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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마리아 Sep 06. 2024

수전 와이즈 바우어의   『독서의 즐거움』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이 있다. 고전이나 명작이라 알려진 책들은 내용이 좋고 유익한 것은 누구나 알지만 실제로 읽어 내기는 어렵다. 좋은 책들은 일단 분량이 많다. 분량 때문에도 읽을 엄두가 안 난다. 그렇지만 그런 부담감을 무릅쓰고 읽어 나가면 좋은 책들이 분량이 많은가를 알게 된다. 사건이나 주제가 방대하고 심오하거나 묘사와 표현이 세밀하거나 구체적이어서 길게 서술할 수 밖에 겠다는 이해를 하게 된다.


좋은 책들은 내용이 지나치게 자극적이거나 초적인 호기심을 유발하지 않는다. 언뜻 보면 너무 평범하거나 밋밋하여 잡아 끄는 부분이 없는 것 같다. 찰나적이고 자극적인 흥미나 말초적인 감각을 건드려서 감동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읽다 보면 주제나 사건, 인물이나 상황의 묘사와 전개, 결말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작가의 단단한 삶에 대한 진지함에 놀라고, 인간과 자연의 근원적 진리를 깨닫게  때가 많다. 은근하게 깨달아지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심층적 발견으로 겸허해지고 사색적이 되게 한다. 이것이 바로 좋은 책의 힘이요 저력이라고 생각한다.

 

지식을 전달하는 책도 읽기 어렵다. 이것 역시 분량이 많을 때가 대부분이다. 이번에 읽

은 수전 와이즈 바우어의 『독서의 즐거움』은 감동보다는 정보를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도 주석을 포함하여 600쪽이 넘는 대단한 분량이다. 책의 판형도 일반 책들보다 크고, 표지도 하드커버를 사용하여 엄숙하고 진지하고 근엄한 학술서의 느낌을 준다. 내용은 더할 나위 없이 유익하다. 하지만 보통의 독자들은 이 책에 쉽게 접근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지식과 재미를 동시에 책은 쉽게 저술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지만 이런 방대하고 깊이 있는 저술을 해낸 작가의 노력과 열정을 생각한다면 읽는 독자도 그에 상응하는 독서의 태도를 가져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인 수전 와이즈 바우어를 소개한다.

수전 와이즈 바우어
1968년 버지니아에서 태어나 초ㆍ중ㆍ고 과정을 홈스쿨링으로 마친 후 17세에 문학과 언어 부문에서 미국 최고의 대학인 윌리엄 앤드 메리 대학에 대통령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옥스퍼드대 교환 학생으로 신학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돌아와 영문학과 미국 종교사로 석사, 미국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부터 동 대학에서 영문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라틴어, 히브리어, 그리스어, 아랍어, 프랑스어를 구사하며, 교장 출신 어머니 제시 와이즈와 가정 중심 교육의 경험을 살려 공동 집필한 《The Well-Trained Mind》는 홈스쿨링의 정본이 되었다. 다방면의 장서를 넓고 깊게 읽는 다독가이자 자신의 지식을 쉽고 직설적인 문체로 풀어쓰는 저술가로, 《교양 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세계역사 이야기》 《독서의 즐거움》 《문제적 과학책》 등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출간했으며 균형감 있는 역사 저술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저자에 대한 소개를 보면서 여러 가지로 놀랐다. 먼저 저자가 50대라는 것에 놀랐다. 다음으로 그  나이에 이토록 방대하고 심오한 지식과 저술, 그리고 교수 활동을 하고 있는 것에 놀랐다. 정규 학교가 아닌 홈스쿨링의 어떤 교육과 노력이 수전 와이즈 바우어를 이런 대단한 교양인, 전문인으로 성장시켰는가가 놀랍고 궁금했다. 또한 『독서의 즐거움』에서 수전의 폭넓고 깊은 독서와 본인이 경험하고 터득한 독서의 필요성과 의미, 독서의 방법을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어하는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에 소개하는 『독서의 즐거움』 은 2010년에 번역 출판된 것이다. 10년 뒤인 2020년에 ‘10장 과학서 읽기의 즐거움’을 첨부하여 재발간하였다.

  <2010년 발간본의 책표지 >

수전 와이즈 바우어는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생각이 아니라 생산에 보상이 따르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성찰이 아니라 성취로 칭찬을 받죠. 우리 사회는 여러분에게 더 빨리, 더 많이 일할수록 더 나은 인간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로만 평가받기를 거부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유, 즉, 성찰, 계몽, 이해가 똑같이 가치있다고 고집해야 합니다. 고전을 스스로의 힘으로 읽어 나가는 프로젝트, 즉 하루에 일정 시간 동안 앉아서 책 한 권을 읽는 행위는 생산물과 축적물로만 우리의 가치를 재는 세상에 맞서는 저항의 행위입니다. 뭔가 ‘생산적’인 다른 일 대신에 아침에 혼자서 책을 읽는 행위는, 가치있는 존재가 되려면 구체적인 뭔가를 생산해야 한다는 망령을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자, 저항하십시오. 앉아서 성찰하는 기쁨을 느끼십시오. 인간이란 생산력만이 아니라 이해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고집하십시오. 아침에 눈을 떠서 부엌을 청소하고 서류를 정돈하기 전에, 무엇보다 고전을 한 권 집어들고 읽는 시간을 가지기 바랍니다. 수전 와이즈 바우어. 6쪽. <한국의 독자들에게>
 
- 이제 모든 문명은 문헌을 통해서 이어진다. 특히 미국에서는, 그리스는 말하기와 보기를 통해서 문명을 개화시켰고, 파리 시민들은 어느 정도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와 유적에서 동떨어져 살고 있는 우리는 반드시 책을 가까이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분명히 야만스러워질 것이다.  윌리엄 단 하우얼스, 「사일러스 라팜의 출세」 13쪽.

수전은 생각이 아닌 생산에 보상을 주는 사회, 성찰이 아니라 성취로 칭찬을 받는 사회, 더 빨리, 더 많이 일하는 사람이 더 나은 인간으로 평가받는 사회, 생산물과 축적물로 가치를 인정받는 사회에서 독서는 생산력이 아닌 이해력으로 평가받고 가치를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저항이라고 말한다.
 
또한 역사와 유적으로부터 리 떨어진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문헌을 통해서만 이전 시대에 대해 알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책을 가까이 해야 하며 독서를 하지 않으면 야만스러워진다고 경고한다.
 
수전은 독서 중에서도 고전 읽기를 권하는데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 지속적이고 본격적인 독서는 고전을 혼자 공부하는 데서 중심이 된다. 아이작 와츠가 끊임없이 얘기하듯이 관찰과 독서, 대화와 강의 듣기는 모두 교육과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관찰을 하면 주위 환경에서만 배우게 되고, 대화와 강의 듣기는 가치 있지만 몇몇 주위 사람들의 견해에 제한적으로 노출되는 반면, 독서는 가장 중요한 자기 수양법이라고 와츠는 결론짓는다. 혼자 하는 독서는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서서 모티머 애들러가 ‘위대한 대화’라고 불렀던 대화에 참여하도록 해 준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사상 사이의 대화 말이다. 독서는 우리를 언제 어디서든 이러한 위대한 대화를 이끈다. 18쪽.
 
- 고전적인 인문학 교육 기관에서 공부는 전통적으로 세 가지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맛보기’는 학습 주제에 관한 기본 지식 획득하기이다. 두 번째 ‘삼키기’는 지식이 평가를 통해서 스스로 이해하기이다. 이 지식은 타당한가? 사실일까? 이유는? 세 번째는 ‘소화하기’로 주제를 자신만의 이해 방식 속에 집어 넣는 것이다. 여기서는 생각의 통로가 바뀌도록 만들어야 한다. 아니면 가치가 없다고 거부하는 것이다. 맛보기, 삼키기, 소화하기는 사실을 찾아내고 그것을 평가하고 자신만의 의견을 형성하는 단계이다. 21쪽.

수전은  TV 등장 이전에도 지속적이고 진지한 독서는 본래 어려운 일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독서는 제도권 내 교육, 즉 학교 교육에서는 완성할 수 없는 영역으로 훈련이라고 이야기한다.

- 하지만 지속적이고 진지한 독서는 늘 어려운 일이었다. 텔레비전에 등장하기 전부터도 그랬다. 게다가 요즘은 문자 텍스트로부터 멀어져 영상에 기반한 시각 문화로 향하고 있는 현 세태를 우려하는 글들이 넘쳐난다. 학교는 더는 읽기와 쓰기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텔레비전과 영화 뿐 아니라 이제는 인터넷까지 등장하여 활자 언어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우리는 활자 문화 이후로 옮겨 가는 중이다. 인쇄 문화는 종말을 맞이할 운명이다. 너무 슬픈 현실이다. 18쪽.
 
- 사실 독서는 훈련이다. 규칙적으로 달리기를 하거나 명상하거나 발성 연습하는 것과 비슷하다. 19쪽.

수전은 독서에 입문하는 방법을 아래와 같이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이는 오랜 시간에 걸친 자신의 경험과 노력 끝에 터득한 독서법일 것이다.

독서의 첫 단계는 독서 시간과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을 정하는 일이다.

고전을 혼자 공부할 때의 첫 과제는 단순하다. 스스로 독서에 전념할 시간을 정한다.
다음 원칙을 기억하여 독서에 활용하기 바란다.

저녁보다는 아침이 좋다.
독서의 시작은 짧게 한다.
한 주 내내 독서하겠다는 계획은 세우지 않는다.
독서를 시작하기 직전에는 결코 이메일을 확인하지 않는다.
독서 시간을 지킨다.
지금 당장 첫걸음을 내디딘다.  27-28쪽.

수전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연대기적 독서를 권한다.

- 어떤 주제든 항상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제퍼슨은 조카에게 연대순으로 체계적인 독서를 하라고 충고했다. 달리 말하면 씌어진 순서대로 책을 읽으라는 것이다. 25쪽.

- 이 책에서 추천하는 도서 목록들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연대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어떤 분야의 기초가 되는 작품부터 시작해서 체계적으로 읽어 나간다면 그 주제를 파악하기가 더 쉬울 것이다. 25쪽.

이 책의 2부에서는 소설, 자서전, 역사서, 희곡, 시 라는 문학의 다섯 장르를 연대순으로 정리하여 180여 편에 달하는 고전들을 소개하고 있다. 책의 내용을 일별할 수 있도록 목차를 첨부한다.

차례

한국의 독자들에게
 
1부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1 독서를 위한 첫 준비 11
2 고전과 씨름하기 29
3 독서 일기 쓰기 43
4 독서를 위한 마지막 준비 53
 
 2부 독서의 즐거움
 
1 소설 읽기의 즐거움 77

10분 만에 읽는 소설의 역사 82
소설, 제대로 읽기 96
우리가 꼭 읽어야 할 소설들 120
 
 2 자서전 읽기의 즐거움 167

자서전은 인생 이야기를 넘어선다 169
5분 만에 읽는 자서전 비평사 176
자서전, 제대로 읽기 184
 
 3 역사서 읽기의 즐거움 243
 
15분 만에 읽는 역사에 대한 역사 247
역사서, 제대로 읽기 278
우리가 꼭 읽어야 할 역사서들 301
 
 4 희곡 읽기의 즐거움 357

5막으로 구성한 연극의 역사 363
연극의 목적 381
우리가 꼭 읽어야 할 희곡들 403

 5 시 읽기의 즐거움 459

정의 내리기 힘든 시의 세계 468
7분 만에 읽는 시인과 시어의 역사 471
시, 제대로 읽기 510
우리가 꼭 읽어야 할 시들 526
 
주석 601
감사의 말 613
옮긴이의 말 615
찾아보기 619

지식을 알게 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직접 경험으로 알게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다. 간접 경험은 주로 책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수전의 독서에 대한 안내는 아주 친절하고 자세하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여 터득한 독서의 의미와 방법을 독서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 독서의 세계에 안착하도록 세심하게 공개한다. 나의 경우에 비추어 보면 오랜 시행착오와 암중모색을 거쳐 습득한 나의 독서법이 수전의 독서법과 유사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어서 은근히 기쁘기도 했다.
 
수전의 책을 읽으면서 상당한 부끄러움과 반성도 하였다. 나보다 젊은 수전이 그렇게 넓고 깊은 독서의 세계를 탐험하여 자기만의  확고한 지적 세계를 구축할 동안 나는 왜 그렇게 일천하고 얄팍한 시간을 살았을까 하는 부끄러움과 아쉬움이 몰려 들었다. 수전이 추천 도서 목록으로 올려 놓은 책들 중에는 솔직히 안 읽은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동안 독서를 취미라고 하고 책을 가까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독서의 질이 너무 가볍지 않았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수전이 추천한 책들을 먼저는 수전의 해설을 통해 읽고, 그 다음에 본격적으로 하나씩 읽어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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