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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선혜 Jun 17. 2019

괜찮다고 하지 말고, 아프다고 말해요

아이는 엄마를 도우면서 한 뼘 더 자란다


“아프다고 하면 아이들이 기죽거나 ‘우리 엄마 죽으면 어떡하나’ 걱정할까 봐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나는 ‘미련한 엄마’였어요.


아이들에게 암이라는 걸 밝히지 않고 혹을 떼내고 왔다고만 했죠. 그래도 기운 없고 힘들어 보이더라고요. 저렇게들 힘들어하는데 내가 아프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참 뒤 내가 암이었다는 걸 안 딸이 ‘아픈 걸 알아야 우리가 뭐라도 하지 않느냐’며 울더라고요.”





TV 채널을 돌리다가 한 개그우먼의 암 투병기를 들었다. 평소 씩씩하고 밝은 이미지의 그녀는 "엄마도 사람"이라며 "아플 땐 아프다고 해야 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나는 같이 울었다. 혼자서 아픔을 감당했을 그녀가 안쓰러워서. 아픈 엄마 때문에 걱정했을 아이들이 불쌍해서.




나 역시 처음엔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숨기려 했다. 네 살짜리 아이한테 슬픔보다 기쁨을, 고통보다 즐거움을, 절망보다 희망을 먼저 알게 해고 싶었다. 밝은 달에 뒷면이 있음을 미리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알려야겠다고 결심한 건, 이기심 때문이었다. 괜찮은 척 연극할 자신이 없었다. 아이한테라도 위로받아야 내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항암치료가 모두 끝난 지금 되짚어 보면, 그건 잘한 선택이었다.


주저앉아 울고 싶을 때, 못 일어나겠다고 포기하려 할 때, 모든 걸 알고 있는 내 아이가 옆에 있었다. 그 사실이 날 일으켜 줬다.



 

암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는 아이에게 최대한 자세히, 그리고 솔직하게 내 상황을 알려줬다. 항암 부작용으로 구토가 계속될 때는 "엄마 몸에 나쁜 병균들이 빠져나오느라 그렇다"라고 안심시켰다.


머리가 아파 인상을 쓰면 아이는 "엄마 화났어?" 하면서 눈치를 봤다. 나는 얼른 "율이한테 화난 게 아니고, 약을 먹으면 머리가 아파서 그렇다"라고 오해를 풀어줬다. 아이가 도와주면 고맙다는 표현도 아끼지 않았다.



"율이가 물 가져다줘서 구토가 멈춘 것 같아."

"율이가 노래 불러주니까 기분이 나아졌어. 고마워."



병원에 입원했다가 집에 오면 아이를 꼭 안고 치료받은 내용을 설명해줬다.



"엄마 몸속에 나쁜 병균 다 물리치려고 주사를 맞았어. 그 약은 너무 졸려서 엄마가 계속 잠이 쏟아지거든?


그런데 옆에 침대에 있던 할머니가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면서 주무셔서 몇 번이나 깼는지 몰라. 천둥번개가 치는 줄 알았어."




내가 드르렁드르렁하면서 흉내를 내자, 아이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또 무슨 일 있었어?" 아이는 재미있는 병원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어 했다.




"식사시간에 반찬으로 생선이 나왔어. 고등어구이. 율이가 고등어 좋아하잖아. 그래서 엄마가 먹으면서 율이 생각했지. '집에 가면 냉동실에 있는 고등어 꺼내서 구워줘야지. 우리 율이 먹게.' 오늘 저녁은 고등어 구워 먹자."




물론 아이한테 솔직하게 말한 걸 후회한 적도 있다. 내가 병원에 갔을 때 시어머니께서 아이와 함께 신데렐라 책을 읽었는데, 갑자기 아이가 펑펑 울었단다. 이유를 몰라 꼭 안아주기만 했는데 도무지 진정되질 않았다고 했다.


다음날 내가 퇴원해서 아이에게 왜 울었는지 물었다. 아이는 다시 눈물이 차올라서 훌쩍거렸다.




"신데렐라네 엄마가 죽어서 나쁜 새엄마랑 같이 살았대잖아. 엄마, 엄마는 죽지 마. 백일 지나고 백일 지나고 백일 지날 때까지 우리 같이 살자. 엄마는 하늘나라 가지 마."




엉엉 우는 아이 옆에서 나도 따라 훌쩍거렸다. 병원에 데리고 가면 팔에 주사 꽂는 걸 뚫어져라 쳐다볼 정도로 씩씩한 아이라서 괜찮은 줄만 알았다.


울고 있는 아이를 보니 그동안 내색하지 않고 혼자 참고 있었던 건 아닌지, 너무 미안했다.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신데렐라네 엄마처럼 사람은 누구나 하늘나라에 가. 누가 먼저 갈지, 언제 갈지 아무도 몰라. 먼저 하늘나라에 간 신데렐라네 엄마는 구름에 숨어서 내려다보고 있었을 거야. 신데렐라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서 말이야.


중요한 건, 하늘나라에 가면 거기서 다시 만나서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어. 그러니까 하늘나라에 가기 전에는 여기에서 행복하게 지내자. 우리 매일 즐겁게 사랑하면서 지내자."




항암제를 열여덟 번 맞는 동안 2년 반이 흘렀다. 가시덤불 같던 시간은 나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 항암제를 투여하기 위해 삽입했던 '케모포트'를 제거했지만, 내 가슴 위쪽으로 남은 붉은 흉터가 고통을 떠오르게 한다.


여전히 시한폭탄을 안고 살듯, 재발의 두려움을 느낄 때도 있다. 언제 터지는지 알 수 없지만, 언젠가 터지기 때문에 더 불안한 시한폭탄처럼 암이 다시 찾아올까 봐 겁이 난다.




그럴 때마다 내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건, 엄마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먹기 싫을 때, 아이가 있어서 밥을 지었다. 아이가 함께 먹어줘서 끼니를 채울 수 있었다.


마음이 바닥으로 푹 가라앉는 것 같을 때, 아이의 조잘거리는 목소리가 나를 웃게 했다. 아이가 훌륭한 의사였다. 그렇게 나를 치유했다.




이제는 나조차도 그런 병을 앓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몸이 회복됐다. 처음에 엄마가 아픈 걸 알고 걱정했던 아이의 마음도 꽤 단단해졌다. 아이는 타인을 마음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친구들을 쉽게 미워하거나, 탓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감정표현을 분명하게 할 줄 알게 된 게 가장 큰 소득이다. 떼를 쓰며 두세 시간씩 울거나, 짜증 날 때 물건을 던지는 식으로 감정을 표현했던 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자기 마음을 찬찬히 설명한다.




"오늘 유치원에서 친구가 자기처럼 똑같이 모래성을 쌓아야 한다고 했어. 나는 그렇게 하기 싫은데 자꾸 똑같이 하라고 화냈어. '너는 너하고 싶은 대로 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라고 했더니 걔가 울더라. 울고 싶은 건 나였는데, 걔가 왜 울었을까?"




울상을 짓는 아이가 귀여워서 피식 웃음이 낫지만 들키지 않으려고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한참 동안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조잘거렸다. 나는 잘했다, 잘못했다 평가하는 대신 공감해주고 꼭 안아줬다. 울상 짓던 아이도 밝아졌다.




지난해 유치원 졸업을 앞두고 원장님께서 상담을 해주신 적이 있다. 나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기 전에 원장님께서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 테니 조언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다.



"선생님들이 딸을 율이처럼 키우고 싶다고 하세요. 굉장히 차분하지만, 자기표현을 야무지게 합니다. 또 친구들을 배려할 줄 알지만, 휩쓸리지 않아요. 자존감이 높고, 중심이 아주 잘 잡혀 있는 아이예요."




상담을 마치고 유치원 현관을 나서면서, 나는 어깨를 활짝 폈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고통과 불안의 시간을 지나 아이는 굳건해졌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나는 엄마가 '괜찮다'라고 하면 진짜 괜찮은 줄 알았다. 그래서 엄마의 희생에 고마워할 줄도 몰랐다. 더 받지 못한 것만 아쉬워하며 못되게 굴었다. 하지만 엄마가 된 나는 뻔뻔하게도 힘들 땐 아이에게 힘들다고 했다. '괜찮다'는 말 대신 솔직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엄마는 가족의 뿌리다. 뿌리가 썩으면 이파리도 시들어 버리듯, 엄마가 아프면 아이도 힘을 잃는다. '괜찮다'고 땅 속 깊이 묻어두지 말고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자. 인상 쓰는 엄마, 한숨 쉬는 엄마를 보며 아이도 안다. 불안해하고 걱정한다.


엄마도 똑같은 사람이다. 아플 수도 있고 울 수도 있다. 연극하지 말고 아이가 엄마를 도울 수 있게 기회를 주자. 아이는 그렇게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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