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갔지만, 아직 흐르고 있다.

시간이 해결해 주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또한 지나간다.

by 이작가

아이가 아침부터 찡얼거렸다. 나는 주말에 보고 온 아빠 생각에 정신이 반쯤 멍해 있었다. 아빠 손을 잡고 귀에 대고 조잘조잘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고 왔는데도 마음이 영 불안했다. 아이를 둘러업고 아빠 병원을 갈까도 여러 번 생각했었다. 생각은 많아지고 일부러 동그랑땡 판을 벌였다. 두부를 꽉 짜고 야채를 다 썰고, 다진 고기까지 넣어서 조물조물 반죽을 만들었다. 그래도 내 아이에게 하루하루 충실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입 짧은 큰 아이가 그나마 잘 먹는 메뉴였기 때문이다. 복작복작 대면서 동그랑땡을 만들었다. 웬일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남편은 반차를 내고 아빠 병원에 다녀왔다고 했다.

휴, 하루라도 못 가면 왠지 마음에 걸리는 터라 안심이 되었다.


남편은 아빠를 보고 온 이야기를 실컷 해 주었다. 걱정 마시라고 아버님 둘째 딸은 제가 잘 챙겨주겠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나는 남편에게 벌써 그런 얘기를 했냐며 핀잔을 주었다. 레퍼토리 좀 바꾸라고 농담도 건넸다. 다행히도 따끈하게 지진 동그랑땡을 큰 아이가 맛있게 먹어주었다. 막 태어난 둘째 젖을 먹이면서 동그랑땡을 나누어 먹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엄마였다. 나는 아빠가 쓰러지던 그 날처럼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떨리는 목소리로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엄마는 나직이 말씀하셨다.

"아빠, 방금 가셨어."

시간을 들어보니 남편과 인사를 나누고, 삼십 여분 후인 것 같았다. 남편이 아빠를 마지막으로 본 셈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았지만 마음이 찢겨 나갔다. 나는 전화를 받다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울었다. 큰 딸이 다가와 나를 안아주었다.

"엄마, 울지 마."

아이들을 친척집에 급히 맡기고 장례를 치르러 갔다. 이박삼일 동안 떠들썩하게 아빠의 마지막을 함께 보내 주러 여러 지인들이 찾아와 주었다. 나는 어떤 마음 때문에 아빠 염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그토록 나눈 시간이 많았고, 쌓은 추억이 가장 많았던 딸이지만 염하는 모습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오래도록 좋았던 시간만 간직하고 싶은 내 이기심 때문에 고이고이 쌓여있는 아빠의 마지막은 대하지 못했다.

가끔 그 모습은 어땠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꽃처럼 고우셨다고 했으니 그래 그 말이 맞았을 것 같다. 아빠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음악에 취할 줄 알았고, 흥을 알았으며, 이웃들의 마음을 알았고, 경비 아저씨의 노고를 알았다. 가족을 누구보다도 사랑했고, 소박한 행복을 즐기고, 큰 욕심 없이 살았다. 그러니 꽃보다 더 고우셨을 수밖에. 표정은 어떠했을까. 아마 평온하셨으리라. 다 털어내고 편히 가셨으리라. 그렇게 믿고 싶다.

한 줌의 재로 남아버린 아빠를 보며 오열하는 엄마를 끌어안으며 다짐했다. 아빠는 떠나갔지만 떠나보내지 않겠다고. 늘 마음에 함께 하겠다고. 그러니 지켜봐 달라고, 당신의 둘째가 얼마나 멋지게 해내고 아빠의 숨결을 이어가는지. 아빠를 늘 기억하고 마음에 담고 살겠노라고. 아이들에게도 멋진 할아버지가 하늘에 가서도 꼭 되어달라고. 그리고 응원해 달라고, 기도해 달라고 말이다.


여덟 번의 기일이 지나는 동안, 매년 가을은 우울함으로 보냈다. 쌀쌀한 공기가 느껴지면 더욱 선명해지는 아빠의 기억들과 시간들 속에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속앓이를 했다. 엄마 앞에서는 내색도 안 하다가 기일 날이면 터지는 눈물은 엄마를 매번 당황케도 했다. 가장 힘든 건 엄마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감추고 내보이지 못했던 내 마음들. 그렇다고 실컷 울기도 힘들었다. 딸들도 아빠처럼 감수성이 예민한 탓에 엄마가 조금 훌쩍이기만 해도 이렇게 말하니까.

"엄마, 또 할아버지 보고 싶어?"

"할아버지는 늘 마음속에 있어. 힘 내. 엄마."라고.

11살과 9살이 된 어엿한 딸들을 보며 외할아버지의 빈자리가 더욱 커져감을 느낀다. 아이들의 재롱과 수다를 함께 나누지 못하는 것들이 아쉬운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내가 느끼고 살아가는 모든 순간을 다 보시구나 계실지. 숨 쉬고 하루하루 눈 마주치던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절감하고 또 절감한다.


시아버님과 몇 번 소주를 기울인 적이 있다. 어르신이 쉽지는 않았을 자리, 난 또 예전 버릇이 나와버리고 말았다. 수다가 터지고, 조잘조잘 끝도 없이 떠들어댔다. 아버님을 마치 아빠처럼 대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며 내가 얼마나 아빠를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깨달았다. 다행히도 이해해 주신 덕에 그 뒤로는 아버님과 소주 친구가 되어 버렸다. 아빠를 가슴에 묻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아빠가 알려준 노래와 감성과 인성과 그 모든 것은 내가 되어 버렸고, 이제는 나 스스로 더욱 가꿀 수 있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언젠가 아빠를 만난다면 둘째가 정말 잘 해냈다고 뿌듯해하실 얼굴을 그려 본다. 이제는 사실 어떤 글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쌓이고 털어내지 못한 마음을 털어내어서 새로운 것들이 들어올 자리가 생겼다. 희망을 안고 더 큰 꿈을 안고 살아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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