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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선 Sunny Dec 02. 2024

신혼 여행에서 벌어진 일

큰 변화 앞에 조금 더 단단해져야 할 필요를 느꼈다


한동안 놓았던 글을 쓰고 싶어졌다. 일상에 마구 흩어진 생각과 또 흡수되는 것들.. 그 사이에서 단단한 내 안의 무언가가 필요한 시기다. 누군가 글을 쓴다면, 어떤 목적으로 쓰고 싶냐고 물었다. 그 때는 답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냥 내 안의 생각을 다듬고 주관을 가지기 위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롯이 내 삶에서 올바른 결정과 정의를 내리기 위함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생각되었다.


11월 9일,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달이 지나간다. 인생에서 가장 큰 이벤트 중 하나인 결혼을 했다. 이미 함께 살고 있었기에 사는 곳도,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루틴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공식적인 관계가 된 덕분에 여기저기서 신경 써야 할 일들이 한아름 늘어났다.


자녀로서의 의무, 아내로서의 의무, 일을 하는 사람으로 의무.. 의무는 아니지만 의무에 가까울 정도로 다정하고 싶은 많은 주변 사람들에게서의 내 모습, 거기에 크게 추가 된 며느리의 역할. ('며느리'라는 말이 아직 너무 어색하고 붙지 않는다) 기껏해봐야 일년 중 몇번이지만 그래도 시간과 마음을 더해야 할 존재가 늘어난 것이다. 아직 제대로 된 파도는 오지 않은 상황인데 한 집안의 그림자만으로도 지레 겁을 먹게 된다. 결혼한다는 소식에 친구가 '너는 특히 리버럴 liberal 한 편인데.. 괜찮아?'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얼마 전 국내로 떠나는 신혼 여행이라며 목포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삶은 달걀 두개와 먹기 좋게 자른 사과와 함께. 결혼 후에 청도에 있는 본가에 가지 못했고, 노쇠해 결혼식에 참여하지 못한 할머니에게 공식적인 인사도 못했다. (이것도 결혼 전에 몇번 인사했는데 식을 올렸다는 이유로 '공식'이 되는 것도 신기하고, 내 마음에도 '공식적인' 부채가 된다는 것도 신기했다) 마음에 내내 걸려있는데 아빠는 또 일 때문에 다른 지역에 계시기에 모두가 함께 모일 수 있는 일정을 결국 잡지 못했다. 아빠와 전화하며 1월, 설날 부근에 겨우내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기차의 앞 좌석 테이블을 펴고 일을 시작했다. 2주라는 신혼 휴가를 받아 '나 업무 종료, 말 걸지마'가 가능한 남편과 달리 나는 '프리워커'라는 거창한 별칭을 내세우는 프리랜서다. 어디서든, 원하는 시간에 일을 하고 돈을 벌 수 있지만 월요일만큼은 예외다. 한 주의 성과를 보고하는 리포트가 나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11월에는 맡은 클라이언트의 성과가 좋지 못해 비상이 걸린 상황이었다.


좌석 칸에서는 통화를 할 수 없으니 기차 연결 칸에 쭈그려 앉아 노트북을 열고 지나가는 사람들 눈치를 보며 이렇게 저렇게 소통을 했다. 성과가 안나오는 이유에 대해 누구도 명확하게 말할수는 없지만 명확하게 들려야 하는 상황에서 경험에서 나온 추측과, 거친 생각을 말하고 통화를 끝내고 나니 스르르 진이 다 빠졌다. 메신저에서는 12월에 잡힌 밴드 공연 준비로 주말간 했던 연습 후기와 피드백이 오간다. 아아 - 하고 싶은 것 다 누리면서 살아온 덕분에 이런 우당탕 돌맹이를 맞는구나. 나와 남편이 늘 얘기했던 것 처럼 '예고 되어있었던 일' 이었다. 진정 하고잡이의 예고된 팔자였었다. 괴로워서 빠져나오고 싶을 정도는 아닌데, 하나씩 순차적으로 해나가면 되겠지만. 회사에서 급하게 우다다 몰린 업무를 급하고 중요한 순대로 우선순위에 맞게 배열해서 처리하듯, 그런 시간이 필요하구나 느꼈다. 


드러난 현상은 여러가지 일이 겹쳐서 과부하가 걸린 것이지만, 삶에 큰 변화가 온 것처럼 이제 '진짜' 중요한 결정들을 위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모든 결정 앞에 당당히 마주하고 바로 서기 위해 작은 글쓰기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주제는 무엇이 되든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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