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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마리아 Oct 11. 2024

김형석, 『백 년의 지혜』

우리 사회는 노인을 폄하하는 사회이다. 노인들에 대한 존중이 없다. 노인들에 대한 시선이 따뜻하지 않기에 노인들도 눈치 보며 위축되어 살아간다. 배우 김고은을 데뷔시킨 영화 <은교>에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대사가 있다. 우리 사회에 젊음이 상이고 늙음이 벌이라는 의식이 은연 중에 만연되어 있다는 뜻이 대화 아래 깔려 있다. 상을 받아야 한다면 오랜 세월 살아온 늙음에 대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어찌하든 긴 세월을 헤치며 살아온 것만으로도 존중받아야 할 것이니까.


우리 사회는 어른이 없는 사회라고도 한다. 개인적 , 사회적 문제가 생겼을 때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 지혜를 구하고 그 말에 모두가 승복할 수 있는 어른이 없다는 뜻이다. 과연 우리 사회에 노인은 존중받지 못하고 어른은 없는가.


나의 경우가 생각난다. 직장에서 초임일 때는 층층시하 높이 계시는 어른들이 많아서 어렵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분들이 하시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는 것이 편했다. 그때는 무조건 따라가는 것이 눈치만 보답답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되돌아보니 배우는 과정이었다. 중견이 되어 일을 주도적으로 할 때도 어른들의 눈치를 보기는 했다. 하지만 급하면 쫓아가서 조언을 구했고 어려울 때는 그분들이 나서서 막아주기도 했고 길을 열어주기도 했다.


내가 고참이 되자 그분들은 은퇴하기 시작하셨다. 내 앞에 계시던 어른들이 은퇴를 하자 보호막이 벗겨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를 지켜주고 막아주던 지붕이 벗겨져 허허벌판에  던져진 듯한 막막한 느낌이었다. 이제 나를 막아주고 지켜 줄 분들이 안 계시는구나. 내가 어른이 되었구나, 나는 실수하지 않을까. 어른 노릇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과 물어볼 데가 없다는 불안감이 강하게 왔다. 나에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물어볼 데가 없어지는 것,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답을 해야 하는 위치에 서는 것이라 답할 것이다.


나이가 드는 것은 점점 전면으로 전진 배치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예전에는 나이 많은 분들 뒤에 숨어 있으면 되었다. 책임질 일도 없었다. 그런데 내 앞에 계시던 분들이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고 사회적 활동을 중단하게 되면서 의 전면에 나서야 하는 형편이 되었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시자 삶의 맨 앞 줄에 서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맨 줄에 서서 불어오는 비바람 다 맞고 찾아오는 우환과 죽음과 직접  대면하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우리 시대에 어른이 안 계시고 노인을 폄하한다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가장 아름답게 장수하시는 어른, 김형석 교수님이 계신다. 노인은 나이 든 사람을 말하고 어른은 나이 들어서도 사회 활동을 계속하면서 영향력을 끼치는 분이라고 한다면 김형석 교수님은 이 시대의 가장 어른이실 것이다. 올해 105세이면서 지금도 강연이나 칼럼 등으로 사회 활동을 계속하시고 존경받는 삶을 살아가시기 때문이다.


올해 5월에 김형석 교수님이 『김형석, 백 년의 지혜』라는 책을 또 내셨다. 100세 이후로 10권이 넘는 책을 내시는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신다. 100세가 넘도록 이런 왕성한 활동을 하시는 것이나 건강을 유지하시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노력과 절제의 결과라는 것을 생각하면 교수님의 105세 인생인간이 할 수 있는 위대체적 관리이며 정신적 승리라고 할 수 있다.


김형석 교수님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것이다. 교수님에 대한 소개를 이 책에 있는 대로  옮긴다.  

대한민국 최고령 철학자이자 수필가. 1920년 평안북도 운산에서 태어나 평안남도 대동군 송산리에서 자라고, 고향에서 해방을 맞이했다. 일본 조치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1947년 탈북 후 7년간 서울중앙중고등학교의 교사와 교감으로 일했다.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 미국 시카고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의 연구 교수를 역임했고, 대한민국 1세대 철학자로서 한국 철학계의 기초를 다지고 후학을 양성해왔다. 현재 연세대학교 철학과 명예 교수로서 강연과 방송, 저술 등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삶에 대한 탁월한 통찰을 부드럽고 유려한 언어로 전하고자 했으며, 주요 저서로는 불후의 명작 『고독이라는 병』 『영원과 사랑의 대화』를 비롯하여 『철학 개론』 『철학 입문』 『윤리학』 『역사철학』 『종교의 철학적 이해』 『예수』 『어떻게 믿을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백세 일기』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 『백 년을 살아보니』 『백 년의 독서』 등이 있다.

『김형석, 백 년의 지혜』를  이 책에서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김형석, 백 년의 지혜』는 삶의 지표를 잃어버린 현대인이 단단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한 세기의 깨달음을 고스란히 집대성한 김형석 교수의 마지막 인생론이다. 김형석 교수는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살면서 자연스레 잊어버린 사랑과 자유, 평화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과 해답을 던져주는 한편, 다가올 미래를 위해 후손에게 전해줘야 할 정의와 최후의 가치는 무엇인지를 다루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의 산증인으로서 이념적 갈등으로 위태로운 한국인에게 다정하지만 예리한 일침들을 전해준다. 이 책은 ‘진정한 어른’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깊이 공명할 삶의 지침서가 되어줄 뿐만 아니라, 세상의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는 인간은 결국 어떠한 가치들로 채워지는지 그 심연을 만나게 해줄 것이다


『김형석, 백 년의 지혜』에서 교수님의 지혜를 배운다.


지금을 자연스럽게 100세 시대, 100세 인생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100세가 넘는 분들의 육신의 노쇠함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100세가 넘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100세를 살아보신 교수님은 100세가 넘는 인간의 육체적 노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100세가 넘으면서 가장 많이 받는 인사가 있다. “120세까지 사세요.”라는 축하 말이다. 나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고맙다는 표정으로 대신한다. 그런데 내 가족 안에서는 그런 인사가 없다.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104세인 지금도 힘들게 사는 모습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90쪽.

노쇠한 육신을 정신력으로 업고 다니는 느낌이라고 말씀하시는 교수님, 아침이면 일어나기 싫고 쇠락한 육신을 버티어야 하는 하루가 힘들다는 토로. 생사는 우리의 주도 아래 있지 않기 때문에 100세가 넘는 노쇠한 육신이 힘들고 부담스럽지만 날마다 눈을 뜨면 주어진 생을 또 성실하게 가치 있게 살아간다는 교수님의 삶에 대한 자세를 존경한다.

나는 왜 120세까지 살라는 인사를 받으면서도 고마운 마음을 못 가졌을까. “더 오래 우리 곁에 계셔주세요.”라는 인사라면 머리를 숙이면서 “감사합니다.”라고 답례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 첫째 원인은 100세 이상의 삶은 신체적 부담과 고통이 동반하기 때문이다.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모르는 어려움이 있다. 나도 95세 이후부터는 내 정신건강이 신체적으로 노쇠한 육신을 업고 다니는 부담을 느낀다. 저녁 10시가 되어 잠드는 시간에는 편안한 안식을 느낀다. 하루의 짐을 풀어놓는 가벼운 자세다. 반대로 아침 기상 시간이 되면 일어나는 것이 싫어진다. 내 몸이 천근만근 같아 “30분만 더 자면 안 되나” 라며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심정이다. 기상 자체가 주어진 부담이다. 이런 상황을 직접, 간접으로 경험해 보는 사람들은 “100세라는 산(山)을 넘어서까지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100세 이상 사는 가족이나 친지를 보는 사람은 그런 상태 이전까지의 인생을 원하게 된다. 정신이 신체의 노예가 되면서까지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다. 91쪽.

교수님은 노인이 겪는 외로움을 일로 극복하였다고 말씀하신다. 교수님에게 일은 보수나 소유를 위한 것을 넘어서 아있는 사람으로서 사명 의식과 일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일에 대한 책임감으로 신체적, 정신적 한계를 극복해 오셨다는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아흔이 되면서 더 외로움을 느꼈다. 100세가 넘으니까 혼자 있어서는 안 되고 누군가의 도움이 간절해진다. 그것이 고령 노인에게 주어지는 인생의 짐이다. 그래도 나는 그 고독을 극복해 냈다고 생각한다. 그 원동력이 무엇이었을까. 일을 위하고 사랑하는 열정이었다. 누구보다 많은 일을 했다. 그 일에서 오는 위로와 보람이 고독한 심정과 시간의 공간을 채워 주었다. 그 일은 보수나 소유를 위한 일이 아니었다. 학자로서 진실을 찾는 의무였고 제자들을 위하고 사랑하는 즐거움이었다. 대학을 떠난 후에는 친구들과 사회에 무엇인가 남겨주고 싶은 사명감 비슷한 것이었다. 일 많은 나라에 태어난 것에 감사했고 많은 일이 주어지는 현실에서 보람을 느꼈다. 80쪽.
역사를 누가 이끌어왔는가. 삶의 가치와 의미를 위해 최선의 삶을 영위해 준 사람들이다. 이에 뒤따르는 또 하나의 삶의 창조적 영역이 있다. 내가 사는 공동체 의무를 사명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나와 더불어 가족을, 우리와 함께 민족의 행복과 발전을 위한 삶이 본연의 책임이다. 정신적 가치를 창조하는 노력과 공동체의 기본이 되는 민족과 국가를 위해 주어지는 일과 사명의식을 갖추고 산다면 100세라는 시간적 한계는 사라진다. 나이란 숫자일 뿐이라는 말이 진실이 된다. 나 같은 늙은이도 주어진 일이 있는 동안은 책임져야 한다는 의지로 삶을 계속하고 있다. 94쪽.

교수님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일의 가치는 무엇일까.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행복과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고 더 많은 정신적 가치를 찾아 성장하면서 보람 있는 일을 즐기는 것이라고 하신다.

일의 가치란 무엇인가. 나에게 주어진 일을 통해 좀 더 많은 사람이 행복과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이기적인 목적으로 하는 일은 사회적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하는 일을 통해 국가와 국민의 번영과 행복이 증대되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면서 진리이다. 58쪽.
적게 일하고 많이 놀기 위한 인생이 아니다. 더 많은 정신적 가치를 찾아 성장하면서 더 보람있는 일을 즐기는 것이 인생의 길이다. 이웃과 나라를 위해 인간적으로 성장하면서 즐겁게 일하는 인생보다 귀한 삶은 없다. 공부하면서 일하는 국민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을까. 58쪽.

교수님은 철학자답게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각 분야의 문제점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신다. 즉각적이고 단방의 해결은 아닐 수 있지만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시고 있다.

정치와 경제문제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러스킨은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에 대한 인간애의 의무라고 받아들였다. 자력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은 함께 가면 된다. 그러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사랑을 받아야 한다. 국가와 정부의 최대 과제와 급선무는 거기에 있다. 기초 국민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 가난 때문에 병고로 고통받는 사람들, 기본 경제의 혜택을 받지 못해 가난과 굶주림을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보호와 사랑을 베풀지 못하는 국가와 정부는 존재의 의무와 가치를 스스로 포기한다. 이런 성스러운 의무와 책임을 소홀히 하거나 역행하는 정치나 경제정책은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 정부만이 아니다. 부를 독점하거나 향락으로 소비하는 사람들, 교육받지 못한 국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공직자들이 사회악의 책임자들이다. 268쪽.
지식은 왜 필요한가.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위할 때 그 보람을 얻는다. 의술은 왜 존경받는가. 환자를 위해 사랑을 베푸는 의무 때문이다. 돈 벌기 위해 의사가 되는 사람은 진정한 의사가 못 된다. 재산이 많이 있어도 개인과 가정은 중산층 생활로 자족하고 주변의 가난한 사람을 위해 기업과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국가를 위한 성스러운 사명이다. 경제활동의 궁극적인 목표와 가치는 무엇인가. 부가 더 많은 사람의 행복과 인간다운 삶을 위해 쓰이기 위해서다. 그런 인생관과 가치관을 갖고 사는 지도자와 국민이 많은 사회가 최선의 윤리적 가치와 사랑의 성과를 함께 누릴 수 있다. 269쪽.

교수님은 획일성과 전체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씀한다.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다양한 방법과 길을 추구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신다.

따져 보면 노동자 아닌 국민은 없다. 일의 다양성이 사회 진보의 원천이고 원동력이다. 일의 가치는 개인이나 이해집단이 결정하지 않는다. 사회가 평가 규정한다. 내가 하는 신체적 일이 노동이고, 정신적 가치와 문화 운동은 노동이 아니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지금 우리가 문제 삼고 있는 최저임금이나 근무시간 규정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이 우선이다. 삶의 가치는 임금이나 시간의 길고 짧음에 달려 있지 않다. 모두가 스스로 인간다운 삶과 행복을 추구하고 서로 공존하면서 협력하는 것이 최선의 의무이며 방법이다, 167쪽.

70년을 철학자로 살아오신 교수님은 철학적인 방법으로 이 사회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무엇이 해결책인가. 인간성의 회복이다. 인격과 삶의 가치를 복구시켜야 한다. 양심의 자유와 인간애의 질서를 정착시켜야 한다. 자유와 정신문화를 말살하는 정치력을 배격하고 인문학과 인간주의를 되찾아야 한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선결과제이다. 128쪽.
 나와 우리의 거짓을 숨기고 상대방의 정직과 진실은 불의라고 투쟁한다. 거짓을 버리고 정직과 진실을 찾아 누리지 못한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다. 왜 그런가. 거짓은 악(惡) 중의 악이지만 진실은 선(善)의 출발이며 사회질서와 가치의 분기점이기 때문이다.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엄연한 규범이 있다. 주어진 사실과 사건에서 진실을 찾고, 그 진실에 따라 가치판단을 내리라는 정론(定論)이다. 진실이 아닌 사실과 사건을 갖고 법적 논쟁과 윤리적 판단은 내릴 수 없다. 그 가치판단의 기준은 무엇인가. 악을 배제하고 선을 택하는 일이다. 그것이 윤리와 도덕의 기본이다. 진실의 생활 가치가 선이고, 거짓의 열매는 악의 씨앗이 된다. 239쪽.

그리고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행동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면 습관이 바뀌, 습관을 바꾸면 성격이 바뀌고, 성격이 바뀌면 운명을 바꿀 수 있으므로 행동을 바꾸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신다.

한때 행동과학 계통 사람들의 주장이 많은 영향을 남겼다. 사람은 주어진 운명을 바꿀 수 있는가. 옛날 그리스 비극 작가들은 밖으로부터의 운명은 바꿀 수 없다고 했다. 반면 세익스피어 비극에서는 운명은 인간적 한계 안에서 바꿀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성격이 곧 운명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격을 바꾸면 운명도 변한다는 것이다.
타고난 성격을 어떻게 바꾸는가. 습관을 바꾸면 자신도 모르는 동안에 성격이 달라진다. 습관은 행동을 계속해 바꾸면 달라질 수 있다. 행동을 바꾸는 일은 누구나 가능하다. 생각을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성격은 누구나 바꿀 수 있고 또 바꾸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248쪽.

교수님은 우리가 살아야 할 모범적인 노년의 모습을 앞서 걸으시면서 실천으로 보여주시는 것 같다. 삶에 대한 책임감과 의무감, 존중이 없이는 저절로 살아 낼 수 없는 모습, 사람이 걸어가야 할 가장 완전하고 모범적인 모습을  실천하심으로 교수님의 신앙과 학문적 신념을 증명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100세가 넘으신 노학자가 지극한 극기와 노력으로 병마와 죽음을 의연하고 용기 있게 대면하시는 것을 보면서 깊은 경의와 존경을 드린다.


고맙습니다. 김형석 교수님!

감사합니다, 김형석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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