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땅을 탐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항공에서도 초기의 영웅적 시대가 있었다. 그런 만큼 하늘의 개척자가 겪는 비극적 모험을 그리는 이 책은 자연스럽게 서사적인 울림을 갖는다. 8쪽.'
생텍쥐페리가 여기서 이야기하는 모든 것은 그가 직접 체험한 일들에 근거한다. 계속되는 위험에 직접 맞섰던 경험 덕에 이 책에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진정한 풍미가 담겨 있다. 우리는 수많은 전쟁소설과 상상의 모험 소설을 읽어왔다. 그중에는 간혹 저자의 유연한 재능을 보여주는 작품도 있지만 실제로 모험을 겪은 사람들이나 실제로 전투에 참가해 본 사람들이라면 실소를 금치 못할 작품도 있다. 이 책은 내가 높이 평가하는 문학적인 가치 말고도, 기록 문서로서의 가치 또한 지니고 있다. 이 두 가지 장점이 독특하게 짜 맞춰져 『야간비행』에 특별한 의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11쪽.
항공 회사가 직면하는 문제는 다른 운송 업체들과 어떻게 속도 경쟁을 하느냐에 있다. 이에 대해 훌륭한 지도자로 그려지는 리비에르는 『야간비행』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에게 속도 경쟁이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다. 낮 동안 철도나 선박에 비해 앞섰던 것을 밤마다 까먹기 때문이다’ 야간 비행은 시행 초기에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차후 허용되어 일단 위험을 무릅쓰기로 한 후 현재와 같이 상용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소설이 집필될 때에만 해도 매우 위험한 사업이었다. 알지 못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항공로는 뜻밖의 사건으로 가득 차 있고 거기에 믿을 수 없는 밤의 수수께끼까지 더해진다. 7쪽.
'내 우편기 두 대가 비행 중인 오늘 밤, 나는 온 하늘을 책임지고 있다. 저 별은 이 군중 속에서 나를 찾다가 발견하는 신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좀 이방인 같고, 좀 고독한 거다'라고 그는 생각했다. 51쪽.
우편기 두 대가 비행 중인 때에 외부로부터 걸려 오는 밤의 전화는 얼마나 위협적인가! 54쪽.
리비에르는 주름 잡힌 두툼한 피부 거죽, 그 아름다운 피부 거죽을 보지 않으려 눈길을 돌렸다. 58쪽.
내가 이처럼 가혹하게 내쫓는 것은 저 사람이 아니다. 어쩌면 그에게는 책임이 없을지도 모르지. 나는 그를 거쳐 나타나는 잘못을 내치는 거다. 왜냐하면 사건이란 사람이 명령하는 것이니까. 사건이란 사람에 따르는 것이고, 만들어내는 건 사람이니까. 인간이란 보잘 것 없는 물건이며 이 역시 만들어지는 거다. 그러니 잘못이 사람들을 통해 나타난다면 이들을 멀리할 수 밖에. 59쪽.
야간비행이 시작되었다. 파타고니아선, 칠레선, 파라과이선 우편기 세 대가 남쪽, 서쪽, 북쪽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향해 돌아오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자정경 유럽행 비행기가 출발할 수 있도록 세 비행기의 우편물을 적재하려고 기다리는 것이다. 21쪽.
"칠레 우편기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불빛이 보인다고 기별해 왔습니다." 22쪽.
"아순시온선 우편기는 순항 중일세. 2시경이면 도착할 거야. 반면 난항을 겪는 듯한 파타고니아선 우편기는 꽤나 연착할 것으로 예상되는군." 78쪽.
남극지방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파티고니아선(線) 우편기를 몰며 날아오는 조종사 파비앵은 마치 항구의 바다 물결과 같은 신호로, 즉 이 고요함과 잔잔한 구름이 살며시 짓는 가벼운 파문으로 밤이 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 거대하고도 행복한 정박지로 들어서고 있었다. 15쪽.
때로 그는 바다보다도 인적이 드문 대초원을 백 킬로미터 지나 외딴 농가와 마주하기도 했는데, 그건 마치 인생이라는 짐을 싣고 대초원의 출렁이는 물결 속에서 뒷걸음질 쳐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 그는 배에게 인사하듯 비행기 날갯짓으로 인사를 보냈다. 16쪽.
무선사가 조종사에게 종이쪽지를 건넸다. ‘뇌우가 어찌나 심한지 이어폰이 잡음으로 가득합니다. 산 훌리안에서 하룻밤 묵어갈까요?’ 파비앵은 미소 지었다. 하늘은 수족관처럼 고요했고 그들 앞에 놓인 모든 비행장은 ‘하늘 맑음, 바람 없음’이라는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계속 갑시다”라고 파비앵이 대답했다. 그러나 무선사는 과일 속에 벌레가 들어 있듯 어딘가에 뇌우가 박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은 아름다울 것이나 그것은 언젠가 상하게 될 아름다움이었다. 무선사는 썩기 일보 직전의 이런 어둠 속으로 들어서는 게 몹시 꺼림칙했다. 16쪽.
멀리서 뇌우의 첫 소용돌이가 비행기를 공격했다. 부드럽게 떠밀린 금속 덩어리인 비행기가 무선사의 육신을 짓누르다가는 이내 사라져 녹아버리는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그는 몇 초 동안 홀로 떠다녔다. 그래서 그는 양쪽의 금속 봉을 두 손으로 꽉 움켜 잡았다. 사방천지에 조종실의 붉은 등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이 작은 램프에만 의지하여 아무 도움도 없이 밤의 한복판으로 내려가는 것 같아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감히 조종사에게 어떻게 할 작정인지 물어볼 엄두도 못 내고, 두 손으로 금속 봉을 꽉 쥔 채 몸을 앞으로 기울여 그의 어두운 목덜미만 응시했다. 48쪽.
"산 안토니오의 날씨를 물어봐 주시오." '산 안토니오에서는 서풍이 불고 서쪽에 폭풍우, 하늘이 완전히 구름으로 뒤덮였다는 보고.' "잡음 때문에 여기 소리가 잘 안 들린다고 합니다. 저도 역시 그쪽 소리를 듣기 힘들고요. 전파 방해 때문에 곧 안테나를 끌어당겨야 할 것 같습니다. 돌아가시겠습니까? 어떻게 할 계획이시죠?""조용히 좀 하고, 바이아블랑카의 날씨나 물어봐 주시오." ‘바이아블랑카에서는 이십 분 내로 바이아블랑카 서쪽 상공으로 거센 폭풍우가 예상된다는 보고.’ "트렐레우의 날씨를 물어봐 주시오." ‘트렐레우에서는 서쪽으로 초속 삼십 미터의 태풍과 폭우를 동반한 돌풍이라는 답변.’ “부에노스아이레스와 교신해 주시오.” ‘사방이 막혔음. 천 킬로 미터에 걸쳐 폭풍. 아무것도 보이지 않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고.“ 76쪽.
조종사에게 이 밤은 기착지가 없는 밤이었다. 왜냐하면 어떤 항구로도 접근할 수가 없어 항구에 이를 수도 없고, 1시 40분이 지나면 연료가 바닥날 것이라 새벽까지 버틸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조만간 이 칠흑같은 어둠 속을 정처없이 흘러다녀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76쪽.
그는 아직은 싸울 수 있고 자신의 운을 시험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외적인 숙명이란 없으니까. 그러나 내적인 숙명이란 있는 법. 인간에게는 스스로의 나약함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현기증처럼 여러 가지 실수가 우리를 엄습한다. 바로 그 순간, 그의 머리 위로 폭풍우 틈새를 통해 마치 덫 속에서 죽음을 부르는 미끼처럼 별 몇 개가 반짝였다. 그는 그것을 함정이라고 판단했다. 구멍 속으로 별 세 개를 발견하고 그 별들을 향해 올라가면 더 이상 내려 올 수 없어 거기서 별을 깨물며 머물게 된다는 함정....하지만 빛에 대한 목마름이 너무 강했던 탓에 그는 그만 올라가 버렸다. 95쪽.
몇 초가 흐른다. 시간이 정말이지 피처럼 흐르고 있다. 아직도 비행을 계속하고 있을까? 일 초 일 초가 가능성을 앗아가고 있다. 이제는 시간이 흐르는 게 아니라 파괴하는 듯 느껴진다. 20세기가 흐르면서 시간이 신전을 건드리며 화강암 속으로 길을 내고 신전을 먼지로 부스러뜨리듯, 일 초 일 초 흐를 때마다 마멸의 시간이 밀집하여 승무원들을 위협하고 있다. 매초가 흐를 때마다 무엇인가를 앗아간다. 파비앵의 그 목소리, 파비앵의 그 웃음, 그 미소를, 침묵이 계속 퍼져 나간다. 점점 더 무거워지더니 육중한 바다처럼 승무원들 위로 자리 잡는다. 112쪽.
리비에르는 말없이 머리를 숙인 채 자신의 손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앞에 선 로비노는 감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사자는, 비록 쓰러진 상태일지라도 그를 움찔하게 했던 것이다. 로비노는 보다 더 헌신적인 말을 준비했지만, 눈길을 들 때마다 마주 하는 것은 4분의 3쯤 기울어진 그의 머리와 반백의 머리칼, 지독한 쓰라림을 맛보는 앙다문 입술 뿐이었다. 116쪽.
아순시온선 우편기가 곧 착륙하겠다고 알렸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리비에르는 한 장 한 장 전보를 들춰 보며 그 우편기의 순조로운 비행을 지켜 보았다. 이렇게 하는 것이 그에게는 이 혼란의 와중에 할 수 있는 자신의 신념에 대한 설욕이자 증명이었다. 이 순조로운 비행은 전보를 통해 다른 수많은 비행 역시 순조로우리라는 점을 예고해 주었다. ’매일 밤 태풍이 오는 건 아니거든.' 리비에르는 또 생각했다. ’일단 길을 닦아 놓으면, 그 길을 좇지 않을 수 없어.‘119쪽.
승리.....패배.... 이런 말들은 아무 의미도 없다. 생명이란 이런 이미지들의 저 아래 깊은 곳에 있으면서 벌써 또 다른 새로운 이미지를 준비하고 있다. 한 번의 성공으로 인해 한 국민은 약해지고, 한 번의 패배로 인해 다른 국민은 각성하게 된다. 리비에르가 겪었던 패배는 어쩌면 진정한 승리에 가까워지는 하나의 약속인지도 모른다. 오로지 전진하는 사건만이 중요할 뿐이다. 122쪽.
“지시를 받으러 왔습니다.” 리비에르는 자기 시계를 꺼내 보더니 간단히 이렇게 말했다. “2시로군. 아순시온선 우편기가 2시 10분에 도착할 걸세. 2시 15분에 유럽선 우편기를 이륙시키게.” 이윽고 로비노는 야간비행이 중단되지 않으리라는 놀라운 소식을 퍼뜨렸다. 117쪽.
『야간비행』에 나오는 조종사보다 훨싼 더 놀라운 인물은 그의 상사인 리비에르이다. 리비에르는 직접 행동하지 않는다. 다만 조종사들이 자신의 가치를 믿도록 하고 그들이 가진 최대의 능력을 끌어내며 용맹한 행위를 하도록 강제함으로써, 타인을 행동하게끔 독려한다. 그는 가차없는 결정을 내려 겁이 나 움칫하는 것을 봐주지 않고, 아주 사소한 실수도 처벌한다. 그의 엄격함이 일견 비인간적이고 지나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리비에르가 단련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결점이지 인간 그 자체가 아니다. 리비에르에 대한 묘사를 읽으며 우리는 저자가 진정 탄복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감지한다. 특히 나는 내가 심리적으로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 즉 인간의 행복은 자유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의무를 받아들이는데 있다는 역설적인 진리를 표출한다는 점에서 저자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이 책의 인물들 하나하나는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 그 위험천만한 일에 진심으로 열성을 다해 헌신하며, 그 임무를 완수하고 나서야 행복한 휴식을 찾는다. 리비에르는 결코 냉정한 사람이 아니며(실종된 조종사의 아내가 그를 방문하는 장면보다 더 감동적인 장면은 없다.) 그가 조종사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일은 조종사들이 이를 수행하는 것 이상으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8쪽.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받으려면 동정하는 걸로 충분해. 나는 거의 동정을 하지 않거나 혹은 동정한다는 걸 숨기지.(....) 가끔은 나도 내 힘에 놀라곤 해."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부하들을 사랑하되 부하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서는 안되네." 의무감 또한 리비에르를 추동한다. '의무에 대한 막연한 감정이 사랑에 대한 감정보다 위대하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인간이란 그 자체로는 목적이 아니다. 인간은 무엇인가에 종속되고 그것을 위해 희생한다. 그 무엇인가가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으로부터 참된 의미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