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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마리아 Aug 02. 2024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

어렸을 때 책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또래 친구들이 하는 고무줄놀이나 핀 따먹기, 공기놀이 등을 하기보다 책을 읽는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이 했다는 놀이의 재미를 잘 모른다. 항상 책을 끼고 있었고, 나중에는 책 때문에 조숙해져서 문학소녀인 척 혼자 있는 것을 즐겼다.

 

책은 닥치는 대로 읽었다. 여름방학 때 시골 할아버지 댁에 가면 신혼이셨던 작은 엄마가 보셨던 <여원>이나 <농민생활> 같은 것을 보았다. 거기에 실린 연재소설이 짜릿하게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때는 일간지 신문에 연재되던 정체불명의 연애소설을 열심히 읽었다. 읽으면서도 내용이 건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있었던지 몰래 보았던 기억이 있고, 가끔 신문 소설을 읽는 나를 엄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던 것도 생각난다.

 

바로 밑의 남동생이 무슨 병으론가 병원에 입원한 때가 있었다. 병원 생활에 지루해하던 동생을 위해 엄마는 동네 만화방에서 만화를 한 아름씩 빌려서 동생에게 가져다주었다. 만화를 빌려오고 반납하는 일은 내 몫이었다. 그때 나는 그 만화방에 있는 만화를 거의 다 읽었다. 만화를 빌리러 가서, 만화를 반납하러 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만화에 빠져 들었다가 주인에게 쫓겨났던 기억도 있다.

 

집에도 책은 많았다. 그때 보았던 책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이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었다. 그 소설들은 어지간한 초등학생들은 거의 다 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소설이라는 생각도 없이, 지은이도 모르는 채 읽었다. 그냥 재미있고 흥미진진했었다. 미국이라는 이국적인 나라와 그곳에서의 생활을 상당히 동경했던 것 같다.

 

어른이 되어서도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항상 생각나는 책이었고 언젠가는 다시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처음 읽을 때부터 으스대고 잘난 척하며 항상 대장 노릇을 하는 톰 소여가 주인공인 『톰 소여의 모험』보다는 난폭한 부랑자의 아들로 학교도 가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던 허클베리 핀이 주인공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더 좋았다.

 

내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다시 읽게 된 것은 헤밍웨이 때문이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읽으면서 한참 헤밍웨이에 빠졌고, 내친김에 『헤밍웨이의 글쓰기』란 책까지 읽게 되었다. 그 책에서 헤밍웨이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대해서 극찬을 하고 있었다.

미국의 모든 현대문학은 마크 트웨인이 쓴 한 권의 책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책을 읽을 때 아이들이 검둥이 짐을 탈출시키는 장면에서 멈추어야 해요. 그게 진짜 끝이거든요. 나머지 이야기는 그저 눈속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 책은 미국 최고의 걸작이고 미국이 모든 글은 그 작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그 이후로도 그만큼 훌륭한 작품은 나오지 않았어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글쓰기>, 195쪽.
마크 트웨인이 발표한 많은 작품 가운데서도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작품은 미국 문학사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 문학사의 반열에 올라 있다. 이 작품을 읽지 않고서 미국 문학을 제대로 말할 수 없다고 하여도 그렇게 틀린 말이 아닐 것 같다. 프랑스 문학사에서 스탕달의 『적과 흑』, 독일 문학사에서 괴테의 『파우스트』, 그리고 러시아 문학사에서 레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빼놓을 수 없듯이 미국 문학사에서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빼놓을 수 없다.  <작품 해설>, 598쪽.

헤밍웨이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미국 문학의 분깃점이 된다고 추켜 올렸다, 또 『톰 소여의 모험』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보다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하였다.


헤밍웨이의 평가를 보면서 나는 내심 기뻤다. 내가 『톰 소여의 모험』이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다시 읽고 싶었던 것이 맞는구나. 그리고 『톰 소여의 모험』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더 관심을 갔던 것도 맞는 것이었구나 하는 느낌 때문이었다. 이런 계기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다시 읽게 되었다. 그런데 어린이를 위한 동화가 아닌 어른을 위한 원래의 분량으로 보게 되니 이 책이 그렇게 만만한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번역본으로 무려 596쪽에 달하는 장대한 분량의 장편소설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오랜 옛날 친구를 만나는 것 같은 반가움과 기대로 읽어 내려갔다. 책은 분량에 비해 너무 재미있어서 일주일이 못되어 다 읽어버렸다. 그리고 역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다시 보고 싶어 했던 나의 어린 날의 독서 기억이 대견하게 생각되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작가가 마크 트웨인이라는 것도 헤밍웨이의 언급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그전에는 작가도 모르고 책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재미있고 통쾌한 동화 같은 소설을 쓴 사람이 그렇게 유명한 작가였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 (마크 트웨인 사진 첨부)은 1835년 미국 미주리 주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다. 네 살 때 가족을 따라 미시시피 강 서쪽 해니벌로 이사했으며, 그곳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경험은 훗날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다. 1847년 아버지를 여읜 후 여러 신문사에서 식자공으로 일했으며, 미시시피강을 누비는 증기선의 수로 안내인으로 일하기도 했다. 1861년 남북 전쟁 이후, 신문 기자로 일하면서 신문과 잡지에 글을 기고하였다. 1863년부터 ‘마크 트웨인’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고, 1867년 첫 단편집을 출간하였다. 『톰 소여의 모험』(1876)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1884)은 인간 사회의 위선을 풍자하고 자연의 위대함을 노래한 작품으로 미국 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미국 예일 대학교와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기도 한 트웨인은 1910년 사망했다. <책 앞면  날개, 작가 소개 참조>

마크 트웨인에 대한 평가는 소설의 뒤에 붙어 있는 작품해설에서 볼 수 있다.

흔히 <미국의 셰익스피어>요 <미국 문학의 링컨>으로 일컫는 마크 트웨인은 미국 작가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작가를 통틀어서도 가장 폭넓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작가로 꼽힌다. 그의 작품은 유치원 학생에서 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에 이르기까지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겨 읽는다. 『톰 소여의 모험』이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또는 『왕자와 거지』 같은 작품을 읽지 않고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듯하다. 이렇듯 그의 작품은 청소년들이라면 반드시 겪어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마찬가지로 문학 작품을 좀더 진지하게 읽고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의 독서 목록에도 그의 작품은 약방의 감초처럼 꼭 끼게 마련이다.  <작품 해설 >, 597쪽.

일반 독자들만이 아니라 작가들도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마크 트웨인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적지 않은 작가들이 그 동안 그에게서 직접 또는 간접 큰 영향을 받아 왔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말하자면 트웨인은 <작가들의 작가>로서도 문학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헤밍웨이와 같은 시대에 활약한 윌리엄 포크너도 셔웃 앤더슨이 자기 세대 작가들의 아버지라고 한다면, 트웨인이야말로 앤더슨 같은 선배 세대 작가들의 아버지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헤밍웨이나 포크너 같은 작가들에게 트웨인은 미국 문학의 할아버지에 해당하는 셈이다. 그리고 영국과 미국 모더니즘 문학의 대부격인 T. S. 엘리엇 또한 <트웨인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에게도 새로운 창작 방법을 발견해 낸 작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말하였다. 미국 문학사, 더 나아가 세계 문학사에서 트웨인이 이룩해 놓은 업적을 생각할 때 이러한 찬사는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닐 성 싶다.<작품 해설>,598쪽.  

그 외에도 BBC가 21세기 새 시대를 맞아 1999년에 조사한 “지난 천 년 동안 가장 위대한 작가 조사”에서 마크 트웨인은 10위를 차지하였고, 2014년 미국 정부가 운영하는 국립 교육 재단 스미스소니언 재단의 잡지,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이 “미국사 가장 중요한 100인의 인물”을 선정하였는데 마크 트웨인은 ‘마크 트웨인 · 엘비스 프레슬리 · 마돈나 · 밥 딜런 · 마이클 잭슨 · 찰리 채플린 · 지미 헨드릭스 · 마릴린 먼로 · 프랭크 시나트라 · 루이 암스트롱 · 메리 픽포드’ 등과 함께 팝 아이콘의 선두 주자로 뽑혔다. (출처: 나무위키)

 

총 600여 쪽에 달하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42장과 마지막 장, 총 43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뒤에 작품해설과 작가 연보를 첨부하고 있다.


목차를 넘기면 먼저 다음과 같은 경고문을 보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마크 트웨인의 유쾌한 천재적인 기발함을 보게 된다.

                    경 고 문
     
이 이야기에서 어떤 동기를 찾으려고 하는 자(者)는 기소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교훈을 찾으려고 하는 자(者)는 추방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플롯을 찾으려고 하는 자(者)는 총살할 것이다.
  -지은이의 명령에 따라, 군사령관 G. G

     

이 경고문은 가? 나는 이것을 마크 트웨인의 문학에 대한 생각이라고 보았다.

소설은 그냥 이야기로 보라는 싸인. 소설을 읽으면서 머리 아프고 복잡하게 의미를 찾거나 분석하거나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그냥 보호받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불쌍한 주인공 허클베리 핀이 당시  미국의 종교적, 도덕적, 윤리적 상황과 환경 속에서 어떤 어려움과 따돌림을 겪으며 살아가는가, 또 이런 극한적인 어려움 속을 뚫고 어떻게 성장해 가는가를 지켜보라는 권유이자 단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런 경고와 달리 소설의 첫 시작을 읽어보면 마크 트웨인이 당시 미국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사실들을 소재로 하여 작정하고 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겁고 어두운 현실 문제들을 유쾌하고 무겁지 않게 전달하여 변화를 이끌어 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쓴 소설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톰 소여의 모험』이라는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마 나에 대해 잘 모를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닙니다. 그 책을 쓴 사람은 마크 트웨인이라는 사람인데 대체로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좀 뻥튀겨 말한 대목이 없지 않지만 대체로 진실을 적고 있는 셈이지요. 그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나는 여태껏 한두 번 거짓말을 안해 본 사람을 본 일이 없답니다. 모르긴 해도 거짓말을 한번도 안해 본 사람이라면 폴리 아줌마나 과부댁 또는 아마 메리 정도일 거라구요. 15쪽.

이것을 후대의 사람들은 풍자 문학, 사실주의 문학 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렇지만 트웨인은 경고문에서 이런 정의나 규정조차도 하지 말라는 일갈이었다고 생각한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게 흘러간다.

 

『톰 소여의 모험』에서 톰과 헉(허클베리 핀의 애칭)은 강도들이 동굴 안에 숨겨 두었던 돈을 찾아내어 왕부자가 된다. 새처 판사는 헉의 돈을 맡아 보관하며 이자를 받아 헉에게 생활하도록 한다. 또한 교회도 학교도 다니지 않고 떠돌아다니던 헉을 더글러스 과부댁이 양자로 삼아 동생인 왓츤 부인과 함께 <교양 있는 사람>으로 교화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자유분방하게 살아왔던 헉에게는 엄격하고 격식을 따지는 교양있는 가정생활은 숨통을 조이는 괴로움이  되었다.

 

어느 날, 거의 일 년이나 소식이 없던 헉의 아버지가 나타나서 돈을 내놓으라고 헉을 괴롭히며 동네를 난장판으로 만든다. 헉의 돈을 빼앗기 위하여 아버지는 헉을 납치하여 일리노이주 강변의 외딴집에 헉을 감금한다. 헉의 아버지는 문에 자물쇠를 채우고 헉을 감시하다 가끔 3마일이나  떨어진 하류에 있는 가게에 가서 술을 마시고 돌아와서는 헉을 쇠가죽 채찍질로 때리고 감금시켜 놓기를 되풀이한다. 어느 날은 호도나무 채찍으로 호되게 얻어맞아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헉을 방에 가두고 사흘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기도 하였다.


헉은 결국은 아버지에 의해 죽을 것 같다는 두려움에 아버지를 피해 도망가기로 한다. 카누를 훔치고 돼지를 잡아 집에 온통 피 칠갑을 하고 질질 끌어다 강에다 처박아 자신이 죽은 것으로 위장하고 헉은 도망자의 길을 떠난다. 헉은 잘 알고 있던 잭슨 섬에 도착하여 사흘 밤낮을 숨어 있으면서 섬을 탐색하다 사람의 흔적을 발견한다. 조심스럽게 인기척을 쫓아가다 자기에게 글자를 가르쳐 주던 왓츤 아줌마의 노예인 짐이 만나게 되고, 자기를 올리언스에 팔아 버리겠다는 왓츤 아줌마의 말을 엿듣고는 잭슨 섬으로 도망을 쳐 왔다는 사연듣는다. 이렇게 하여 도망자 헉과 흑인 노예 짐의 도피생활이 미시시피 강을 따라 시작된다.


둘은 홍수에 떠내려 온 뗏목을 타고 미시시피강을 따라 남쪽으로 여행하는데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흑인들의 자유주인 케이로였다. 거기까지 무사히 가면 짐은 자유의 몸이 되기 때문이다.

사흘 밤 안으로 우리들은 일리노이 주 남단 오하이오 강이 흘러들어가는 어귀에 있는 케이로라는 곳에 닿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곳이 바로 목적지였지요. 뗏목을 팔아서 증기선을 타고 오하이오 강을 따라 올라가 자유주(自由州)에 들어가면, 모든 귀찮은 일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174쪽.

그러나 케이로가 가까워지면서 짐은 자유의 몸이 될 것에 대한 흥분으로 들뜨지만, 헉은 공부를 가르쳐 주고 친절하게 대해 준 왓츤 아줌마의 재산인 짐의 도망을 방조하고 돕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러다 케이로에 가까워지자 헉은 짐을 도망한 노예로 신고하려는 마음으로 카누를 타고 동네를 향해 다가 도망친 노예들을 찾아다니는 총을 든 두 사람에게 붙잡힌다. 그렇지만 헉은 자신을 유일한 친구로 생각하면서 자신을 도와준다고 믿고 있는 짐을 차마 고발하지 못하고 아버지와 가족들이 천연두에 걸려 배에 있다고 거짓말하여 위기를 모면한다. 그러면서도 헉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고민한다.

그 사나이들은 가버렸고, 나는 뗏목에 올라탔습니다. 내가 한 일이 나쁜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비참한 마음이었지요. 난 암만 좋은 일을 하려고 별러도 나에겐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좋은 일을 하는 걸 배우지 못한 인간한테는 전혀 기회가 없었던 겁니다. - 위급한 상황에 부딪치면 뒤를 밀어서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으니 결국 손을 들고 말지요. 나는 잠시 생각해 본 다음 이렇게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가만 있자 내가 옳은 일을 해서 짐을 남의 손에 넘겨 주었다고 하면, 내 마음이 지금보다 더 편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 기분이 좋지 못했을 거야 - 아마 지금과 마찬가지 기분이었을 거야. 나는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옳은 일을 하는 데 힘이 들고, 나쁜 짓을 하는 데는 힘이 들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결과가 똑같다면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본댔자 소용없는 일이 아닌가? 나는 여기서 그만 딱 막히고 말았지요. 이 문제에 대해 답을 내릴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젠 이 일로 마음을 쓰는 일은 아예 그만두고, 이제부터는 그때 그때에 제일 편리한 방법을 택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221쪽.

그 당시의 사회적 법으로는 도망친 노예 짐을 밀고하여 주인에게 돌아가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이지만 헉은 짐을 남의 손에 넘겨주는 옳은 일을 하는 대신 양심을 따르기로 한다. 물론 이 일이 나쁜 일이라는 자책을 하면서도 양심의 소리를 따라 짐의 도망을 방조하고 도와주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미시시피강을 따라가며 도망하는 중에도 도망 노예인 짐을 신고하여 주인에게 돌려보내야 한다는 사회적 법규와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짐을 배신할 수 없다는 양심의 소리 속에서 헉의 고민과 걱정은 계속된다. 마지막까지 헉은 짐에 대한 자기의 행동을 결정하지 못하지만 위기 때마다 헉은 짐을 보호하는 편을 택한다.

그래서 나는 그야말로 고민에 빠졌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를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한 가지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래, 편지를 쓰자-그러고 나서 기도가 나올는지 보기로 하자. 그러자 놀랍게도 그 순간 내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면서 모든 고민이 말끔히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래서 기쁘고 마음이 들떠 나는 종이와 연필을 꺼내어 앉아서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왓츤 아줌마에게 아줌마의 도망한 노예 짐은 파이크스빌의 하류 약 2마일에 와 잇습니다 펠프스 씨가 그를 붓잡아놓고 잇습니다 만약 아줌마가 상금을 보내면 풀어줄 거입니다.
‐헉 핀.          450쪽.
아슬아슬한 고비였습니다. 나는 종이를 집어 손에 쥐었습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둘 중에서 어느 하나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나는 숨을 죽이고는 잠시 생각한 끝에 이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좋아, 난 지옥으로 가겠어."-그러고는 편지를 북북 찢어버렸습니다.
그것은 끔찍스런 생각이었고 무서운 말이었지만 벌써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뱉은 말을 취소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었지요. 그러고는 이제 두 번 다시는 마음을 고쳐 먹는 일에 대해서 신경을 끄기로 했습니다. 그 모든 생각을 머리에서 말끔히 씻어버렸지요. 다시 나쁜 짓을 하기로 하자고 했습니다. 나란 놈은 자라나기를 그런 식으로 자라났으니 나쁜 짓이 내 천성에 맞고, 착한 일은 그렇지 않다고 말입니다. 맨 첫번째 일로 나는 짐을 다시 한번 노예 상태에서 훔쳐 내자. 아니 그보다 더 나쁜 일을 생각해 낼 수 있다면 그것도 하겠다고 다짐했지요. 나쁜 짓을 하기로 한 이상, 더구나 끝까지 하기로 한 이상, 철저하게 해내는 것이 좋을 테니까요.   451-452쪽.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우연히 찾아 온 톰 소여를 만나게 된 헉은 결국은 발각되어 헛간에 감금되어 있는 짐을 훔쳐내어 자유인으로 놓아 주려고 하는 자신을 도와 달라고 요청한다.

내가 이렇게 말했지요.
「좋아. 헌데 잠깐 기다려봐. 또 한 가지 얘기할 게 있어 - 나밖엔 아무도 모르는 얘기야. 그건 말이야. 여기 내가 노예 신분에서 구해 내려고 하는 검둥이가 하나 있어 - 이름이 짐이라고 하는데 - 왓츤 아줌마네 짐 말이야」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뭐라구? 어떻게 해서 짐이 - 」
그는 말을 멈추고는 다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했지요.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난 알아. 그건 더럽고 비열한 짓이라고 할 테지. 하지만 어떻다는 거야 - 난 야비한 인간이야. 짐을 훔쳐낼 작정이야. 네가 입 다물고 누설하지 말아주었으면 해. 그렇게 해줄 거지?」" 이 말에 톰은 눈에 광채를 띠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짐을 훔쳐내는 걸 도와주겠어!」 이 말을 듣고 총에라도 얻어맞은 듯이 나는 정신이 아찔했습니다. 이렇게 사람을 놀라게 한 말을 듣기란 난생 처음이었으니까요- 그리고 톰 소여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떨어졌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톰 소여가 검둥이 도둑이라니요!   472쪽.

평범한 일상을 피하고 일부러 모험을 만들고 즐기는 톰 소여의 성향대로 붙잡혀 있는 검둥이 짐을 자유인으로 탈출시키기 위한 두 사람의 모험이 계속된다. 그러나 알고 보니 짐은 주인이었던 왓츤 아줌마가 세상을 떠나면서 짐을 노예에서 해방시킨다는 유언을 이미 남겼고 톰과 폴리 아줌마는 이것을 알고 찾아 왔던 것이다.

 「짐을 가둘 권리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어서 빨리 가! - 일 분이라도 꾸물거리고 있어선 안 돼. 쇠사슬을 풀어 주란 말이야! 짐은 이제 노예가 아니야. 이 지상을 걸어다니는 어느 생물 못지 않게 자유의 몸이란 말이야!」
「이애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샐리 이모,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정말이에요. 아무도 안 간다면 내가 갈 거예요. 나는 일생 동안 그 검둥이를 잘 알고 있고, 그건 저기 있는 톰도 마찬가지지요. 왓츤 아줌마가 두 달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를 강 하류에다 팔려고 하던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유언으로 그를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었어요」
「그렇다면 너는 대관절 무엇 때문에 너는 그를 자유의 몸으로 만들어 주려고 했단 말이냐, 벌써 자유의 몸이 되었다면서?」
「글쎄요. 실은 그게 문제예요. 역시 이모도 여자는 여자군요! 난 모험을 하고 싶었던 겁니다. 피바다에 목만 내놓고 거닐고 -아니, 맙소사, 폴리 이모다!」
그때 폴리 아줌마가 몹시 기분이 좋은 천사처럼 인자하고 만족스런 표정을 하고 문 안쪽에 서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587쪽


이렇게 해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는데, 마크 트웨인은 마지막 장을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자, 이제 더 이상 쓸 이야기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이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기쁩니다. 그 까닭은 만일 책을 쓴다는 것이 이렇게도 귀찮은 일인지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아마 이 일에 덤벼들지 않았을 것이고, 두 번 다시는 이런 일을 하려고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나는 나머지 사람들보다 앞서 인디언 부락으로 떠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샐리 아줌마가 나를 양자로 삼아 <교양 있는> 사람으로 만들려 하고 있고, 나는 그 일이 도저히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 일이라면 전에 한번 해본 적이 있으니 말입니다.  596쪽.

마크 트웨인의 천부적인 기량을 느낄 수 있겠는가? 소설의 시작과 끝에 자기의 민낯과 의견을 슬쩍 드러내고 자기의 의도를 살짝 비치는 대단한 기법을.

 

미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윌리엄 딘 하우얼스는 트웨인을 두고 “현자의 머리에 소년의 마음을 지니고 죽을 때까지 젊은이로 산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말대로 트웨인은 평생 ‘소년의 마음’으로 살았을 뿐만 아니라 ‘소년의 마음’으로 작품을 썼다.

  (출처: 톰소여의 모험 인터파크 작품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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