몹시 좋지만 고쳐야 할 부분을 수시로 지우고 색을 변경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고 망설이다 큰 맘먹고 아이패드 프로를 구매했다.

적지 않은 돈을 엄마인 나를 위해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러나 엄마라는 존재, 아내라는 존재 이전에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존재인 ‘나’의 가능성에도 때로는 적절한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은 사는 내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자신의 가치를 성장시키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찾고 즐기고 그것을 발전시키며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나를 마주하고 나를 이해하며 삶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다고 믿는다.

[아주 보통의 행복 : 저자 최인철]에서는 행복 천재들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것을 구체화시키며 말과 행동으로 기술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말한다.

나는 통장잔고가 풍요롭지도 않고 가진 스펙이 화려하지 않은 보통의 동네 아줌마이다.

그러나 남과 비교하는 일상이 아닌 나다운 아름다움과 가치로 행복을 찾아 챙기고 쟁이는, 행복의 잔고가 두둑한 사람이고 싶다.


요즘에는 내가 좋아하는 집안과 살림을 더러 그림으로 옮기고 있다.

좋아하는 소파를 그리고 조명을 놓고 러그를 둔다.

알레르기성 비염이 심한 나와 아들에게 러그는 고려의 대상이 아닌 살림살이인데 그림에서는 상상이 가능하다.

이렇듯 실제적인 모습과 원하는 것을 조화롭게 그린다.

그림을 그리고 나면 내가 집안을, 살림을 어떤 마음으로 마주하는지 알 수 있다.

이 공간에 머무는 내가 보인다.

살림을 애정 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마음으로 보듬는 살림을 좋아하는 그림으로 담아 마주하는 행복이 감사하다.

그렇게 오늘도 나다운 살림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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