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니아 연대기>로 유명한 C.S 루이스의 <책 읽는 삶>을 읽었다. C.S. 루이스는 신학자, 소설가, 학자로 알려져 있는데, 각 분야마다 뛰어난 업적을 발휘한 대단한 역량의 사람이다. 이러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저변에C.S 루이스의 독서가 단단한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C.S. 루이스는 " 당대에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 무엇이든 읽고, 읽은 것은 전부 기억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독서가였다. 집에 있는수많은 장서를 다 읽었으며, 열 살 때 존 밀턴의 <실낙원>을,십 대 중반에는 고전과 현대 작품을, 그리스어, 라틴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로 읽었다고 한다. 독서는 루이스의 삶에서 최고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였으며 매일 일곱 여덟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냈다고 한다. 책의 제목인 <책 읽는 삶>은원제<The Reading Life>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다 보니까 원제가 훨씬 심플하고 내용에 맞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은 180쪽에 달하는 문고본 같아서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았다. 소제목이 붙어 있고 짤막 짤막하게요약되어있어서 쉽게 읽혔지만 내용은 대단히 묵직하고 핵심적이었다.
C.S. 루이스를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로 보았을 때는 판타지적 성격이 강한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라고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C.S. 루이스가 옥스퍼드대학교 영문학 교수였으며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중세 및 르네상스 문학 학과장으로 은퇴하였다는 것을 떠올리며 가르치는 데도 빈틈없이 탁월한 교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C.S. 루이스는 독서에 대해 자기의 견해를 피력하고 요약정리한 내용에서 학자로서의 진지함과 책임감을 보여 주었다. 논쟁거리가 되거나 분명하게 정리를 해주어야 할 부분에서는 모호하지 않게 자기의 주장을 확실히 밝혀 주었다.
짤막한 내용들을 다루면서 각장 마다 소제목을붙였는데그중에서 마음에 새기고 싶은 부분들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1.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우리 가운데 평생 진정한 독서가로 살아온 이들은 여간해서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의 존재가 엄청나게 확장된 것은 작가들 덕분이다. 21쪽. 예배할 때나 사랑할 때, 또 도덕적 행위를 할 때나 지식을 얻는 순간처럼, 독서를 통해서도 나는 나를 초월하되 이때처럼 나다운 때는 없다. 21쪽.
2. 문학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
(문학은 시간여행) 아이들이 지리나 신학(맙소사!) 시험은 봐도 되지만 영문학 시험은 안된다고 생각할 사람이 많다. 지리와 신학과는 달리 문학은 즐거움을 얻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단지 ”감상“을 돕기 위해 영문학 교육을 한다고들 한다. 물론 감상도 필요하다. 농담에 웃고 비극에 몸서리치고 슬픔에 우는 것도 문법 공부만큼이나 필요하다. 하지만 문법도 감상도 문학 수업을 하는 궁극의 목표는 아니다. 문학 수업을 하는 참 목표는 학생에게 모든 ”시대와 실존“까지는 몰라도 그중 태반을 ”유람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편협한 관점을 벗어버리게 하는 것이다. 좋은(당연히 서로 견해가 다른) 교사들에게 배워서, 과거가 여태 살아 있는 유일한 곳(문학)에서 과거를 접한 학생(어린 학생까지도 포함해서)은 자신이 사는 한정된 시대와 계급에서 벗어나 더 공적인 세상으로 들어간다. 헤겔이 말한 ”정신현상학“을 제대로 배우면서 다양한 인간상에 눈뜨는 것이다.
”역사“만으로는 그것이 안 된다. 역사는 과거를 주로 이차 문헌으로 공부하기 때문이다. 몇 년씩 ”역사를 공부하고도 “ 결국 앵글로 색슨족 백작이나 기사, 18세기 지방의 대지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심정이었는지는 모를 수도 있다. 겉모습만 봐서는 알 수 없는 진면목은 거의 문학에서만 볼 수 있다. 37-38쪽.
3. 문학 책 중에서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
물론 나도 작가인지라 일반 독자들이 요즘 책들도 읽기를 바란다. 하지만 신서나 고서 가운데 하나만 읽어야 한다면 고서를 권하고 싶다. 이렇게 조언하는 이유는 바로 그가 아마추어라서 요즘 책들만 읽을 때의 위험을 막아 내기가 전문가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신서는 아직 시험 단계며, 이는 아마추어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53쪽.
시대마다 특유의 관점이 있다. 특히 잘 포착하는 진리가 있고 특히 범하기 쉬운 과오가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이 시대 특유의 과오를 바로잡아 줄 책들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고서다. 54쪽.
4. 제일 좋아하는 작가와 책은?
(제일 좋아하는 작가를 처음 만난 순간) : 그날 밤 내 상상력은 일종의 세례를 받았다. 나머지 모든 부분이 세례를 받는 데는 당연히 더 오래 걸렸다. Pantastes(판타스테스)라는 책 한 권을 구입했다가 그런 세계에 들어 설 줄은 꿈에도 몰랐다. 76쪽.
나는 여전히 맥도널드와 함께 있었다. 그는 줄곧 나와 동행했고, 비로소 나도 첫 만남에서 다 듣지 못한 말을 그에게 들을 준비가 되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그가 한 말은 어떤 의미에서 처음에 한 말과 똑같았다. 알맹이는 물론이고 껍데기까지도 버릴 것이 없었다. 금박을 씌운 환약이 아니라 환약 전체가 금이었다. 그의 판타지 작품에서 나를 매료시켰던 “속성”은 알고 보니 현실 세계의 속성이었다.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신성하고 신비롭고 무섭고 황홀한 실재였다. 78쪽.
5. 독서의 방법?
( 다 읽지 않아도 된다): 책을 읽을 때 절대로 “건너뛰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은 아주 어리석다.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에게 쓸모없는 장이 나올 때 주저 없이 건너뛴다. 144쪽.
6. 독서 토론의 필요성?
( 읽은 책에 관해 대화하기): 책을 읽은 후에는 다른 사람과 함께 그 책에 관해 토론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없다고 봐. 때로 상당한 격론이 벌어진다 해도 말야. 154쪽.
7. 좋은 독서란?
(좋은 독서): 좋은 신발은 신고 있어도 느껴지지 않는 신발이네. 마찬가지로 좋은 독서는 시력이나 조명이나 인쇄 상태나 맞춤법 따위를 의식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을 때 가능해지지. 173쪽.
<책 읽는 삶>을 통해서 본 C.S. 루이스는 대단히 이지적이고 논리적이며 책임감이 투철한 학자라는 생각을 하였다. 판타지 소설을 쓰는 작가적 상상력과 문학 이론과 작법을 논리적으로 명쾌하게 정리하여 가르치는 교수의 교육적 능력을 탁월하게 조화시키는 사람이 C.S. 루이스였다는 생각을 하며 그의 능력과 노력의 위대함에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었다.