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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 Jul 02. 2024

기계가 이상해

3. 기계가 켜지면 사랑도 켜진다.

3. 기계가 켜지면 사랑도 켜진다!

퇴근한 남편은 나에게 오자마자 기기를 써 보았는지 물었다. 충전은 다 했는데 아직 일이 바빠서 못 써 본 터였다. 남편의 입가에 실망의 빛이 스쳤다.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랐다.

"우리 이것의 정체를 함께 밝혀보는 거 어때?"

남편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럴까?"

나는 음흉한 눈빛과 말투를 하면서 남편에게 더 다가갔다.

"어, 이건 뭐지? 마사지 헤드인가?"

"아니야, 피부 탄력 측정기 같은데?"

”아, 그런 기능도 있어? 신기한데?"

”그건 피부과가 집에 있는 거잖아. 그런 기능까지는 아닐 거야. "

나는 기계의 가장 큰 버튼을 꾹 눌렀다. 뭐라고 인사말이 나왔다. 버튼을 또 눌렀다. 계속 무슨 모드라면서 바뀌었다. 갑자기 혼란스러웠다. 음, 뭐지?

남편이 기기를 돌려가면서 말했다.

”이건 단계 조정, 이건 관리 스타일 선택이네. "

"생각보다 복잡해 보였는데 자기가 정리 왕이야.""

나는 샐쭉 웃었다.

남편 볼에 미용 기기를 갖다 댔다. 남편이 찌르르 떨었다. 나는 까르르 웃음이 났다.

”미안, 이거 얼굴에 뭐라도 바르고 하는 걸 거야. 맨얼굴에 하면 더 안 좋아질 것 같아.”

그제야 선물 상자에 같이 들어있었던 앰플이 생각났다. 아직 박스 안에 있었다.

“이거다 앰플!”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앰플이 피부를 변신해 줄 것 같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매뉴얼이 담긴 설명서를 펴자 사진과 글자가 가득 나왔다. 쓱 읽고 우리는 미용 기기를 검색해서 유튜브 영상을 찾았다. 영상이 많아서 다행이었다.

그때 남편이 내 볼에 기기를 갖다 댔다.

"어때? 느낌이 와?"

"온다 온다. 장난 아닌데?"

”왜? 어떤데? 은근히 자기 좋아하는 거 같다? "

푹 또 웃음이 났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적당한 자극이 나를 건드리는 기분.

”뭐야! 그런 분위기로 몰아가지 말라니까! "

남편은 뭐가 그렇게 웃긴 지 한참을 웃었다.

별 것도 아닌 대화들. 이 기계 덕분에 우리는 오랜만에 마주 앉아 도란도란 놀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보, 우리 이거 매일 저녁 30분씩 같이 하는 거 어때? 피부 관리도 하고 대화도 나누고."

"혼자서 하라니까! "

”그럼 자기가 나 해주든지, 나 하는 거 보든지 할래? "

”아니! 차라리 자기가 열심히 하고 나한테 짠 변신한 걸 보여줘. "

남편은 미용 기기를 내 손에 살며시 쥐어 주었다.

"그렇지. 여자에겐 감추고 싶은 것도 있는 법이지. 역시 자기가 뭘 좀 아는데?"

"그래, 자기 실컷 쓰고 느낌 알려줘. 나는 당신 피부 변화되는 걸 보는 걸로 충분할 것 같아."

남편의 따뜻한 말에 가슴이 살짝 울렁거렸다.

"한두 번으로 바뀌기야 하겠어? 그런데 좀 궁금하긴 하다."

그날 밤, 잠든 남편의 고요한 숨결을 한참 듣다가 조용히 기계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초록 불빛이 어둠을 가르며 나를 감싸 안았다. 마치 시간의 문을 열어주는 듯한 영롱한 빛의 시계처럼.

거울 속 내 모습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나무 같았다. 줄기엔 주름이, 잎새엔 피로가 맺혀 있었다. 과연 이 작은 기계가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까?

남편의 기대는 봄비 같았다. 내 안의 씨앗을 깨우고, 새로운 싹을 틔우라며 은근히 재촉하는. 그의 기대라는 빗방울에 내 마음의 땅이 촉촉이 젖어들었다. 작지만 반짝이는 희망의 불씨가 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새벽을 기다리는 별처럼, 나를 밝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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