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안하는 '나쁜 엄마'의 변명
오늘도 주방에 있을 친정엄마에게
어린 시절 엄마는 늘 주방에 계셨다.
우리 사남매의 삼시세끼를 직접 만들어 먹이셨다.
특히 방학은 밥을 차리고 먹고 치우고, 다시 차리고 먹고 치우기를 반복했던 나날이었다.
한 끼도 외식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믿음직한 뒷모습.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자랐다.
내 유년시절의 기억에는 대부분 언니와 동생들만 있다.
'빨간 다라이'에 들어가 물놀이를 하거나,
벌어진 밤송이를 발로 지그시 눌러 알밤을 꺼내던 기억,
부르마불을 펼쳐놓고 '땅 투기'에 열을 올렸던 밤들.
우리는 두세 살 터울의 남매여서 치고받고 싸우기도 했지만,
따로 친구가 필요 없을 만큼 깔깔 꼴꼴 즐거웠다.
하지만 엄마가 우리를 보며 손뼉 치고, 함께 즐거워하셨던 기억은 없다.
아마 그때도 엄마는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먹었던 그릇을 설거지해 말리느라 바빴을 것이다.
내가 애엄마가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친정에 가면 여전히 엄마가 해준 밥을 얻어먹는다.
이제 딸 셋이 모두 시집을 가서 사위가 셋 더 생겼고,
손주만 해도 셋이 되었으니 식구는 배로 불어났다.
"식구가 많으니 뭐 해먹을지 더 고민"이라는 엄마에게 냉면 같은걸 사 먹고 오자고 하면, 엄마는 고개를 젓는다.
"집에서 먹어. 엄마가 고기 사다 놓은 거 있으니까 너 좋아하는 제육볶음 해줄게."
"저녁에도 닭볶음탕 해 먹기로 했잖아. 그런데 무슨 또 고기야~ 그냥 나가서 먹자. 응?"
"됐어. 밖에서 먹어봐야 뭐 먹은 거 같니? 그냥 집에서 먹어. 금방 해."
엄마는 정말 뭐든 금방 만들어낸다. 그리고 맛있다.
밥을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 셋이 노래 부르고 춤추는 걸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난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과 괜히 티격태격 장난을 치면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하지만 엄마는 그 소중한 순간을 모두 놓친 채 부엌에 있다.
여전히 내 어린 시절처럼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한다.
팔 걷어붙이고 돕겠다고 해도 주방 밖으로 등을 떠밀어 버리신다.
"너는 너네 집 가서 해. 여기는 내 집이니까 내가 할 거야."
딸을 편히 쉬게 해주고 싶은 마음,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손주들의 유년 시절 기억에도 할머니가 없을까 봐 안타깝다.
아이의 여름방학 동안 나는 요리를 거의 하지 않았다.
가끔 간단한 음식만 만들었다. 김치볶음밥이나 떡국, 주먹밥 같은 한 그릇 음식이었다.
그날은 물놀이장에서 실컷 놀고 집에 오니 5시가 다 되었다.
바쁘게 손을 놀리면 저녁 식사를 준비할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재빨리 냉장고 문을 열어 스캔했다.
'된장찌개 끓이고 냉동실에 있는 생선을 구울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냉장고 문을 닫았다.
아침 일찍부터 땡볕에 앉아 아이 노는 걸 지켜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더위 먹은 듯 기운이 없고 손가락 까닥하기 싫을 정도로 지쳐있었다.
한낮 체감 기온 38도에 육박하는 날씨였다.
"오늘은 찜닭 시켜먹자."
내 말에 아이는 좋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더운 날 가스불을 켜는 대신 나는 찜닭이 오길 기다리며 아이와 에어컨 아래 누웠다.
"엄마 오늘 00이랑 같이 물놀이하니까 엄청 신났어."
"그러게 00이 오랜만에 만나서 엄마도 반갑더라."
"응응! 다음에는 00이랑 박물관 가자. 저번에 아빠랑 같이 갔던 데 있잖아."
"그래 알았어. 엄마가 00이 엄마한테 물어볼게."
아이는 조잘조잘 말을 이었다.
나도 시원한 바람을 쐬며 누워있으니 살 것 같았다.
잠시 후 배달 온 찜닭 앞에 아이와 마주 앉았다.
아이는 "찜닭 속에 있는 당근이 좋다"며 입을 크게 벌렸다.
나도 안다. 만들어먹으면 훨씬 싸다는 걸. 집밥이 더 건강한 음식이라는 것도.
하지만 괜히 내 몸 혹사시켜가며 밥해주면 늘 본전 생각이 났다.
애써 차린 밥을 깨작거리며 먹는 아이가 밉고, 설거지거리를 보며 한숨 쉴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 주방에 있던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도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그저 묵묵히 박봉인 아빠 월급을 쪼개 제철인 식재료를 사서 반찬을 만들고,
수북이 쌓인 그릇을 부지런히 씻어 다음 식사를 준비했을 것이다.
엄마는 여전히 "밥해주는 게 엄마 노릇이야. 다들 그렇게 살아"라고 하신다.
그렇다면 배달 음식 시켜먹는 나는 엄마 노릇 제대로 못하는 엄마다.
그래도 변명하고 싶다.
음식은 남이 대신해줄 수 있지만, 아이를 사랑하는 건 누가 대신할 수 없다고.
아이의 유년시절 기억에 엄마도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엄마로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