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ny sallim Mar 24. 2022

새로움을 탐닉하는 시도는 늘 옳다.

그러나 모든 시도가 다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일리커피머신을 집안에 들인 지 2년째다.

남편이 현대카드를 15년 이상 쓰면서 포인트가 제법 모였는데 그 포인트로 전액 결제해 커피머신을 샀다.

거의 매일 ‘샘물로 목을 축이는 산짐승처럼’ 단골 카페를 드나들며 커피를 마시는 내게 남편이 사준 선물이다.

커피를 너무 좋아하는 마음을 이해해준 것 같기고, 그만 사 먹고 집에서 마시라는 의미 같기고 했다.

아무렴 어떠랴.


일리 플로우팩 캡슐은 종류가 모두 8가지다.

저마다 맛과 향이 다르다고 상세 설명에 나와있다.

나는 2년 가까이 오직 클라시코 캡슐만을 고집했다.

#미디엄 로스티드 #부드러움 #풍부한 맛과 향

너무도 뻔하고 추상적인 맛 표현이지만 실제로 마시면 진하고 고소한 풍미가 느껴졌다.

사실 원두에 대한 상식이나 커피 맛의 디테일함은 잘 모른다.

마셨을 때 맛있다고 느끼면 그만이다.


두 어달 텀으로 한 박스 100개입 캡슐을 습관적으로 주문한다.

그런데 이번 달에는 다른 맛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익숙함은 늘 지겨움과 무료함을 동반한다.

어떤 게 좋을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파란 컬러의 룽고 캡슐을 선택했다.

#캐러멜향 #오렌지 꽃향 #재스민향 #부드럽고 와일드한 맛과 향

캐러멜과 오렌지꽃과 쟈스민이라니 도대체 무슨 향인지 가늠이 안돼 몹시 궁금했다.

‘찬란한 슬픔’처럼 부드러운데 와일드하다는 역설적 표현도 선택에 한몫했다.

내심 불안한 마음에 50개만 주문하고 나머지 50개는 늘 마시던 걸로 추가했다.


이틀 뒤 곱게 포장된 커피가 왔다.

룽코 캡슐 포장을 뜯는 순간 “와~” 탄성이 절로 나왔다.

파란 컬러의 뚜껑이 너무 세련돼 맘에 쏙! 들었다.

가벼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머신에 전원을 켜고 커피를 내렸다.

살짝 데운 우유를 에스프레소에 붓고 첫 모금을 들이켠다.

“아…!” 탄식이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전혀 내 취향이 아니었다. 맛도 향도.


갑자기 남은 49개의 캡슐이 나를 빤히 바라보듯 몹시 부담스러워졌다.

이를 어쩜 좋은가.

익숙함에 지쳐 호기심으로 시작된 선택은 늘 설레지만 실망이 동반되기도 하는 것이다.

새로움을 탐닉하는 시도는 늘 옳지만 그 모든 시도가 다 만족스러울 리 없다.


좋아하는 클라시코 커피가 50개이니 취향을 어긋난 룽고 커피보다 1개 더 많아 위안을 삼아 본다.

클라시코와 룽고를 번갈아 마시다 보면 결국 마지막은 좋아하는 클라시코로 마무리할 수 있겠다.

실망스러운 선택이었지만 그 선택이 있었기에 호기심은 해결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