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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마리아 Oct 25. 2024

윌리엄 포크너,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우리나라 올해의 가장 큰 화제이자 기쁨이었던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기점으로  베일에 싸여 있는 노벨 문학상의 선정 기준이 무엇이냐는 것에 의견이 분분하였다. 노벨 문학상 심사 기관인 스웨덴의 한림원에서는 노벨 문학상의 선정 기준을 “문학 분야에서 이상적인 방향으로 가장 뛰어난 작품을 생산한 사람”에게 수여한다고 밝혔다. 


때마침 1949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을 읽게 되었는데 포크너의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를 한림원은 "그의 현대 미국 소설에 있어 강력하며 예술적으로 특별한 공헌에 이 상을 드립니다."라고 밝혔다.      


내가 읽은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은 1930년에 발표된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이다. 포크너를 “그를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그의 실험적인 문체였다. 그는 미국 모더니즘 문학의 개척자로서 정통적인 소설 형식을 파괴하고 소설 문법에 혁신을 가져 왔다. 의식의 흐름 기법을 이용해 등장인물의 내면 심리를 묘사하며, 소설 구성에서 연대기적 서술 기법을 탈피하고, 현재 시제와 과거 시제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불가능할 정도로 길고 복잡한 문장을 구사했다. 이러한 독특한 작품 세계를 인정받아 전미 도서상, 퓰리처상,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고 소개하데,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에서도 포크너의 이러한 특징이 농후하게 드러난다. 포크너는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를 “첫 단어를 쓰기 전에 이미 마지막 단어를 머릿속에서 끝맺었”을 정도로 철저한 기획과 실험 끝에 완성하였고, “이 작품은 나를 일으켜 세우거나 거꾸러뜨릴 것”이라고 단언하여 자신의 이후 작품 세계를 결정지을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호언했던 작품이었다.     

윌리엄 포크너(1897-1962)에 대해서는 이 소설의 앞표지에서 소개한 것을 인용한다.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의 전체적인 줄거리와 평가는 뒤표지에 있는 것을 인용한다.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의 구성은 죽어가는 주인공 애디와 남편, 5명의 자식들, 그리고 주변 인물들이 애디의 죽음을 각자의 시각과 관점으로 생각하고 해석하는 독특한 기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15명의 등장인물들의 관점으로 59개의 에피소드를 구성하여 애디의 죽음으로 드러나는 각 가족들의 입장과 생각과 관계를 다각적인 측면에서 조명하여 전체적인 이해에 이르게 한다.


소설의 시작은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하다.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톱질 소리가 멈춘다. 톱밥이 어지럽게 널린 마당에 서서 캐시는 널판자 두 개를 맞추고 있다. 주변이 어두워서 널판자는 황금처럼 노랗게 보인다. 부드러운 황금빛이다. 널판자의 측면은 손도끼날 자국이 부드럽게 물결치고 있다. 훌륭한 목수지, 캐시는 말이야. 그는 선반 위에 두꺼운 판자 두 개를 놓고, 다 만들어진 상자의 한 모서리에 가장자리를 맞춘다. 무릎 꿇고 가장자리를 들여다보고는 다시 내려놓고 손도끼를 집어 든다. 훌륭한 목수야. 엄마는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지. 죽어 누워 있기에 캐시의 관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이 관은 엄마를 편안하고 안전하게 해줄 것이다. 나는 집으로 들어간다. 손도끼로 나무 찍는 소리를 들으며. 탁. 탁. 탁.  8쪽.      
달이 태어났을 때, 내가 죽으면 제퍼슨에 묻겠다고 약속해 달라고 했다.  199쪽.  

이 소설의 중심인물인 어머니 애디가 죽어가고 있다. 어머니가 누워 있는 방 밖에서 큰 아들 캐시는 관을 짜고 있다. 가족들은 어머니가 죽으면 시신을 어머니의 친정인 제퍼슨에 있는 가족묘지에 매장하려고 한다. 일찍이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부탁했기 때문이다.

황혼 녘 창문 속에 나타난 수척한 얼굴의 어머니를 캐시가 바라본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봐 왔던, 세월에 따라 변해온 엄마의 얼굴이 모두 겹쳐진 모습이다. 그는 톱질을 멈추고 자신이 자른 널판자를, 어머니의 얼굴이 고정되어 있는 창문을 향해 들어올린다. 그는 두 번째 널판자를 끌어당겨, 다 만들어진 후의 모습대로 두 개의 널판자를 나란히 기대 세운다. 그러고는 바닥에 있는 널판자를 가리키며 팬터마임처럼, 완성된 모습의 상자를 두 손으로 만들어 낸다. 겹쳐진 그림 같은 어머니는 아무런 비난이나 칭찬도 없이 한참 동안 캐시를 바라본 뒤, 창문에서 사라진다.
어머니는 다시 누워 아버지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바더만을 바라본다. 남아 있는 모든 생명이 엄마의 눈으로 쏠린 듯, 잠시 동안 두 개의 불꽃이 타오른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 불    꽃을 훅 불어 꺼버린 듯이 이내 사라져버린다. 58쪽.

 어머니가 죽었다. 장례식을 마친 후,  가족들은 캐시가 만든 관에 죽은 애디를 안치하고 마차에 실어 매장지인 제퍼슨을 향한 기묘한 장례 행렬을 시작한다. 40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제퍼슨은 날씨가 좋으면 반나절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열흘이 걸려서야 도착한 험난한 여정이었다.


무더운 여름날, 장대비를 맞으며 시작된 장례 행렬은 첫날부터  강물이 범람하는 속에 관을 놓쳐 떠내려 가는 것을 간신히 찾고  다리가 물에 잠겨 돌아가야 하고, 날씨는 무더워서 관 속에 있는 시체는 썩어 악취를 풍긴다. 캐시는 다리가 부러져 시멘트를 부어 임시로 처치하고 관을 안치한 헛간에 불이 나는 등의 온갖 곡절을 겪은 뒤에야 간신히 제퍼슨에 도착하여 애디를 매장한다.


그동안 가족들은 각자의 이해관계로 머리가 복잡하고 분주하다. 애디를 장한 이튿날,  아버지인 앤스가  새로운 어머니를 자식들에게 소개한다. 비극 속의 희극이다.

“이쪽이 캐시이고... 주얼... 바더만... 그리고 듀이 델이오.” 비열하면서도 당당하게, 우리를 바라보지 않은 채 아버지가 우리를 소개한다. 그는 이제 의치도 있고 모두 다 가진 듯하다. “얘들아. 새엄마, 번드런 부인이다.”아버지가 말한다.  299쪽.

이 소설을 읽는 동안 기가 막힌 반전과 해학, 슬픔과 복잡한 인간의 내면을 꿰뚫는 예리한 관찰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를 읽으면서 왜 포크너를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소설가, 미국 모더니즘 문학의 개척자로 평가하는가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노벨 문학상을 받는 작품의 수준과 위상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에서 감명 깊었던 문장들을 몇 개 소개한다.

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필요하다. 그중 한 사람이 죽게 되고, 이제 그런 식으로 세상은 끝나게 되는 것이다. 48쪽.
우리가 방에 들어서자 애디는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본다. 그녀는 이렇게 열흘 동안 죽은 듯 누워 있었다. 죽음이 일종의 변화라면 그 변화를 막는 일조차 오랫동안 앤스의 몫이었다. 난 어릴 적, 죽음을 단순히 몸의 변화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 난 죽음을 마음의 변화로 이해한다. 즉 사별을 견디어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화 말이다. 허무주의자들은 죽음이 끝이라고 하고, 근본주의자들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상 죽음이란, 가족 또는 세 들었던 사람이 집이나 마을을 떠나는 것이나 다름없다. 53쪽.
아버지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그냥 기억났을 뿐이었다. 우리가 살아 있는 이유는 오랫동안 죽어 있을 준비를 하기 위해서라고 말이다. 195쪽.
말과 행위가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 사람들 사이에는 틈이 생긴다. 늘 그렇듯이 무서운 밤, 거친 어둠으로부터 들리는 거위의 울음 소리처럼 언어는 떨어져내린다. 누군가 군중 속의 두 얼굴을 가리키며, 너의 엄마다 혹은 아빠다 말할 때, 정신없이 그 얼굴을 찾아 헤매는 고아처럼, 말은 그것이 가리키는 행위를 찾아 헤맨다. 201쪽.         
“너희들은 모른다. ” 아버지가 말했다. “ 우린 젊음을 함께했고, 함께 늙어왔다. 늙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하는 괜찮다는 말. 슬픔과 시련으로 가득한 험한 세상에서 괜찮다는 말은 진실이란다. 너희들은 이해하지 못하지.” 270쪽.

소설의 문장들에서 왜 이렇게 쓸쓸하고 처연한 느낌이 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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