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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마리아 Jul 26. 2024

존 러스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발간 무렵의  러스킨 자화상.

러스킨 John Ruskin은  영국이 낳은 19세기의 위대한 사회사상가, 예술비평가이다. 런던의 부유한 포도주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였다. 화려한 예술비평가의 길과 험난한 사회사상가의 길을 차례로 걸었던  그의 관심은 예술을 비롯, 문학, 자연과학,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등 다방면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당시 예술 평단의 일인자로 명성을 떨치던 중, 어두운 사회경제적 모순을 목도하고 불혹의 나이에 사회사상가 활동으로 전향, 정통파 경제학을 공격하고 인도주의적 경제학을 주장하였다. 주요 저서로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를 비롯한 경제학 저술 <예술의 경제학>,  예술비평서 <근대 화가론> <베네치아의 돌>, 대중 강연집으로 <참깨와 백합> <티끌의 윤리학> 등이 있다. (출처: 책의 앞날개에서 인용)

러스킨은 1860년 〈콘 힐 거진〉에 네 편의 정치경제학 논문을  연재한다. 논문에서 러스킨은 ‘도덕’이나 ‘정직’, ‘애정’, ‘신뢰’, ‘영혼’, '도덕', '정의' 등과 같은 정신적인 들을 경제사상의 핵심 가치로 주장한다. 일반적인 경제서의 주장과 전혀 다른 이 논문들은 독자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러스킨은 1862년에 이 논문들을 모아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Unto This Last』라는 제목으로 책으로 출간하였다.



러스킨은 책의 제목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성서에서 가져왔다. 성서에 나오는 내용은 이렇다.

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 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5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7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그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마태복음 20장 1-16)

일꾼을 구하는 포도원 주인과 품꾼들의 이야기이다. 포도원 주인이 아침 6시에 장터에 나가서 하루 1 데나리온의 품삯으로 일꾼들과 계약을 하고 포도원으로 들여보낸다. 주인은 아침 9시, 낮 12시, 오후 3시, 마지막으로는 오후 5시에도 놀고 있는 품꾼들을 구하여 들여보낸다.
일과가 끝난 후 주인이 품삯을 계산한다. 맨 나중에 온 사람부터 계산하여 지급하는데 1시간 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의 품삯으로 1데나리온을 지급한다. 오후 3시, 낮 12시, 오전 9시부터 일한 사람들의 품삯도 1데나리온이다. 그런데 급기야 오전 6시 새벽부터 와서 일한 사람들의 품삯까지도 1데나리온을 주는 것이 아닌가. 일꾼들의 불만이 폭발하고 항의하기에 이른다. 공평하지 않다고... 일한 시간과 비례하여 지급해야 하지 않냐고... 주인은 대답한다. 나는 당신들과 1데나리온으로 계약한 것을 지켰다. 다른 사람들의 임금에 대해서 내 생각과 판단대로 지불하는 것이 뭐가 잘못이냐고...

포도원 주인의 임금 산출의 근거가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렇지만 숫자로 표현되는 공평 이상의 요소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러스킨의 경제학을 생명의 경제학, 천국의 경제학,  인간의 경제학이라고 말한다.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의 앞뒤 표지에 러스킨 경제학의  핵심 요소가  요약되어 있다.

인간이 추구해야 할 유일한 부는 곧 『생명』이고, 이 『부』를 얻기 위한 선결조건은 『정직』과 『애정』이다.
생명은 사랑과 환희와 경외가 모두 포함된 총체적인 힘이다. 가장 부유한 국가는 최대 다수의 고귀하고 행복한 국민을 길러내는 국가이고, 가장 부유한 이는 그의 안에 내재된 생명의 힘을 다하여 그가 소유한 내적, 외적 재산을 골고루 활용해서 이웃들의 생명에 유익한 영향을 최대한 널리 미치는 사람이다. 별나라에서 온 경제학이라 생각될지 모르나, 사실 이 경제학이야말로 지금까지 존재해 온 유일한 경제학이었고 또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존 러스킨
생명이 곧 진정한 부이다.

러스킨의 경제  이론은 지극히 이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이라 비난과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실제로 책을 읽어보면 지금 경제의 혼란과 무방향성이 러스킨이 주장하는 핵심 가치를 잃어버린 데서 기인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러스킨은 이 주장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태도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한다.

본 논문들에서 다룰 주요 논제들을 정리하자면 바로 ‘부의 정의‘와 ’ 정직의 회복과 유지‘라 하겠다. 노동의 재편再編에 대한 문제는 필요가 있을 때만 다룰 것이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전제 조건이 성립된다면 쉽게 풀릴 수 있는 성질의 문제이기 때문인데, 만약 경제계의 거물들이 적정 수준 이상의 정직성을 갖추게 된다면 노동의 재편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이루어질 수 있고, 더 나아가 분쟁과 진통 없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만약 이 전제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요원한 일이다. 14쪽.

'부의 정의‘와 ’ 정직의 회복과 유지‘라는 도덕적이고 정신적인 가치를 경제 논리의 전제로 주장하지만, 러스킨의 주장들은 놀랍게도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주장이라는 것이 놀랍다. 러스킨의 주장들을 몇 개 살펴본다.

첫째, 국가 전역에 걸쳐 청소년들을 위한 직업훈련학교가 정부 예산과 감독 하에 설립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태어나는 모든 어린이들은 부모의 동의하에(특별한 경우에는 체벌 차원에서 강제로) 학교에 입학하여 수료하도록 해야 한다.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이 나라가 제공할 수 있는 최상의 교육지원 아래서 다음 세 가지 항목을 필수적으로 배우게 될 것이다.
(a) 건강 향상과 이를 위한 운동법
(b) 온유하고 정의로운 심성이 몸에 배도록 습관화하는 법
(C) 생계를 위한 직업훈련   15쪽.     
둘째, 직업훈련학교와 연계되어 정부의 전적인 관리 하에 각종 생필품의 생산과 판매가 이루어지고, 동시에 모든 산업에 유용한 기술을 연마할 수 있는 공장과 공방이 설립되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가 사기업에 어떤 간섭도 가하지 말아야 하며, 개인 기업들 간의 거래에 대해 어떠한 제재나 세금을 부가하는 일이 없도록 해서, 공기업이나 사기업이나 최선을 다해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되 가능하면 사기업이 공기업을 앞지르면 좋다. 16쪽.
셋째, 남자든 여자든, 혹은 소년이든 소녀든, 누구든지 일자리가 없는 사람은 바로 거주지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직업훈련학교에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그런 뒤, 검사를 바탕으로 적성과 능력에 적합한 일자리가 생기면 그 자리에 고용되어 일 년마다  정해진 노동임금을 받고 일해야 한다. 17쪽.
마지막으로, 노년층과 빈곤층에 속한 사람들에게 주택과 함께 안락한 생활이 제공되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해 온 노동 규례대로 일한 사람들이 불행을 당한 경우에 받을 이러한 사회적 혜택은 결코 수치로 여길 것이 아니라 도리어 명예로 여김이 마땅하다. 18쪽.
이외에도 고용주와 노동자 간의 상호이해관계를 결정하는 변수는 한없이 다양하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행동 양태를 ’ 득실의 균형‘이라는 해석논리로 귀납시키는 것은 헛수고일 뿐이다. 아니, 그런 노력은 본래 헛수고로 돌아가도록 되어 있다. 인간을 향한 조물주의 의도는 ’ 득실의 균형‘이 아닌 ’ 정의의 균형‘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신은 우주 만물의 창조부터 현재까지 이해득실을 따지고 드는 인간의 모든 노력을 헛수고로 만들어 왔다. 32쪽.
지금까지 ’ 정의의 균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나는 ’ 정의‘라는 단어를 한 사람이 타인을 향해 품는 ’ 애정‘을 내포하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고용주와 고용인雇傭人이 바람직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에게 최대 이익을 안겨 줄 수 있는 비밀은 바로 정의와 애정이다. 32쪽.

직업에 대한 분명한 자기 인식을 요구하는 러스킨의 주장이 있다. 언제나 우리 사회는  구직자는 구직난을 이야기하고 기업 쪽인 구인자는 구인난을 호소한다. 구직난과 구인난 사이의 괴리는 무엇인가? 큰 줄기를 자면 러스킨의 다음의 주장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준비 단계로 독자 여러분이 분명히 정립했으면 하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일자리를 얻는 것이 어려운지 아니면 일에 대한 보수를 받기가 어려운지에 대한 스스로의 대답이다. 당신은 직업 자체를 그 희소성 때문에 얻어 누리기 힘든 사치품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계속 유지해야 하고, 그렇다고 원할 때마다 항상 유지할 수 없는 생계수단으로 생각하는가? 사람들은 취업난에 대해 대개 입버릇처럼 쉽게 말하기 때문에 논의를 더 진행하기 전에, 우선 이 점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당신이 구하는 것은 일자리 자체인가? 아니면 일자리를 통해 보장받는 생계인가? 당신이 노동을 통해 끝내고자 하는 것은 게으름인가, 아니면 배고픔인가? 한 쌍을 이루는 두 질문에 대해 차례로 답해야 한다. 재고의 여지없이 일자리는 일종의 사치품이고 그중에서도 매우 값비싼 사치품이다. 그 누구도 일자리 없이는 건강한 몸과 정신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실은 사치품인 동시에 필수품이기도 하다. 나중에 결국 깨닫게 되겠지만 정치가들에게 간절히 권고하고 싶은 것은 부호들을 상대로 현재 소유하고 있는 ‘일자리’라는 사치품을 앞으로 보다 많이 소유하도록 설득하는 것을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로 삼았으면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인간이란 건전한 삶이 주는 쾌락도 정도를 넘어 탐닉할 수 있고, 고기를 과식하기 쉬운 것처럼 노동에 대해서도 과욕을 부리기 쉬운 존재들이다. 그래서 어떤 노동자들은 적은 음식 제공에 많은 근무 시간을 선호하지만, 한편 어떤 이들은 많은 음식 제공에 적은 근무 시간을 선호하기도 한다. 135쪽  각주 23.

러스킨은 또, 당시의 영국사회에 필요한 인재상을 제시하는데, 러스킨이 주장한 인재상은 현재의 우리 사회에도 가장 필요하다는 공감을 하게 된다.

오늘날 영국 사회에 가장 시급히 필요한 것은 탄탄한 재력을 갖춘 사람 중에 검소하고, 주위의 인정을 받고, 근면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누리고 있는 삶의 희락이 과연 어느 정도인가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본보기가 될 인물들은 세상에 자신의 이름 석 자가 알려질지의 여부는 하늘의 뜻에 맡겨 둔 채, 행복한 인생을 살기로 스스로에게 다짐하기 때문에 더욱 많은 부보다는, 보다 소박한 기쁨을 추구하고, 보다 많은 액수의 재산보다는, 보다 깊은 천국의 보물을 추구하고, 마음속에 있는 것을 재산목록 제1호로 삼고, 자만이 아닌 자존감이 높고, 화평과의 잔잔한 사귐을 통해 스스로를 존귀하게 높이는 그런 사람들이다. 210쪽.

이 책의 제목을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라고 붙인 러스킨이 지향하는 이상적 경제는 다음과 같다.

 때가 되면 하나님의 나라가 오리니, 그때에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양식과 평강의 유업이 너희에게 와 같이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주어지리라. 그때가 되면 지상의 서로 반목하는 악덕한 자들과 삶에 지친 자들 사이에도 옹기종기 둘러앉은 식구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화목보다 더 온전한 화목이 임하리라. 그곳에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고 피곤한 자가 쉼을 얻으니, 평온한 경제가 이루어지리라. 216쪽.

러스킨의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에 가장 감명을 받은 사람이 인도의 비폭력주의자 간디이다. 간디는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삶을 통째로 바꾸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부록ㅣ, 간디, 러스킨을 말하다.
러스킨의 가르침에 따라 내 삶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간디가 책을 통해  깨달은 점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개인의 이익이  모든 사람의 이익보다  우선될  수 없다. 둘째,  노동을 통해 생존권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변호사의 직무나 요리사의 직무나  그 가치는 동일하다.  셋째, 농부의 삶과  직공의 삶과 같이, 노동하는 삶이야말로 가치있는 삶이다. 220쪽.

간디는  밤새도록 이 책을 읽고 '새벽이 되어 동이 터 옴과 동시에 일어나 이 깨달음들을 실천에 옮길 채비를 하였다' 한다. 위대한 간디의 출발이 러스킨의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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