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余華)
1960년 중국 저장성에서 태어났다. 1983년 단편소설 <첫 번째 기숙사>를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 등 실험성 강한 중단편 소설을 잇달아 내놓으며 중국 제3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첫 장편소설 《가랑비 속의 외침》 으로 새로운 글쓰기를 선보인 위화는 두번째 장편소설 《인생》을 통해 작가로서 확실한 기반을 다졌다. 《인생》은 장이머우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으로 ‘위화 현상’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1996년에 출간한 장편소설 《허삼관 매혈기》로 세계 문단의 극찬을 받으며 명실상부한 중국 대표 작가로 자리를 굳혔다.
1998년 이탈리아 그린차네 카보우르 문학상, 2002년 중국 작가 최초로 제임스 조이스 기금, 2004년 프랑스 문학예술 훈장 및 미국 반스 앤 노블의 신인작가상, 2005년 중화도서 공로상, 2008년 프랑스 꾸리에 엥테르나시오날 해외 도서상 등을 수상하였다. (책 앞표지 날개 인용)
하느님께서는
엿샛날까지 하시던 일을 다 마치시고,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이렛날에는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
- 창세기
차례
첫째 날 - 9
둘째 날 - 47
셋째 날 - 89
넷째 날 - 153
다섯째 날 - 189
여섯째 날 - 249
일곱째 날 - 281
안개가 자욱이 피어올랐을 때, 나는 셋집을 나와 공허하고도 모호한 도시를 휘적휘적 걸어갔다. 목적지는 빈의관(殯儀館). 사실 이건 오늘날의 명칭이고 예전 명칭으로 하면 화장터였다. 나는 아홉 시 전까지 빈의관으로 오라는 통지를 받았다. 나의 화장 예약 시간은 오전 아홉 시 반이라고 했다. 11쪽
나는 얇게 썬 과일을 천천히 먹으면서 누군가 탁자에 두고 간 그날의 신문을 펼쳤다. 대충 몇 페이지를 넘겼을 때, 커다란 사진 한 장이 내 눈길을 붙잡았다. 여전히 아름다운 한 여자의 상반신 사진이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신문 위에서 나를 보았다. 나는 속으로 그녀의 이름 ‘리칭’을 불렀다.
이어서 기사 제목을 읽었다. 리칭이라는 여성 부호가 어제 자기 집 욕조에서 손목을 그어 자살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한 고위 관료의 부정부패 사건에 연루되었는데, 그의 정부라서 참고인 조사에 데려가기 위해 조사관이 찾아갔다가 자살한 것을 발견했다고 했다. 신문의 글자가 총알구멍으로 가득한 벽처럼 새까맣게 내 눈을 틀어막았다. 나는 그 만신창이 같은 글자를 겨우겨우 읽었다. 어떤 글자는 갑자기 이해가 되지 않았다. 41쪽.
나는 기억의 끝자락에 도달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 이후의 광경은 전혀, 눈곱만큼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를 향한 탄자신의 시선과 뒤이은 엄청난 굉음, 그것이 바로 내가 찾아낸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 마지막 순간, 나의 마음과 몸은 온통 리칭이라는 여자의 자살에 쏠려 있었다. 내 아내였던 여자, 내 아름답고 가슴 아픈 기억, 나의 슬픔은 출발도 하기 전에 이미 도착해 하차하고 말았다. 43쪽.
“내 얘기 알고 있어요?” “알지.” “언제 알았는데?” “어제.” 나는 잠시 생각하고 다시 말했다. “어쩌면 그제.” 그녀가 나를 자세히 보면서 뭔가 깨달은 듯 물었다. “당신도 죽었어?” “ 응, 죽었어.”그녀가 침울하게 나를 보고, 나도 침울하게 그녀를 보았다. “당신 눈빛이 나를 애도하는 것 같네.”그녀가 말했다. “나도 그런 기분이야. 우리 둘이 서로를 애도하는 것 같아.” 76쪽.
아줌마의 목소리가 여기에서 잠시 멈추었다. 나는 아버지가 어디 계셨는지 알았다. 빈의관 대기실에서 파란 옷에 하얀 장갑을 끼고 있던 사람, 얼굴에서 살이 사라지고 해골만 남은 사람, 목소리가 지치고 슬펐던 사람이 바로 나의 아버지였다. 246쪽.
아버지의 슬픈 음성이 또 울렸다. “이렇게 빨리 오다니.” “아버지, 여기서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여기서 매일 너를 그리워했지만 이렇게 빨리 만날 줄은 정말 몰랐구나.” “아버지, 이제 또 함께예요.” 나와 아버지는 영원한 이별 뒤에 다시 만났다. 이제 체온도 없고 숨결도 없지만 우리는 다시 함께하게 되었다. 내 오른손이 하얀색 장갑을 낀 아버지의 앙상한 손가락뼈를 떠나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어깨뼈로 갔다. 아버지, 나랑 같이 가요. 하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얼마나 일을 사랑하는지, 이 대기실에서의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았기에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자주 뵈러 올게요.” 아버지의 뼈만 남은 얼굴에서 웃음이 이는 게 느껴졌다. 298쪽.
아버지가 뼈만 남은 두 손에 낡은 하얀색 장갑을 낀 다음 고개를 들고 나를 보았다. 텅 빈 아버지의 눈에서 두 줄기 눈물이 흘렀다. 당신이 나보다 먼저 왔는데도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사람을 보낼 때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300쪽.
그가 놀라서 내게로 몸을 돌리더니 질문을 던지듯 의혹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내가 그에게 말했다. 가자. 저기 나뭇잎이 너한테 손을 흔들고 바위가 미소짓고 강물이 안부를 묻잖아. 저곳에는 가난도 없고 부유함도 없어. 슬픔도 없고 고통도 없고, 원수도 없고 원망도 없어..... 저기 사람들은 전부 죽었고 평등해.
“저곳은 어떤 곳인가요?”
그가 물었다.
“죽었지만 매장되지 못한 자들의 땅.”
내가 대답했다. 313쪽.
"나는 죽는 게 두렵지 않아.
조금도 두렵지 않단다.
내가 두려운 건 다시는 너를 못 보는 거야."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없이,
그저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우리가 침묵 속에 앉아 있는 것은 다른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였다
나를 존재하게 했던 힘- 사랑을 찾아 헤매었던 그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