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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마리아 Aug 09. 2024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을 읽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가요 그의 작품인데, 이제야 읽었다는 것을 고백하자니 많이 부끄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제라도 읽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1949년 일본 교토 시에서 태어나 효고 현 아시야 시에서 자랐다. 1968년 와세다 대학교 제1문학부에 입학했다. 재즈 카페를 운영하던 중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제81회 군조 신인 문학상을 수상하며 29세에 데뷔했다. 미국 문학에서 영향을 받은 간결하고 세련된 문체와 현대인이 느끼는 고독과 허무의 감성은 당시 젊은이들로부터 큰 공감을 불러일으켜 작가의 이름을 문단과 대중에게 널리 알렸다. 1987년 발표한 『노르웨이의 숲』 은 일본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후, 일본을 넘어 세계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 붐'을 일으켰다. 2002년 『해변의 카프카』를 발표하여 2005년 영어 번역본이 <뉴욕 타임스>의  '올해의 책'에 선정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한층 높였다. 현재 그의 작품은 4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독자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출처: 책 앞표지 뒷면 작가소개 인용)


『노르웨이의 숲』은 우리나라에는 1989년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으며 2013년 민음사에서 『노르웨이의 숲』 이라는 제목으로 재발간하였다. 『노르웨이의 숲』은 1989년 『상실의 시대』라는 제명으로 처음 출간된 이래 우리 출판 사상 최장기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는데, 교보문고가 발표한 2024년 상반기 베스트셀러 소설 부문에서도 23위를 차지하여 스테디셀러로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소설의 제목이 된 『노르웨이의 숲』(2013년, 민음사)은 1965년 발표한 비틀즈의 노래 <Norwegian Wood>에서 가져왔다.

서른일곱 살, 그때 나는 보잉 747기 좌석에 앉아 있었다. 거대한 기체가 두꺼운 비구름을 뚫고 함부르크 공항에 내리려는 참이었다. 11월의 차가운 비가 대지를 어둡게 적시고, 비옷을 입은 정비사들, 밋밋한 공항 건물 위에 걸린 깃발, BMW 광고판, 그 모든 것이 플랑드르파의 음울한 그림 배경처럼 보였다. 이런, 또 독일이군. 비행기가 멈춰 서자 금연 사인이 꺼지고 천장 스피커에서 나지막이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느 오케스트라가 감미롭게 연주하는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이었다. 그리고 그 멜로디는 늘 그랬듯 나를 혼란에 빠뜨렸다. 아니,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마구 뒤흔들어 놓았다.
머리가 터져 버릴 것만 같아 몸을 웅크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잠시 그대로 있었다. 이윽고 독일인 스튜어디스가 다가와 몸이 안 좋으냐고 영어로 물었다. 괜찮다고, 좀 어지러울 뿐이라고 나는 말했다. “정말 괜찮으세요?” “아, 괜찮아요, 고마워요.” 스튜어디스가 방긋 웃으며 자리를 뜨고, 음악이 빌리 조엘의 곡으로 바뀌었다. 나는 고개를 들고 북해 상공을 덮은 검은 구름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살아오는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많은 것에 대해 생각했다. 잃어버린 시간, 죽거나 떠나간 사람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추억. 9쪽.
“「노르웨이의 숲」부탁해.” 나오코가 말했다. 레이코 씨가 부엌에서 고양이 저금통을 들고 오자 나오코가 지갑에서 100엔 동전을 꺼내 거기에 넣었다. “뭔데요, 그거?” “내가 「노르웨이의 숲」을 신청할 때마다 여기에 100엔을 넣기로 되어 있어. 이 곡을 제일 좋아하니까 특별히 이렇게 해. 마음을 담아 신청하는 거지.” “ 그게 내 담뱃값이 되기도 하고.” 레이코 씨는 손가락을 푼 다음 「노르웨이의 숲」을 연주했다. 그녀의 연주에는 마음이 담겼고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감정에 빠져들지 않았다. 나도 호주머니에서 100엔을 꺼내 저금통에 넣었다. 192쪽.


https://youtu.be/Y_V6y1ZCg_8?si=gev4eelmXQuDnYgR

비틀스, 노르웨이의 숲.

소설의 내용을 압축하면, 37세의 주인공인 화자가 비행기에서 흘러나오는 「노르웨이의 숲」 연주를 들으면서 20년 전의 과거를 회상하는 연애 성장 소설이다.

“나를 언제까지나 잊지 마, 내가 여기 있었다는 걸 기억해 줘.” 독일 함부르크 공항에 막 착륙한 비행기 안에서 울린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을 듣고, 와타나베는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절한 부탁과 그 부탁을 남긴 여자를 추억한다.
와타나베는 고등학교 시절 친한 친구 기즈키, 그의 여자 친구 나오코와 언제나 함께였다. 그러나 잘 어울리는 친구들끼리의 행복한 시간은 기즈키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끝나 버리고 만다. 열아홉 살이 된 와타나베는 도쿄의 한 사립대학에 진학하여 슬픈 기억이 남은 고향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오코 역시 도쿄로 올라와 둘은 슬픔을 공유한 사이만 알 수 있는 특별한 연민과 애정을 나눈다. 하지만 한동안  연락을 끊고 지내던 어느 날, 나오코는 자신이 요양원에 들어가 있다는 편지를 보내고, 와타나베는 요양원으로 그녀를 찾아가면서 비로소 자신의 감정이 사랑임을 확신하게 된다. 한편 같은 대학에서 만난 미도리는 나오코와는 전혀 다른 매력의 소유자로, 와타나베의 일상에 거침없이 뛰어 들어온다. 발랄하고 생기 넘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의 미도리와 소소한 매일을 함께하고 이따금 기즈키의 죽음을 미처 극복하지 못한 나오코를 찾아가며 와타나베는 아름답고 위태로운 스무 살의 시간을 살아간다. 그 시간의 마지막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출처: 책 뒷 표지 인용)


『노르웨이의 숲』의 내용은 연애성장소설이라고 한 마디로 압축할 수 있지만 굉장히 고급스럽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감성과 문체를 잘 보여주면서 아름답고 부드럽게 흘러간다. 짧지 않은 장편소설인데도 쉽게 읽히는 장점이 있다. 읽으면서 아름답다, 잘 쓴다는 감탄을 자주 내뱉었다. 역시 대가는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소설이다.

4월은 혼자 지내기에는 너무도 쓸쓸한 계절이다. 4월에는 주변 사람들이 모두 행복한 듯이 보였다. 다들 코트를 벗어 던지고 밝은 햇살 속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캐치볼을 하고 사랑을 나누었다. 그렇지만 나는 완전한 외톨이였다. 나오코도 미도리도 나가사와도 모두 내가 선 장소에서 멀어져 갔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는 ’안녕‘ ’잘 지내니‘라고 말해 줄 상대조차 없었다. 특공대마저도 그리웠다. 나는 애절한 고독 속에서 4월을 보냈다. 425쪽.
4월이 끝나고 5월이 왔지만, 5월은 4월보다 더 혹독했다. 5월에 이르러 봄이 한층 깊어지면서 내 마음이 떨리고 흔들린다는 것을 느꼈다. 떨림은 대체로 저녁 어스름에 찾아왔다. 목련꽃 향기가 살풋 풍기는 옅은 어둠 속에서 내 마음은 영문도 모르게 부풀어 올라 떨리고 흔들리고, 아픔이 꿰뚫고 지나갔다. 그때마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이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나가 버리기를 기다렸다. 천천히 오랜 시간을 들여 그것을 흘려보내면 둔중한 통증이 남았다. 426쪽.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다.

 영원한 젊음의 감성으로 전 세계 독자를 사로잡은 무라카미 하루키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한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현대인의 고독과 청춘의 방황을 선명하게 포착한 현대 일본 문학의 대표작

1960년대 말 고도성장기 일본을 배경으로, 개인과 사회 사이의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관계와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처럼 생생한 청춘의 순간을 그려 낸 이 작품은 1987년 발표된 이래 세계적인 ‘ 무라카미 하루키 붐’을 일으키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청춘의 영원한 필독서로 사랑받고 있다.

▶ 무라카미 하루키 특유의 상징적인 가능성이 가득한, 살아 있는 묘사들이 영롱하고 섬세한 구조를 이룬 작품. ─ 《가디언》
▶ 『노르웨이의 숲』은 무라카미 하루키만의 명징한 표식을 보여 준다. ─ 《뉴욕 타임스》
▶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은 내일을 위한 문학이다. 그의 언어는 특별하며, 그의 관심은 인간에 집중되어 있다. ─ 카프카 상 선정 이유
  (출처: 책 뒷표지 인용)


소설의 제목을 음악에서 가져올 정도로 소설에서는 그 당시에 유행하던 노래들이 많이 언급된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알게 되면서 나는 그가 나와 동시대의 사람이라는 것을 나이에서도 그렇고 그가 언급한 노래들에서도 알 수 있었다.

그 중에서 나를 가장 아련하게 했던 것이 바로 <일곱송이 수선화>였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노래를 소설을 통해 회상하면서 그의 감성은 나의 감성이 되었고 그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유일하게 문을 연 꽃집에서 수선화 몇 송이를 샀다. 가을에 수선화를 사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만, 난 옛날부터 수선화를 좋아했다. 116쪽.

순간 나는 아래층에 수선화를 두고 온 것을 깨달았다. 신발을 벗을 때 곁에 무심코 내려놓고는 잊어버린 것이다. 나는 어두컴컴한 아래층으로 내려가 열 송이의 하얀 수선화를 들고 돌아왔다. 미도리는 찬장에서 가늘고 긴 유리잔을 꺼내 거기에 수선화를 꽂았다. “나 수선화 정말 좋아해. 옛날 고등학교 축제때 「일곱 송이 수선화(Seven Daffodills)」를 부른 적이 있어. 알아. 「일곱 송이 수선화」?” “알지, 물론.” “옛날에 포크송 동아리에 있었거든. 기타도 치고.” 그녀는 「일곱 송이 수선화」를 부르면서 음식을 접시에 담았다. 121쪽.


대학시절 합창반에서 많이 불렀던 노래이다. 수선화가 영어로 'Daffodill'이라는 것도 노래 때문에 알게 되었다. 가사는 왜 그리도 절절하던지. 또 양희은의 목소리는 왜 그렇게 청아하게 하늘을 향해 올라 가던지.

 https://youtu.be/45zwC4Qs7RE?si=7ig_sP38Yvm0--eG


지금도 기억한다.

쌀쌀한 봄밤, 어둑한 잔디밭에 모여 기타 반주에 맞추어 함께 부르던 「Seven Daffodills」를.  

나의 대학시절을 기억하게 하는 노래 중의 하나가 바로 「일곱 송이 수선화」가 되었고, 그때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수선화가 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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