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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마리아 Aug 16. 2024

켄트 하루프,  『밤에 우리 영혼은』

친구 어머니가 요양원에 가셨다. 치매를 앓고 계셨는데 자녀들은 할 수 있는 데까지 집에서 모시려고 최선을 다하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주간보호센터에 가셨다가 저녁 무렵에 돌아와 식사를 하고 주무시는 것이 일과였다. 건강도 좋아서 화장실 출입이나 옷 입기 등의 일상생활을 본인이 다 하셨다.


다만, 보호자가 필요했다. 남편이 돌아가시기 전에는 그렇게 남편을 의지하고 찾았다. 낮에는 주간보호센터에서 사람들과 함께 계셨지만 저녁에는 자신을 지키면서 함께 잘 사람이 필요했다. 기억력은 없어져 갔지만 자기를 지켜 줄 보호자에게는 더욱 매달렸다.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보내고 친구는 하염없이 울었다. 미안해서 울고 가엾어서 울고 화가 나서도 울었다. 요양원의 어머니를 처음 면회하던 날, 친구는 한숨도 못 자고 두근거리며 요양원을 찾아갔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어머니의 모습이 좋으셨다. 항상 옆에 사람들이 있고 밤에도 같이 자는 친구가 있고 자기를 돌보아 주는 선생님들이 많은 요양원이 어머니에게는 안정감을 준 것이었다.

 

​내년이면 90세가 되시는 할머니와 통화를 할 일이 있었다. 혼자 사시면서 아직도 걸어서 외출을 하실 정도로 건강하고 총총하신 분이셨다. 그런데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하루 종일 혼자 있는 것이 너무도 외롭다고, 하루가 왜 이렇게 긴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눈물을 보이셨다. 착잡하였다. 노인이 겪는 외로움이 무겁게 가슴을 때렸다.


그 무렵 켄트 하루프의  『밤에 우리 영혼은』 을 읽게 되었다. 나에게는 낯선 작가였지만 미국에서는 유명한 소설가였다.

켄트 하루프 Kent Haruf
1943년에 미국 콜로라도 주 푸에블로에서 감리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네브래스카 웨슬리언 대학교를 졸업했고 아이오와 대학교 작가 워크숍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틈틈이 글을 쓰다 1984년 41세에 처음으로 발표한 소설 《결속의 끈 The Tie That Binds》으로 와이팅 Whiting 상을 받았다. 1999년에 발표한 소설 《플레인송 Plainsong》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다수의 상을 수상했고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이 작품은 특히 영화와 연극으로도 만들어졌다. 평생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콜로라도 주를 배경으로 ‘홀트’라는 가상의 마을을 만들고 쓴 소설 《이븐타이드 Eventide》 《베네딕션 Benediction》 등, 총 다섯 편의 소설과 유작인 《밤에 우리 영혼은 Our Souls At Night》을 남기고 2014년, 71세에 폐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출처: 책 앞날개 작가 소개)


『밤에 우리 영혼은』에 대한 평은 다음과 같다.

미국문학에 불후의 공헌을 남긴 노련한 이야기꾼  켄트 하루프의 마지막 소설
 
“왜 인간은 다른 사람들이 행복을 찾은 방식대로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가.”
 
작은 마을 홀트를 배경으로, 칠십대 두 주인공이 교감하는 믿음과 우정,
나이 듦에 대한 생각들, 그리고 황혼을 향해 얌전하게 걸어 들어가기를 거부한
용감한 두 주인공의 품위 있는 모험.

단도직입적이고, 다층적인 결이 있고, 마른 유머가 살아있다. 여름날 저녁 일몰 직후 아직 하늘에 빛이 남아있을 때, 제대로 들여다보면 볼 것들이 많은 그 순간을 위한 소설이다. _<시애틀 타임스>
 
하루프는 절대로 감상적이지 않다. 반전이 응축된 결말은 단단하고 고통스럽고 전적으로 인간적이다. 그의 소설은 애정과 이해가 스며들어 있기에 상투적인 디테일들조차 시로 승화된다. _<파이낸셜 타임스>
 
이 소설은 단순한 요소들이 얼마나 큰 무게를 갖는 것인지를 알게 해준다. 독자들로서는 고마울 따름이다. _<뉴욕 타임스 북 리뷰>
 
근본적인 순수로까지 증류된 한없이 매혹적인 작품. 너무나도 부드럽고 섬세하게 세공된 작품이어서 받을 자격이 없는 축복처럼만 여겨진다. _<워싱턴 포스트>
    (출처:책 뒤표지)


소설의 내용은 작은 마을 홀트를 배경으로 칠십 대의 여자 주인공 애디가 겪는 노년의 외로움과 극복의 방법이다. 상식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노년의 외로움을 극복하는 내용이 상당히 도발적이며 모험적이다. 그렇지만 노인들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익히 아는, 그리고 같은 연령대인 나에게는 소설 속 주인공의 이야기가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것이 아니라 노년의 외로움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이런 것도 괜찮겠다는 공감을 주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서로의 가정형편을 몇 집 건너 다 알 정도의 작은 마을 홀트에서 몇  전 남편과 사별한 70세의 애디 무어가 역시 부인과 사별하고 혼자 살아가는 비슷한 연령대의 루이스 워터스의 집을 저녁 무렵에 찾아간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에게 이런 제안을 한다.

우리 둘 다 혼자잖아요. 혼자 된 지도 너무 오래됐어요. 벌써 몇 년째예요. 난 외로워요. 당신도 그러지 않을까 싶고요. 그래서 밤에 나를 찾아와 함께 자줄 수 있는가 하는 거죠. 이야기도 하고요.
그는 그녀를 바라 보았다. 호기심과 경계심이 섞인 눈빛이었다.
아무 말이 없군요. 내가 말문을 막아버린 건가요? 그녀가 말했다.
그런 것 같네요.
섹스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렇잖아도 궁금했어요.
아니, 섹스는 아니에요. 그런 생각은 아니고요. 나야 성욕을 잃은 지도 한참일 텐데요. 밤을 견뎌내는 걸, 누군가와 함께 따뜻한 침대에 누워 있는 걸 말하는 거예요. 나란히 누워 밤을 보내는 걸요. 밤이 가장 힘들잖아요. 그렇죠? 9쪽.

그런데 침대에 누군가가 함께 있어준다면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은 사람이, 가까이 있다는 것. 밤중에, 어둠 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 그녀가 말을 멈추고 기다렸다. 어떻게 생각해요?
모르겠어요. 언제 시작하고 싶은데요? 10쪽.

다음 날부터 남자는 저녁이 되면 잠옷과 칫솔을 담은 종이봉지를 들고 여자의 집을 찾아간다. 그리고 함께 와인을 마시고 침대에 누워 이야기를 시작한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너무 조용하군요.
이게 얼마나 이상한지, 여기 있다는 게 얼마나 낯선지, 내가 얼마나 자신이 없고 공연히 불안한지, 뭐 그런. 딱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도 모르겠어요. 그냥 뒤죽박죽이에요.
정말로 낯설죠? 그녀가 말했다. 그래도 좋은 쪽의 낯섦 같아요. 그렇지 않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18쪽.

그들은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소소한 이 고장의 자잘한 일상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곤 둘 다 다시 말이 없었다. 한 시간 후 여자는 조용한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들어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한 번 만져보지도 않았다.
 
이러한 일상이 계속되면서 저녁이 되면 남자가 여자의 집을 드나든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딸과 아들도 소문을 듣는다.

아니에요. 아빠. 그녀가 그를 잠시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빠가 걱정돼요.
응? 그래?
그래요. 애디 무어와 뭘 하시는 거예요?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
엄마가 뭐라 하시겠어요?
모르겠구나. 하지만 네 엄마도 이해할 것 같다. 사람들 생각보다 훨씬 이해와 용서가 많은 사람이었으니까. 현명했고, 여러 면에서. 보통 사람들보다 큰 차원에서 보는 능력이 있었거든. 하지만 아빠, 이건 옳지 않아요. 아빠는 사실 애디 무어를 좋아하거나 잘 알지도 못했잖아요.
네 말이 맞다. 좋아하거나 잘 알지도 못했지. 그런데 바로 그게 내가 지금 좋은 시간을 보내는 요인이란다. 이 나이에 누군가를 알아가는 것. 스스로가 그녀를 좋아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 알고 봤더니 온통 말라죽은 것만은 아님을 발견하는 것 말이다.
그냥 남 부끄럽잖아요.
누가? 나는 남부끄럽지 않은데.
사람들이 아빠를 다 아는데요. 59쪽.

그런데 애디의 아들 부부가 별거를 하면서 손자인 제이미를 돌보아야 할 상황이 생겼다. 제이미는 할머니 집에 와서 지내면서 차츰 루이스와도 가까워진다. 루이스는 부모의 별거와 부재로 상처를 입은 제이미를 즐겁게 하기 위해 자신의 집에 오게 하고 함께 캠핑을 가고 유기견 보니를 입양하여 즐겁게 지내게 한다. 그런데 아들 진이 방해하고 나선다.

진이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선생님도 여기서 우리 어머니랑 지내신다더군요.
그러는 밤도 있네.
그게 도대체 뭐죠?
우선, 우정을 들 수 있지.
지금 뭐 하는 거니? 애디가 말했다. 다 알고 있으면서.
뭘 하냐고요? 내 어머니가 이웃 남자하고 자는 동안 내 아들이 딴 방에서 잔다는데 나는 물을 자격도 없는 건가요?
그래. 그래서 그게 너하고 무슨 상관인데?
내 아들이 여기 있는 한 상관있어요.
아무 일 없네. 루이스가 말했다. 아이에게 해될 일도 없고.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면 여기 오지도 않아.
선생님이 판단하실 일이 아니죠. 선생님이야 원하시는 걸 얻고 있는데 남의 아들이 걱정될 리 없고요.
나도 아이를 아끼고 있어. 136쪽.

꿋꿋하던 두 사람은 애디의 아들 진이 애디와 제이미를 못 만나게 하고 전화도 차단하자 그들의 삶의 방식을 정리하기로 한다.

그러니까 이게 우리들의 마지막 밤이군요.
네.
두 사람은 이층으로 올라갔다. 어둠 속에서 침대에 누워 그들은 이야기를 조금 더 했다. 애디는 울었다. 그가 그녀의 몸에 팔을 둘러 끌어안았다.
우리는 좋은 시간을 보냈어요. 루이스가 말했다. 당신 덕에 나도 많이 변했고요. 고마운 마음이에요. 감사해요.
지금 비꼬고 있는 거죠?
그럴 생각 없어요. 진심이에요. 당신은 내게 좋은 사람이었어요. 그 이상 뭘 더 원할 수 있겠어요? 당신과 함께 한 후 난 이전보다 나은 사람이 되었어요. 당신 덕분이에요.
아, 여전히 친절하군요. 고마워요, 루이스.
집 바깥의 바람소리를 들으며 그들은 누워 있었다. 183쪽.

어느 날 혼자 시내에 나갔던 애디는 길가에서 미끄러져 골반뼈가 부러진다. 아들 진에게 연락하자 진은 곧바로 달려와 애디를 덴버의 병원으로 옮기기로 한다. 애디는 구급차에 실려 40년 넘게 살아온 홀트를 떠난다. 그리고 병원에서 퇴원한 후 양로시설로 옮겨진다.

어느 날 밤, 그녀는 자신의 아파트에 앉아 그에게 전화를 했다. 나랑 얘기해줄래요?
긴 침묵이 흘렀다.
루이스, 내 말 듣고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더이상 얘기하지 않기로 한 줄 알았는데요.
해야겠어요. 이렇게는 못 살겠어서요. 처음 시작하기 전보다 더 나빠졌어요.
진은 어쩔 건데요?
모르게 하면 돼요. 밤에 전화로 이야기해요.
그러면 정말 진의 말대로 슬그머니 기어들어오는 꼴이잖아요. 은밀하게요.
상관없어요. 너무나 외로워요. 당신이 몹시 보고 싶어요. 나랑 얘기해 주지 않을래요?
나도 당신이 보고 싶어요. 그가 말했다.
지금 어디 있어요?
집 안에서 어디 있냐는 거예요?
침실이에요?
네. 책을 읽고 있었어요. 이거 무슨 폰섹스 같은 건가요?
그냥 두 사람의 노인이 어둠속에서 대화하는 거예요. 애디가 말했다. 190쪽.
 
오늘 밤에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요?
그녀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그 너머는 칠흑이었다.
당신, 거기 지금 추워요? 194쪽.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난다.

슬프지 않은가. 노년이 겪는 외로움이 느껴지지 않는가. 두 사람의 노년을 살아가는 방식이 정녕 용납될 수 없는 것인가.


훌륭한 소설가는 역시 비범한 관점과 방식으로 인생을 꿰뚫어 본다는 생각을 하였다.


소설의 뒤표지에 실린 이야기를 다시 떠올린다.


“왜 인간다른 사람들이  행복을 찾은 방식대로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가.”


『밤에 우리 영혼은』 은 2017년에 로버트 레드포드, 제인 폰다 주연으로 넷플릭스 영화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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