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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선혜 Aug 20. 2019

바람 샤워

가을이 오려나 보다고 설레발치는 소리





작년 8월 1일, 내가 이곳에 이사 온 날이다.

영상 40도.

우리나라가 두바이보다 덥다던가, 아프리카보다 덥다던가 했던 그날.

이삿짐을 내리는 직원들의 이마에서 땀이 머물러 있을 새가 없었다.

분명 포장 이사였지만, 이 날씨에 나 혼자 쉬고 있기는 미안해서 같이 거들었다.



30여분이 흘렀을까.

도저히 내가 못 참겠어서 "가구만 제자리에 두고 그냥 가시라"고 선언했다.

"아무리 그래도...."

망설이던 직원들은 이삿짐 상자를 베란다에 차곡차곡 쌓았다.

그날 물을 사러 슈퍼에 가다가 '사막을 걸으면 이런 기분이겠구나'하며 낙타의 마음을 헤아렸다.

그 후로 나는 한 달 동안 이삿짐 박스를 풀었던 것 같다.




"올해는 별로 안 덥다."

지난여름 더위가 예방 주사가 됐는지, 나는 자주 호기를 부렸다.

휴전선 근처에서 군 복무를 한 아빠가

"이 정도는 추운 것도 아니야. 내가 있던 양구에서는 말이야~"하던 것과 비슷했다.

"이 정도는 더운 것도 아니야. 작년 8월 1일은 40도였잖아. 내가 그날 이사를 했다니까?"




며칠 전부터는 "이러다 가을 오는 거 아니냐?" 하며 설레발을 떨고 다닌다.

두 가지 변화 때문이다.  

첫 번째는 에어컨을 끄고 자기 시작한 것.

두 번째는 밤에 매미가 울지 않는다는 것이다.

베란다 방충망에 매달려 밤새도록 존재감을 뽐내던 매미는 어느새 귀뚜라미와 바통터치를 했다.




어릴 때 엄마는 늘 말씀하셨다.

"절기는 무시 못한다."

난 그게 무슨 뜻인지도 잘 몰랐다.

경칩에 개구리가 깨어나는 걸 보지 못했고,

입추라면서 여름처럼 더웠으니까.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나도 엄마 흉내를 낸다.

"역시 입추 지나니까 바람이 다르네."




아이와 둘이서 저녁을 먹고 나면 샤워를 한다.

며칠 전만 해도 선풍기 앞에서 머리를 말렸는데,

어제는 드라이기를 꺼내 말려줬다.

뽀송하게 마른 머리를 빗겨주며 아이에게 묻는다.

"우리 아빠 데리러 갈까?"

아이는 "어! 어! 어!" 하며 내 팔에 매달린다.



 

버스정류장에서 남편을 만나 셋이서 돌아오는 길.

시원한 바람이 우리를 감싼다.

"바람으로 샤워하는 것 같아. 가을이 오려나 봐."

남편의 팔짱을 끼며 내가 말했다.  

"바람 샤워~~ 바람 샤워~~~"

아이는 그 말이 재밌었는지 집에 가는 길 내내 노래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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