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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마리아 Oct 04. 2024

위다,  『플랜더스의 개』

나는 동화를 좋아한다. 나이가 얼만데 아직도... 하는 생각도 있지만 동화를 읽으면 맑고 깨끗했던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 어른이 된 후로는 느껴 보지 못한 순수 그 자체,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깨끗하고 순전한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갈수록 인간이란 존재 속에 무한한 것들이 들어 있음에 감탄도 하고 두려움도 느끼고 경이감도 느낀다. 인간이란 생명체가 어떻게 생존하고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지 도대체가 불가사의이고 이해 불가능한 경이로운 영역이다. 특히 인간 속에 들어있는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에게 이롭게 하려는 이기주의적 본능과 한편으로는 절대 선과 진리에 대한 갈망이 뒤섞여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사건들과 사연들을 보면서 인간의 가장 근본적 본질은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어린 시절에는 선과 악은 분명하고 무엇이 옳은지 잘못된 것인지가 분명하고 선명한 줄 알았다. 옳은 것은 옳은 것, 나쁜 것은 나쁜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시절, 착한 사람은 생김새에서부터 착한 사람이고 악한 사람은 모습부터 악인의 모습인 줄 알았던 시절, 선인은 어떤 경우에도 선하고, 악인은 모든 것이 악하여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다 선인과 악인을 구별할 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살아갈수록 세상은 흑백이 아니라 회색빛뿐 아니라 온갖 빛깔이 혼재되어 있는 기묘한 세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다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고 인간의 내면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세상의 복잡함과 인간의 기묘함을 알게 되면서 세상은 무서운 곳, 알 수 없는 곳으로 인식되어 갔다. 이렇게 세상의 혼잡과 혼효에 지쳐갈 때, 가끔 절대 선, 절대 정의에 대한 갈망이 그리워질 때,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는 그런 순수성을 잠깐이라도 맛보게 해주는 것 같다. 그러한 갈증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동화에 대한 환상이 계속되는 것 같다.


『플랜더스의 개』라는 동화를 아실 것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머리를 식힐 겸 가벼운 마음으로 어린이 코너에 꽂혀 있던 동화 『플랜더스의 개』를 꺼내 읽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훑어보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읽을수록 너무 아름다운 묘사와 문장, 그리고 이야기에 매료되어 계속 읽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면서 읽는 나를 보게 되었다. 그제야 주변을 의식하면서 약간 창피하기도 하고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눈물 훔치고 있는 것을 이상하게 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눈물을 흘리면서 그 책을 읽는 동안 하늘을 뒤덮고 있던 검은 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이 나타나는 것처럼 내 마음의 묵은 때와 번잡한 감정들이 씻겨 내려가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어릴 적 순수함이 드러나는 듯한 경험을 하였다.


 『플랜더스의 개』는 1872년에 영국의 여류작가 위다가 벨기에 플랜더스 지방의 조그만 마을을 배경으로 가난한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착하고 아름다운 소년 넬로와 충성스럽고 충직한  플랜더스 지방의 개인  파트라슈의 이야기이다.


 『플랜더스의 개』를 쓴 작가 위다는 본명이 마리아 루이스 드 라 라메 (Marie Louise de la Ramée, 1839년 ~ 1908년)로 위다는 작품을 발표할 때 쓰는 그녀의 필명이다. 『플랜더스의 개』는 위다가 33살에 발표한 작품인데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서 들은 플랜더스 지방에 전해오는 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쓴 작품이다.


 『플랜더스의 개』의 줄거리는 이렇다.

예한 다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군인이었는데 전쟁터에서 부상을 당해 절름발이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와 혼자서 살아간다. 할아버지가 80살이 되었을 때 자신의 딸이 두 살 난 손자를 할아버지에게 남기고 죽는다. 할아버지는 혼자 살기에도 버거운 형편이지만 묵묵히 손자를 맡았고 손자인 넬로는 할아버지에게 선물과 같이 고맙고 소중한 존재가 된다.

할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의 우유 통을 작은 수레에 실어 인근 도시인 안트베르펜에 운반해 주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항상 가난에 시달린다. 그러던 어느 날 길에서 고된 노동 끝에 쓰러져 주인에게 버림받고 죽어가는 플랜더스 지방 혈통의 개를 데려와 극진히 간호하여 살려낸다. 파트라슈라는 이름을 얻게 된 개는 새 가족이 된다. 파트라슈는 할아버지가 늙고 병들어 끌지 못하는 우유 수레를 넬로와 함께 끌면서 집안에 도움이 되고 넬로와 함께 행복하고 순수하고 건강한 날들을 보낸다.

파트라슈 외에 넬로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로 알루아라는 소녀가 있다. 그렇지만 알루아의 아버지인 코제 씨는 가난하기 그지없는 넬로가 자기 딸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둘을 떼어놓으려고 한다. 알로아의 아버지 코제 씨에 의해 넬로와 파트라슈는 동네 사람에게도 외면을 당하고 도움을 거절당한다. 집단 따돌림의 고통 속에서 넬로는 해마다 안트베르펜에서 주최하는 미술대회에 그림을 출품한다.

크리스마스 무렵, 다스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고 넬로는 파트라슈와 둘만 남는다. 동네 사람들은 코제 씨의 눈치를 보며 넬로에게 우유 배달 일도 맡기지 않아 넬로와 파트라슈는 며칠을 굶는다. 더구나 겨우 몸을 누일 수 있었던 오두막집조차 코제 씨의 눈치를 보던 주인으로부터 나가라는 통보를 받는다. 주인에게 쫓겨나기 전에 자진해서 정든 집을 떠나기로 한 넬로는 미술대회에서도 낙선한 것을 알고 완전히 낙심한다. 넬로와 함께 길을 헤매던 파트라슈는 눈 속에 파묻힌 지갑을 찾아낸다. 알로아 아버지의 지갑인 것을 알게 된 넬로는 알로아의 집을 찾아가 코제 씨의 지갑을 돌려주고 파트라슈를 돌봐 줄 것을 부탁하고 떠난다.

흥성한 크리스마스이브 파티를 위해 알로아의 집으로 사람들이 드나드는 틈을 이용해 파트라슈는 알로아의 집을 나와 눈 속에 희미해지는 넬로의 흔적을 찾는다. 넬로의 자취는 넬로가 자주 가던 안트베르펜 대성당으로 이어지고 파트라슈는 문이 잠겨 있지 않은 안트베르펜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서 루벤스의 그림 앞에 쓰러져 있는 넬로를 찾아낸다. 겨우 정신을 차린 넬로는 파트라슈를 끌어안고 함께 죽기를 기다린다.

그때 갑자기 보름달빛이 환하게 성당 안으로 들어와 루벤스의 두 그림을 환하게 비춘다. 넬로가 성당 안으로 들어오면서 그림을 덮고 있던 가리개 천을 걷어버렸던 것이다. 넬로가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그림이 눈앞에 환하게 드러나자  넬로는 황홀하게 그림을 바라보며 기쁨에 찬 눈물을 반짝거린다. 이튿날, 크리스마스 아침에 온 동네 사람들은 성탄 미사를 위해 대성당으로 몰려와서 성당 제단 앞에 죽어 있는 넬로와 파트라슈를 발견한다. 코제 씨를 비롯한 동네 사람들이 넬로에게 했던 모질고 잘못된 자신들의 행동을 뉘우치면서 넬로에게 깨어나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미소를 머금은 채 위대한 루벤스의 그림을 올려다보고 있는 창백한 얼굴은 모두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너무 늦었어요.”


내 가슴을 쿵 하고 울렸던 마지막 문장,

 “너무 늦었어요.”


살면서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다’이다. 모든 후회는 지나간 다음에 하는 것이고 지나간 것들은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을 것인데,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해서, 잘못을 인정하기 싫은 고집 때문에, 다음에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생각 때문에 되돌릴 수 있는 많은 기회들을 놓치고, 결국은 돌이킬 수 없어 ‘이미 늦어 버린 “일들을 만들어 버린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가를 생각해 본다.


후회할 일을 하지 않는 것, 후회를 빨리 돌이키는 것, 어떤 경우에도 너무 늦어서 사과하거나 바로잡을 수 없는 경우를 만들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너무 늦었어요.”가 아닌 인생이 되기를 빌고

또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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