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글을 쓰고 싶어졌다.
이게 다 비 때문이야.
언제였지?
내가 마지막으로 무언가 끼적인지가.
뭐라고 썼더라?
브런치 앱을 뒤적여 읽어본다.
불과 몇 달 전인데, 꼭 대학시절 한 달 사귄 남자 친구 얼굴처럼 가물가물하다.
이렇게 갑자기 글을 쓰는 건 순전히 비 때문이다.
비가 와서.
와도 너무 많이 와서 그렇다.
나는 지금 카페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이 글을 쓴다.
아이의 여름 방학이 일주일 남았다.
지난 20여 일 동안 아이와 하루도 빠짐없이 부대끼고 뒹굴고 화내고 웃고 울었다.
날씨처럼 끈적한 날들이었다.
아이를 잠깐 수영 학원에 보내 놓고 빗소리를 듣고 있자니, 해방감이 몰려온다.
그러다 이내 아이 생각이 난다.
빗방울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걸 보고 아이는 토끼 같다고 했다.
토끼가 깡충깡충 뛰고 있는 것 같다고.
자기도 덩달아 깡총 뛰어올랐다.
대학 졸업 후 2년동안 회사생활을 하고, 나는 줄곧 엄마이자 전업주부였다.
그리고 프리랜서로 잠깐 객원기자를 했을 때 느꼈다.
나의 '일 근육'이 퇴화했다는 것을.
잘하려고 노력하고 애쓸수록 결과는 시원찮았다.
뭘 해도, 어떤 순간에도 불쑥 아이가 떠올랐다.
스스로 프로 답지 않다고 느꼈던 것 같다.
'이도 저도 아니다. 애나 잘 키우자.'
그렇게 나를 엄마의 자리로 되돌려놨다.
글쓰기도 마찬가지 이유로 놓았다.
구독자인 친구들이 "왜 요즘 글 안 쓰냐"라고 물어도, "내가 그렇지 뭐"하며 말을 흐렸다.
다시 써보려 했던 결심도 끈적한 날씨 탓에 힘을 잃었다.
그러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보며 갑자기 글을 쓴다.
책을 출간한 친구가 부러워서도,
주변의 응원을 들어서도,
대단한 결심이 생겨서도 아니다.
그저 이게 다 비 때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