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럴라인 냅
Caroline Knapp
지적이고 유려한 회고록 성격의 에세이를 쓴 작가. 정신분석가 아버지와 화가 어머니 사이에서 쌍둥이로 태어났다. 1981년 브라운 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20년 가까이 저널리스트로 살았다. 살면서 몇몇 끔찍한 중독에 빠진 경험이 있는데, 삶의 압박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땐 술로, 그런 자기 자신을 호되게 통제하고 싶을 땐 음식을 거부했다. 이런 자신의 깊은 내면 이야기를 솔직하게, 우아하게, 또렷하게 고백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 Drinking>은 알코올 중독의 삶을, <욕구들 Appetites>은 다이어트 강박증과 섭식장애에 관한 기록이다. <남자보다 개가 더 좋아 Pack of Two>는 개를 향한 지나친 애착을 다룬다. 자신을 직시하며 그 감정과 생각의 결을 낱낱이 드러내는 글쓰기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나, 2002년 마흔둘이라는 이른 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캐럴라인 냅은 이 책 《명랑한 은둔자》에서 혼자 살고 혼자 일했고, 가족과 친구와 개와 소중한 관계를 맺으며 자기 앞의 고독을 외면하지 않았던 삶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강함과 약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결국 삶의 명랑을 깨달은 저자로부터, 우리는 만난 적 없지만 오래 이어온 듯한 우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그의 재능이다.
(책 앞면 날개 인용)
책이 사람을 바꿀 수 있을까?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나는 책이 좋고 책 만드는 것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책을 인생보다 혹은 인생만큼 대단하게 여기고 싶지는 않다), 책은 사람을 바꿀 수 있다. 내게 그런 경험이 있다. 최소한 하나의 사례를 아는 셈이어서,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4쪽.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이 긴 글은 다음의 한 문장으로 줄여도 괜찮을 듯싶다. 자, 여기 책으로 저를(아주 조금이지만) 바꾼 작가를 소개합니다. 그립고 기쁜 마음으로. 9쪽.
이때 어떤 생각 하나가 떠오른다. 단순한 사실적 진술 하나가 완전한 문장의 형태로 머릿속에 떠오른다. 나는 그 말을 듣는다.
나는 명랑한 은둔자야.
이것은 정말 마술적이고 변혁적인 순간이다. 이것은 일종의 만화경같은 변화랄까. 나 자신에 대한 기정사실들이 저절로 모습을 바꾸더니 새로운 질서에 따라, 놀랍고 신선한 시각에 따라 재구성되어 내 내면이 삽시간에 재편되는 듯한 순간이다. 오래된 생각이 새로운 생각으로 바뀐다. 기존의 정의가 새로운 전개를, 새로운 분위기를, 새로운 의미를 취한다.
나는 명랑한 은둔자야. 이 말을 다시 들어보라. 산뜻하고 멋지게 들리지 않는가? 만약 누군가가 어제–한 시간전, 10분 전이라도 마찬가지다-내게 내 존재를 한 문장으로 설명해보라고 말했다면, 나는 전혀 다른 대답을 내놓았을 것이다. 나는 독신 여성이에요.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서른여덟 살이고, 좀 외톨이처럼 살아요. 이 말이 슬픈 노처녀를 연상시키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이 내 목소리에 변명의 기미가 어려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휴, 미안해요.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지금이면 진작 결혼했어야 하는 건데. 하고 말하는 듯이 약간 멋쩍게 어깨를 으쓱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시리얼 그릇을 앞에 두고 서 있던 순간, 내 정신의 만화경이 살짝 돌아가더니 변명은 흐릿해지고 대신 새로운 장면이 눈앞에 나타났는데, 그 새로운 장면은(감히 이렇게 말해도 될까?) 행복과 아주 비슷해 보였다. 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