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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마리아 Oct 18. 2024

노벨문학상의 품격

정말 기쁜 일이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믿을 수 없는 일이 현실이 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우리나라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타면 좋겠다는 희망은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실현되리라는 생각은 없었다. 언젠가는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은 있었지만 절실하지 않은 기대감이 이렇게 갑자기 현실로 나타날 줄은 몰랐다.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문학상 발표

10월 9일 한글날 다음날, 한글을 원어로 소설을 쓰는 50대 초반의 한국의 여성 소설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되었다. 뉴스를 듣는 순간, 아!!! 하고 길게 소리를 질렀다. 환희의 외침이었다. 기쁨이 마음 속으로 물밀듯 들어와서 차오르기 시작하였다. 우리 나라가, 우리 모두가 뿌듯하고 대견스러웠다. 갑자기 우리 나라의 격이 높아진 것 같았고 우리 나라가 문화 국가가 된 것 같았다. 수상자인 한강 작가와는 일면식도 없고 그의 작품은 읽어 본 일도 없는데  이런 기쁨을  우리에게 준 한강 작가가 대견하고 고마웠다. 


노벨상이 어떤 상인가. 전 세계가 기다리고 고대하고 희망하는 상이 아닌가. 심사 위원이나 심사 작품이나  심사 기준이 비밀에 싸여  있지만  심사의 공정성과 탁월성은 전 세계가  인정하고 승복하지 않는가. 이런 노벨상에, 그것도 인간의 창의성과 창조력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문학상에 우리나라의 소설가가 선정되었다는 것은 당연히 전 국민이 기뻐하고 환영할 소식이었다.


언론은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으로 도배했다. 그렇지만 수상 당사자인 한강 작가는 소감도 발표하지 않고 조용히 잠적했다. 아버지인 한승원 작가를 통해 전해진 것은 지금 전쟁으로 지구 곳곳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는데 잔치를 벌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전언마저도 멋졌다. 그리고 그 후에 한강문학관을 건립하겠다는 지자체의 발표에 한강의 이름을 딴 어떤 기념관이나 문학관의 건립을 원치 않는다는 전언 역시 멋졌다. 역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답게 진중하고 품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의 수준은 작가의 수준이라는 말처럼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한강 작가의 처신과 태도는 품위 있었다.



하루가 지나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한강 작가의 수상을 기뻐한다면 그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기뻐하는 국민들 모두를 무지몽매한 무식한으로 몰아 갔다. 노벨 문학상 심사위원들이 정치적, 물질적인 이유로 한강 작가를 선택했거나  아니면 선풍기를 돌려서 무작위로 선택했을 거라고 하며 노벨문학상 심사위원들을 치기 어린 어리석은 자들로  취급하였다. 더 나아가 꼭 동양권에 주어야 했다면 중국 작가에게 주었어야 했다고 했다. 탄식했다. 그런 글을 올려서는 안 되었다. 모처럼, 이해 관계나 사심 없이 전 국민이 하나 되어 기뻐하고 뿌듯해하는 일에 그렇게 찬물을 끼얹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같은 국민인 우리 나라 작가가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에 대해 한 마음으로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하면 안 되는가. 함께 축하하고 기쁨을 나누는 것에 무슨 다른 이유나 관점이나 시각이 필요한가.      


글쓰기와 책읽기를 평생의 업이자 꿈으로 삼아 왔지만 진지한 독서를 시작한 것은 작년부터였다. 작년에 읽은 책에서 깊이 있는 독서를 하라는 글을 읽고 그동안의 나의 독서에 대해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까지는 책을 좋아한다고 하면서 읽기 쉽거나 가벼운 내용의 책으로 읽은 책의 권수를 높이려고 하지 않았는가 반성했다. 책읽기를 계속하는데도 마음 한 구석에 채워지지 않은 미진함과 공허함이 있다는 것을 깊이 느끼고 있던 때였다.


독서의 태도를 진지한 쪽으로 바꾸면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책들을 몇 권 읽게 되었다. 여러 책에서 자주 거론하거나 꼭 읽어야 한다고 권유하는 책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들을 읽으면서 수상 작가들과 작품들을 골라내는 노벨문학상 선정 위원회 (스웨덴 아카데미와 노벨상 위원회)의 심사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세상의 그 많은 작가들과 작품 중에서 어떤 기준으로 작가와 작품을 선정하는지를 어렴풋이 느끼면서 심사위원들의 탁월한 식견과 선택에 대해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웨덴 한림원 노벨문학상 발표장

내가 읽은 수상작들을 통해서 본 노벨문학상 수상의 기준은 인간 정신의 최대한의 확장과 인간 심연의 끝까지 내려가는 탐험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깊이를 알 수 없고  끝을 알 수 없는 캄캄한 광산에서 인간의 심연을 찾아 헤매는 작품들을 찾는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게 선정된 소설들은 독자들과 폭넓은 공감을 할 수도 있고  지나치게 난해하여 독자들에게 외면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노벨문학상의 선정 기준이 얼마나 많은 독자를 확보했느냐보다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인간 내면의 심연에 얼마나 더 깊이 접근하였느냐, 얼마나 더 새로운 방향으로 파고들었느냐에 두었다고 보았다. 내가 읽은 소설들 모두 이러한 관점에서 어렵고 새롭고 신선하고 독특했다. 그리하여 나는 읽지 못한 노벨문학상 모든 작품과 작가에게도 절대적 신뢰와 기대를 갖게 되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을 폄하하면 안 된다. 노벨문학상의 선정 기준은 “문학 분야에서 이상적인 방향으로 가장 뛰어난 작품을 생산한 사람”에게 수여된다고 한다. 1901년부터 시작된 노벨문학상은 올해까지 총 117차례 수여됐으며, 상을 받은 사람은 121명이다. 한강은 여성 작가로서는 18번째, 아시아 여성 작가로는 최초로 수상하게 되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의 면면을 보면 한강 작가가 수상한 노벨문학상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게 된다. 역대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을 우리가 잘 아는 작가 위주로 살펴보면,


모리스 마테를링크( 1911. 벨기에, 파랑새)

로맹 롤랑( 1915. 프랑스, 장크리스토프),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1923. 아일랜드, 호수의 섬 이니스프리)

조지 버나드 쇼( 1925. 영국, 피그말리온)

앙리 베르그송(1927. 프랑스,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토마스 만(1929. 독일, 마의 산)

이반 부닌(1933.  국적생략,  메마른 골짜기)

유진 오닐(1936. 미국, 지평선 너머)

펄 벅(1938. 미국, 대지)

요하네스 빌헬름 옌센(1944. 덴마크, 긴 여행)

헤르만 헤세(1946. 스위스, 유리알 유희)

앙드레 지드(1947. 프랑스, 좁은 문)

윌리엄 포크너(1949. 미국, 압살롬, 압살롬)

버트런드 러셀(1950. 영국, 서양 철학의 역사)

윈스턴 처칠(1953. 영국, 제2차 세계대전사)

어니스트 헤밍웨이(1954. 미국, 노인과 바다)

알베르 카뮈(1957. 프랑스, 이방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1958. 소련, 닥터 지바고)

존 스타인벡(1962. 미국, 분노의 포도)

장폴 사르트르(1964. 프랑스, 구토)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 일본, 설국)

사뮈엘 베케트(1969. 아일랜드, 고도를 기다리며)

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70. 소련,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파블로 네루다(1971. 칠레, 모두의 노래)

하인리히 뵐(1972. 서독,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가즈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82. 콜롬비아, 백년 동안의 고독)

주제 사라마구(1998. 포르투갈, 눈먼 자들의 도시)

귄터 그라스(1999. 독일, 양철북)

오르한 파묵(2006. 터키, 내 이름은 빨강)

모옌(2012. 중국, 개구리)

밥 딜런(2016. 미국, Like a Rolling Stone)

패터 한트케(2019. 오스트리아, 관객모독)

욘 포세(2023, 노르웨이, 3부작)   

          

등이 있다. 이들 작가들을 선정한 노벨문학상 심사위원들의 식견과 안목에 어떤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는가. 이들 수상자들 중에 잘못 수상되었다고 말할 작가들이 있는가. 우리는 다만 우리나라의 한강 작가가 우리가 그토록 경외해 마지않는 로맹 롤랑, 예이츠, 헤르만 헤세, 앙드레 지드, 헤밍웨이, 카뮈, 사르트르, 네루다와 같은 반열에 올랐다는 것에 감격하고 경탄하는 것이다.


한강 작가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노벨문학상 위원회에서는  "for her intense poetic prose that confronts historical traumas and exposes the fragility of human life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력한 시적 산문 "이었기 때문이라고 수상의 근거를 제시했다. 노벨문학상심사위원들과 그들의 선정의 탁월함에 감탄할 뿐이다. 또, 그동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이 보여준 품격과 수준이 한강 작가의 품격과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한강 작가를 한 번 본 적 없고 그의 작품을 아직 읽지 못했지만, 김구 선생님이 바랐던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처럼, 우리 나라를 문화의 나라로 만들어 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심으로 축하한다. 그리고 아직 창창한 그의 전도가 더욱 확장되고 깊어져 끝까지 우리의 자랑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뻐하는 방법으로 그의 책을 모두 사들이는 소심하고 소극적인 방법을 택하면서   볼 수 없는 그녀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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